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응가를 위해 인사평가서를 던지다(2)

[대화의 기록] 1편_결혼

by 인터미션

아이 응가를 위해 인사평가서를 던지다(1) 편에 이어


@ 반은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도 들었어요. 요즘 애들은 집에서 밥 차려주는 엄마가 아니라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를 더 좋아한다고요. 아이가 어릴 땐 부모 손이 분명 필요하지만 경제력도 있고 사회 커리어도 있는 엄마가 길게 보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더라고요. 선택의 기로에서 답 없는 고민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평일에 우리 애는 6시 반에 일어나. 아빠 엄마가 회사 가는 거 다 알지. “엄마 회사 가는 거 싫어?” 물으면 “싫어!” 그러고. 근데 주말에는 늦게까지 자. 출근 안 하는 거 아니까. ‘이렇게 좋고 싫은 걸 다 아는 애를 떼놓고 나가는 게 맞나? 우리 엄마까지 고생시키면서,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는데’,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는데, 난 그게 싫었어. 한 번도 엄마가 비가 온다고 우산을 갖다 주거나 운동회에 오신 적이 없었거든. 아직도 비 맞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나고, 운동회 날 다른 집에선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와서 돗자리 펴 놓고 도시락 먹는데 난 그 친구네 가족들이랑 같이 먹거나 아니면 부모님 안 오신 애들끼리 모여서 먹고. 학교 끝나고 집에 가도 내가 간식 챙겨서 동생이랑 먹고. 그러면서 엄마의 부재를 크게 느꼈는데, 그걸 내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긴 해.


@ 아빠의 역할도 중요하잖아요.

결혼을 일찍 하든, 늦게 하든, 이 사회에서 결혼은 아직까지 여자가 손해 보는 제도가 맞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결혼이 인간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안 한다고 그 사람 인생에서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자식을 낳는 것 역시 선택의 문제이고. 자식을 낳아보니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그러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 희생과 어려움이 너무 많지. 정말 나와 인연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해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 맞벌이라 하더라도 아직까지 육아는 여자들의 부담이 훨씬 크다고 하죠. 저는 맞벌이는 아니지만, 남편은 일주일에 두 세 번도 있는 저녁 약속이 왜 나에겐 연례 행사가 되는지 억울할 때가 종종 있어요. 지인들과 저녁 약속, 일을 하든 그렇지 않든 엄마가 된 여자들에겐 쉽지 않더라고요.

나도 친구들을 언제 만났는지 기억도 안 나. 지난주에도 두 달 만에 회사 회식이 잡혀서 일주일 전부터 남편에게 시간을 비워달라고 말했는데, 남편도 그 날 회식이라는 거야. 난 회식자리 가서도 부랴부랴 밥만 먹고 집에 가서 애를 데려왔는데 9시. 엄마는 그 때까지 애 보시느라 녹초가 되어 있고. 그런데 신랑은 11시, 12시에 와. 똑같이 일하는데 아침에 신랑은 자기만 씻고 나가면 끝인데 난 애도 챙기고 나도 준비하고. 어느 날은 아이 옷을 날씨보다 좀 얇게 입혔다고, 엄마가 나한테 뭐라 하시더라고, 애 옷 좀 잘 입히라고.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아빠들한테는 안 해. 빨래가 쌓였다고 아빠들한테 뭐라 하니?


근데 뇌 구조가 달라서 그런지 엄마의 마음은 아빠의 마음과 다를 수 밖에 없는 것 같더라. 어린이집에서 알림장이 오면 마음이 덜컹 하고, 사진을 보내주면 그 사진만 봐도 눈물이 핑 돌아. 늦게 낳은 자식인데 잘 해 주지도 못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

KakaoTalk_20201121_115436087.jpg 보기만 해도 눈물이 핑, 우리 딸 ⓒ푸른갈대

@ 언니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좀 놀랐어요. 연애를 하고 있는 것도 몰랐거든요.

