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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Oct 17. 2023

임신 준비생과 입시 준비생의 공통점

임신 일기(1) - 나는 결국 임테기 지옥에 빠졌다

임신준비생과 입시준비생의 공통점이 있다. 대학만 가면, 임신만 하고 나면, 모든 게 다 될 것 같은, 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착각 속에 산다는 것이다. 


임신을 준비할 때(시험관을 할 때)는 

'제발 임신만 돼라.' 

'축구로 치면 골을 넣어보는 시도라도 해보자.' 

'어떻게든 지더라도 한골이라도 넣어보자.'


이런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게임에서 내가 패배할지라도 골이라도 한번 넣어보자. 무너질지라도 한 번이라도 착상이나 해보자. 임신이라도 되어보자. 


마치, 수능만 끝나면 어른의 세계가 자유로움을 만끽할 기회가. 연애의 문이 열리고 인생이 달라질 것처럼 우리를 꼬셔대던 수험생의 심정과 같다. 아닌 줄 알지만 앉아서 공부하던 방석도 챙겨가고 수능날 미역국도 먹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미신이지만, 어쩐지 지키지 않으면 찜찜한 그런 것들이었다. 


힘든 시기가 올 때마다 나를 다독인다.

지금만 참아내면 좋은 날이 올 거야. 수능만 끝나면.! 그 결승점만 통과한다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수능이 끝났다고 대학에 들어갔다고 인생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 

임신을 했다고 끝이 아니다. 더 이상의 불안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시험관으로 배아를 이식을 하고 3일째 나는 지옥행 티켓을 끊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으로 테스트기를 찾지 않았다. 배가 콕콕 쑤시는 것 같은 증상놀이도 먼저번의 실패의 경험으로 믿지 않기로 했다. 


같은 병원에서 시험관을 하기 위해 모인 단톡방에서는 테스트기를 해봤냐고 계속 뽐뿌질을 해댔다. 나는 이제 이 단톡방에서 3번째로 오래 시험관을 한 사람이 되어 스텝이 되었다. 정말 원치 않는 경력이었다. 시간은 더해지고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 혹은 비슷하게 시작한 사람들은 임신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유리멘털을 간과하고 말았다.

결국 4일째에서 5일째 넘어가는 날 나는 참지 못하고 테스트기에 손을 대고 말았다. 


'실망하지 말자. 실망하지 말자. 안되면 그냥 등산 더 다녀서 설악산 등반을 목표로 오르자. 그렇게 살 도 조금만 더 빼면 좋을 것 같아.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자. '


나는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기 전 몰래 숨겨둔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정식 얼리 테스트기가 아닌 시약 테스트기를 꺼냈다. 첫 오줌을 버리고 중간부터 조그마한 소주 종이컵에 받아 임신테스트기를 넣고 탈탈 털어서 평평한 곳을 찾아 화장실 앞 탁자 위에 두고 저녁을 준비했다. 15분쯤 타이머를 걸어두고 저녁을 뭘 먹을지 남편과 카톡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카톡으로 저녁 메뉴를 정하고 있을 때쯤 타이머가 울렸다.


핸드폰 알람이 울려댔지만 나는 화장실 앞 테스트기를 쳐다보지 못했다. 얼핏 멀리서 천천히 다가가는 동안 한 줄의 여백을 보며 역시나. 

오히려 잘됐어. 괜찮아. 


남아있는 많은 배아들과 이제 더 이상 채취는 못하겠다. 남아있는 배아들만 이식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남편과 함께 딩크족의 삶을 살겠다. 


나는 실망하지 않은 척 나 자신을 속이며 테스트기를 집어 들었다. 남편이 보지 않게 쓰게기통에 안 보이게 잘 넣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 잠깐 메모지위에 올려놓고 쓰레기통을 작업했다. 이게 뭐라고 못 보게 하려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서글퍼지는 마음을 붙잡고 테스트기를 버리기 위해 손을 뻗다가 나는 경악했다. 진한 한 줄과 함께 진짜 매직아이로 보일듯하게 말듯하게 희미하게 떠오른 한 줄을 보고 걷잡을 수 없게 심장이 요동쳤다. 


"어?" 

이게 맞는 걸까. 나의 간절함이 이제 보이지도 않는 한 줄을 만들어내는 걸까?  아니면 15분까지만 딱 봐야 하는데 더 오래돼서 오류가 난 걸까? 

벌써부터 두줄이 뜨는 걸까? 너무 이르게 테스트기에 손을 댄 건 아닐까? 

임신이면 찐한 두줄이 떠야 하는 거 아닌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나는 빠졌다. 이게 임신이든 아니든  나는 또 지옥행 티켓이 끊었고 무한 불안의 지옥행이 시작되었다. 


