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응가를 위해 인사평가서를 던지다(1)

[대화의 기록] 1편_결혼

by 인터미션

잘 놀던 아이의 이마가 따끈해지면 부모는 덜컥 겁이 난다. 요즘 같은 시기가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열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왜 열이 나는지, 열이 몰고 오는 다른 증상은 없는지 수 만가지 걱정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일하는 부모는 여기에 한 가지 바람이, 어쩔 수 없이 더해진다. 제발 주말에만 아팠으면. 밤을 꼬박 세워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을 이마에 얹으며 내 잠은 없어져도 상관 없으니 제발 평일에는, 낮에는 아프지 말았으면. 미안하고 속상하고 대상 없는 원망이 스스로를 때리지만, 연차와 월차는 다 끌어 썼고 출근은 해야 한다. 일하는 부모는 그렇다. 아이가 아파도 짠 하고, 웃어도 짠 하다. 비교적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워킹맘 푸른갈대(가명)는 언제나 아이를 보면 짠 해서 눈물이 핑 돈다고 한다. 20년 간 알아온 그녀는 치열한 사람이자 듬직한 집안의 맏딸이었다. 매 순간 나아감에 고민은 있었지만 꿋꿋이 버티며 자기 길 위에 발을 내딛는 모습이 바로 그녀였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서 세상의 바람에 맞서는 그녀의 모습은 예전보다 고요해 보였지만, 땅을 딛는 발걸음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 무게는 그간 살아온 것들에 대한, 예쁜 아이에 대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으쌰, 힘내는 엄마. 결혼 4년 차 딸 키우는 푸른갈대와의 대화다.


* 실명 대신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이 정한 ‘푸른갈대’를 가명으로 사용합니다.

* 글에 실린 사진은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의 개인사진이니 임의 사용을 하지 말아 주세요.


@ 오늘따라 아이가 안 자려고 너무 버텨서, 11시가 넉넉할 줄 알았는데 간신히 맞췄어요.

난 덕분에 좀 자다 깼어. (웃음) 우리 애는 9시면 자니까. 잠깐 자다 일어나서 시계보고 '음, 30분 더 자도 되겠군' (웃음)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온다. 우리 오늘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니까 딱 든 생각이 우리가 만난 지 만 20년이 넘었더라고.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감회가 새롭더라. 그동안 살아왔던 게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그러면서 나의 지옥 같은 직장생활 18년도 지나가고. (웃음)


@ 18년이나 됐어요? 버티고 버틴 18년이네요. (웃음)

나도 참 징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중간에 짧게 이탈도 있었지만 어쨌건 금융기관이라는 같은 맥락에서 오래 일하고 있다는 게, 이제는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징글징글하기도 하고, AI나 4차산업혁명 때문에 내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걸 확 느끼니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와서 뭔가를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퇴사 후에도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면 퇴사 전에 정말 많은 준비를 해야겠더라고요.

지금은 어쨌건 출근을 하고 있으니 회사 내에서 포지션을 바꾸는 것도 방법인데 그걸 회사에서 시켜주느냐, 안 시켜주느냐가 문제지. 어쨌건 포지션을 바꾸려고 하는 상황인데 뜻하지 않게 공황장애가 생겨서 생각이 많이 변했어.


@ 언니가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많이 놀랐어요. 처음에 공황장애를 어떻게 인지했어요?

육아휴직 끝나고 올 2월에 복직했는데, 회사에서 이미 짠 판에 내가 들어가게 된 거야. 안 좋은 소문이 있는 상사가 있는, 안 좋은 소문이 있는 부서로 발령을 받은 거지. 다들 아는 기피 부서. 그런데 그 안에서도 회사 내에서 생각하기에 문제 있다 싶은 직원들을 전담 마크하는 책임자로 날 앉혀 놓은 거야. 상사가 “농구선수 알지? 그 선수들처럼 이 직원들을 일대일로 전담 마크 해”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 직원들도 성인들이고 다들 업무 포지션이 있는데 내가 그들을 어떻게 마크해. 상사가 날 완전 들들 볶고, 사사건건 다 보고해야 하고.

창문 너머 푸르름이 나의 것이길. ⓒ푸른갈대

그러니까 처음에는 위 경련이 오면서 계속 배가 아픈거야. 병원에 가니 담석증일 수도 있다고 해서 초음파도 찍고 CT도 찍고, 별의 별 짓을 다 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대. 그러다 나중엔 과호흡이 오더라고. 119를 불렀는데, 코로나 때문에 119에서 방호복 입고 오시잖아, 그러면 사람들이 다 수군대고. 그래서 119에 전화는 했지만 내가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하시더라. 내가 전화기도 못 잡아서 스피커폰으로 말하고 있었거든. 그분들 말이, 과호흡이 계속되면 나중에 팔 다리가 말리고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그런 상태가 몇 번 있었어. 그런데도 배가 계속 아파서 산부인과도 가고 내과도 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대. 근데 내과에서 내 이야길 듣더니 정신과 쪽 문제일 수도 있다고 해서 바로 정신과로 갔지. 그게 올 5월 초야.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공황장애 진단표를 줘서 했더니 이미 난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던 거야,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그 때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어.


@ 약을 먹으면 차도가 좀 있어요? 언젠가 완치가 되는 건가요?

초반에는 효과가 좀 있더라고. 근데 원인 제공이 회사잖아. 그 원인 제공이 안 없어지니까 내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약은 점점 증량이 되는 거지. 약을 계속 바꿔. 진짜 울면서 출근하고 울면서 퇴근하는 날이 많지. 더 안 좋은 건, 그 영향이 아이한테까지 간다는 거야. 이 약을 먹으면 몸이 너무 늘어지거든. 내가 원래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라 주말에도 으쌰으쌰해서 뭐라도 하는데, 약을 먹으면서 굉장히 무기력해졌어. 복직하고 나서도 석 달 간 아이 이유식을 다 만들어 먹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걸 어떻게 했나 싶어. 공황장애 오고 나서 무욕(無慾)이야. 욕구가 없어. 뭐가 하고 싶다, 먹고 싶다, 사고 싶다, 이런 게 전혀 없어.


@ 무기력만큼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게 없더라고요. 저도 뭘 하기 싫은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순간이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거든요.

맞아. 이 병을 얻고서 느낀 건, 정말 소소한 일상이 참 감사하다는 거야. 공황장애 오고 나서는 하던 일도 하기 싫고, 그러면서 그간 너무 스스로 채찍질하며 살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됐어. 병원에서도 나한테 쉬라고 하는데, 회사에 소견서를 내도 상사가 못 쉬게 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돈은 돈대로 나가고 마음에 상처는 상처대로 남고.


@ 그 정도로 건강에 치명적이라면 정말 퇴사를 생각할 수밖에 없겠어요.

모르는 사람들은 나보고 좋겠다고 해. 아파트를 분양 받았으니까. 요즘엔 로또보다 당첨되기 어려운 게 아파트 청약이라고 하잖아. 결혼 전에 받은 건데, 그게 지금 솔직히 나에게는 덫 같은 거야. 하나 좋은 줄 모르겠어. 대출을 갚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니까.


이런 생각이 든 게 공황장애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올 초에 사촌언니가 뇌출혈로 갑자기, 아무 준비 없이 하늘나라로 갔거든. 언니랑 나랑 열 네 살 차이니까 50대 중반인 거지. 나한테 엄청난 충격이었어. 어렸을 때 언니랑 같이 살았거든. 여러가지로 다른 사촌과 달리 그 언니가 나에게는 좀 각별한 게 있어. 그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게 하필이면 내 결혼식 때였어. 내가 뭐 그리 바쁘다고 결혼하고서 언니 얼굴 한 번을 못 봤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 언니도 참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고 일궈놓은 것도 많은데 죽을 때 하나도 갖고 갈 수 없는 거잖아. 분양 받은 아파트가 나에게 쓸모 없진 않지만 지금은 그저 덫 같아.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 없는 덫. 그거 아니었으면 회사를 그만뒀을 텐데. 감사한 건 나에게 신앙이 있다는 거. 그 힘으로 버텨. 출근할 땐 ‘오늘 하루 잘 버티게 해 주세요’, 퇴근할 땐 ‘오늘 하루 잘 버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딱 그렇게 기도해.


@ 올 2월에 복직했잖아요. 복직 전에도 아이 돌봐줄 이모님 구하느라 엄청 힘들어 했고요. 올해는 여러가지 언니한테 참 힘든 시간이네요.

그러게. 첫 번째 이모님은 정말 좋으셨어. 그런데 이모님 유방에 뭐가 생겨서 검사를 받으러 다니셨는데, 그러면서 그 분이 나한테 그간 살아온 인생을 막 토로하시더라고.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셨던 것 같아. 다행히 암은 아니었는데, 나도 그런 이야기까지 들으니 아프신 분께 계속 아이를 봐달라고 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두 번째 이모님을 구했는데, 좀 애한테 못할 짓을 하시는 걸 몇 번 보고, 우리 엄마도 그걸 보고 안되겠다, 싶어서 한 달도 안 돼서 그만 오시라고 했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엄마가 아이 케어를 하게 되었고 세 번째 이모는 시간을 좀 짧게 쓰고 있어. 엄마도 나이가 70이신데 힘드시니까. 여러가지 상황이 참 복잡하다. 월급 받아서 이모 드리고, 엄마 드리고, 나 나가서 점심 먹고, 대출 이자 내면 돈이 여유롭게 남지 않아. 워킹맘의 현실이 참 그렇다.

홀로 여행하던 그 시절, 그 때의 고요함이 생각나는 지금 ⓒ푸른갈대

너도 일을 그만두고 많이 힘들어했는데, 너무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일한다고 뭐 나은 게 없어. 엊그제도 자기인사평가를 써서 내야 하는데 그게 신경에도 안 들어오는 거야. 왜냐면 우리 애가 변비라 계속 고생 중이라 얼른 집에 가서 그걸 나오게 해줘야 했거든. 뭘 먹이고 오일로 마사지해서 변을 보게 해야 한다는 나 나름의 민간요법이 있고, 그건 나 밖에 못하는 거야. 그래서 그날도 인사평가 쓰지도 않고 칼퇴 했지. 결국 아이가 응가를 했어. ‘아, 아이는 엄마의 손이 필요하구나’, 싶다가도 ‘올해 인사평가는 망했구나’, 하는 거지.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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