'테스트기 지옥'이라고 불리는 이 증상은 임신테스트기에 한번 손을 대고 나면 불안감에 휩싸여서 계속 하루에 두 번씩 테스트기를 해보게 된다는 지옥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선이 진해지지 않으면 그것대로 불안하고 선이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해지기도 한다. 


같은 병원에서 시험관을 하기 위해 모인 단톡방에 사진을 띄워볼까 하다가 괜한 뽐뿌질에 더 실망할까 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안 보이게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넣는 대신 수첩에 끼워두었다. 


단톡방에서 임신을 했는지 궁금해서 일주일 후에 오라는 병원일정을 참지 못해 근처 산부인과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었다. 산부인과 중에서도 바로 결과가 나오는 곳이 얼마 있지 않으니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바로 나오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꿀팁이 공공연하게 돌던 때였다. 


다행히 회사 근처에 큰 지하철역이 있었고 부근에 산부인과도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 다행스럽게 바로 결과가 나온다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다음날 출근한 순간부터 머릿속에 점심시간에 병원을 갈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점심을 포기하고 병원을 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카카오 택시를 불러서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이었다. 병원에 부랴부랴 도착해 접수를 했다. 


"임신 피검사 할 수 있나요? 오늘 바로 결과 나오죠?" 

"네 한 30분 정도 걸려요. 접수 하시겠어요?" 

"네" 


나는 접수를 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병원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접수를 하자마자 나는 의사를 대면하러 갔다. 


"들어오세요" 


나는 생년월일과 이름을 간호사에게 확인시켜 주며 의사를 대면하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임신했나 확인하고 싶어서요"

"네. 생리 예정일이 지나셨나요?"

"시험관을 해서 이식했는데, 병원이 멀어서 가지 못해서 피검사로 확인하고 싶어서요" 


나는 진료실을 나와 맞은편 채혈실에서 피검사를 진행했다. 양팔에 이미 이식준비와 수액을 맞으면서 피멍이 난자했다. 


"어휴 팔이 성한 곳이 없네. 살짝만 뽑을게요" 

"네 괜찮아요" 


무덤덤하게 양팔의 피멍들 사이로 피를 뽑고 나서 다시 접수처 앞 의자에 앉았다. 넓은 병원 대기 의자 중에서 일부러 밖이 잘 보이는 창가 의자에 앉았다. 밖에는 점심시간밥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의 소리가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려왔다.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병원이라 더욱 북적거리는 소리가 즐비했다. 날씨가 참 좋았다. 밥을 먹지 않고 왔는데도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 맞춰서 다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나 걱정이 될 뿐이었다. 


순간, 임신일까 아닐까 보다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다시 회사에 갈 수 있나를 걱정하는 나 자신이 각성되어 웃음이 나왔다. 


그래 아니어도 괜찮아. 

그래도 임신이었으면 좋겠다. 


창밖에 큰 가로수의 잎에 햇빛이 가려졌다 비쳤다 햇살이 얼굴을 비추었다 사라지면서 내 마음도 같이 울렁거렸다. 


곧 간호사가 다시 나를 불렀다. 진료실로 들어서는 문을 여는데, 긴장이 갑자기 몰려왔다. 


"수치상으로는 임신이네요"


수치가 써진 종이를 보여주며 의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의사는 차트를 보다가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나는 애써 흥분하지 않으려고 마스크 속에 표정을 감추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곧바로 나와 계산을 하고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왔다. 

꼬박 점심시간을 간당간당하게 1분을 남기고 다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핸드폰에는 남편의 카톡이 와 있었다.


"밥 먹었어?" 


나는 남편에게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나의 유리멘털을 알고 있는 남편은 그전 차수에서 이식하고 나서 미리 테스트기를 해봤다가 실망한 전적을 알고 있는 지라 테스트기 지옥행을 열지 않도록 당부했다. 내 멘털이 버텨내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또 그 지옥의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2일 뒤에 한번 더 피검사를 하기로 했다. 만약 수치가 2배로 뛴다면 그건 착상이 잘 된 것이고 임신이 되어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이틀 뒤 다시 한번 점심시간 찬스를 쓰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은 채, 혹시나 누구에게 말을 하면 이 행운이 날아가버릴까. 

수치가 적힌 종이를 손에 꼭 붙잡고 어떤 표정도 짓지 못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하루에 아침저녁 똑같은 시간에 테스트기를 하기 위해 남편 몰래 테스트기를 대량 구입하고, 화장실에 숨겨두었다. 이제 테스트기 지옥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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