다들 그랬어. (웃음) 서른 아홉 살에, 2017년 12월에 했으니 만 3년이 꽉 차가네. 사실 그 때 난 결혼을 포기하고 있었거든. 동호회에서 만난 동생한테 독일어 과외를 받고 있었어, 이민 가려고. 한국에서 여자 혼자 살기 힘들겠다 생각을 했지. 한국에서는 아직도 남의 일에 참 말들이 많잖아.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하니?’, ‘대학 어디 갔니?’, 대학 졸업하면 ‘취직은 했니?’ 그 다음엔 ‘언제 결혼할 거니?’. 난 그런 게 너무 싫은거야. 그런데 엄마는 계속 선 보라고 하고. 그 해 4월에 엄마랑 대판 싸우면서, 이번이 마지막이고 다시는 선 안 본다고 하고 만난 남자가 지금 남편이야. 그 전까진 어떻게든 잘 해봐야지, 했는데 그 때 선 볼 때는 마음이 아주 편하더라고. 어차피 난 이민 갈 거니까. 아, 남자가 키가 작다고 했으니 그 사람 기를 확 죽이려고 엄청 높은 힐을 신고 나갔어. (웃음)


그런데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상대가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는 거야. 아, 그렇구나, 하고 “안녕히 가세요”하고 난 집으로 왔지. 근데 나중에 연락이 오더라고. 사귀면서 보니 진짜 그날 중요한 약속이 있었더라고. 그 다음에 몇 번 만나보니 되게 무난한 사람 같았어. 예전에 너무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웃음) 사람만 무난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4월에 만났는데 8월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사람이 참 순수하더라고, 살아보니 아니었지만. (웃음) 그렇게 결혼하게 됐지.


@ 무난해서 결혼한 거에요? (웃음)

둘 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 ‘이 사람과 꼭 결혼을 하겠어!’ 이런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구체적인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이 사람과 결혼한 건 아니야. 그동안 선이나 소개팅을 안 한 것도 아닌데 그 사람들과 안 되고 신랑이랑 된 거 보면, 신랑이 인연이고, 그 인연의 때가 그 때였던 것 같아. 나도 내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어. 주변 사람들도 다들 놀라고. 특히 독일어 과외해주던 동생은 배신감 느낀다고 하더라. (웃음)


@ 살아봐도 무난한 남편인가요?

결혼 초반엔 엄청 싸웠지. 혼자 오래 산 사람하고 결혼해서 사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느꼈어. 우리 신랑 자취 경력이 20년이 넘어. 혼자 사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지. 그래서인지 그간 살아왔던 본인의 모습을 약간 못 내려놔. 지금도 그걸 100% 다 이해한다고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고 신랑도 조금씩 개선이 되고 있고.


임신 중일 때도 ‘속아서 결혼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분명 작년에 만났을 땐 되게 자상했던 사람이 너무 무감각해진 거야. 더군다나 내가 임신 중인데. 퇴근해서 집에 오면 핸드폰만 보고. 내가 입덧도 심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그리 까다로운 임산부도 아니었는데 참 섭섭하더라고. 지금은 남편의 모습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럴까,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힘들구나, 그 생각 많이 해.

사본 -20161126_195045.jpg 사랑도, 결혼도, 노력이 필요한 법 ⓒ푸른갈대

@ 저와 남편도 아이 어린이집 같은 반 부모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요. (웃음) 아이가 커갈 수록 체력이 딸리는 걸 느끼죠. 그렇지만 부부가 맞춰가는 과정에서나 아이를 키울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좀 더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늦은 결혼과 출산이 주는 장점이 아닐까 해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 난 사회생활 18년 차지만 신랑은 10년 차거든. 사회경험이 있고 또 신랑보다 더 많으니까 상대방의 사회생활 패턴을 알고 '아, 이렇겠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거지. 신랑이 “이렇게 해도 돼?”하고 물어보면 ‘노’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그리고 막상 살다 보니 아등바등 해 봤자 다 똑같더라고.


또 작년에 남편이 결혼 전 빚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배신감이 너무 컸었거든. 내 직업병일 수도 있는데, 결혼 전에도 빚이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없다고 했거든. 그런데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잖아. 그 일을 계기로 경제권이 나에게 넘어왔고, 그래서 우리 가정 경제를 꾸려나가기 위해서 내가 더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있어. 그런데 내 나이도 있고 하니 그나마 남편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아이를 키울 때도 ‘최고로, 많이’, 그런 게 없어. 빠른 애들은 돌 때부터 영어도 가르치고 그러잖아. 주변에 아이를 놀이학교 보내는 친구들도 있고. 난 영어유치원 같은 곳에 보낼 생각이 없거든. 여유가 안 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애가 그쪽에 관심이 있으면 잘 하겠지’ 하는 생각이 있어. 애 봐주셨던 첫 번째 이모님이나, 살아오면서 주변 육아 선배님들 이야기들을 허투루 듣지 않는 거지. 내가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나도 좋다는 건 다 사고 시키고 했을 것 같아. 지금은 그저 애가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어.


또 내가 많이 놀아본 건 아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까 어디 여행을 못 가. 특히 요즘 더 그렇지만. 그런데 결혼 전에 여행도 다녀보고, 엄마랑도 여행 다녀봤고 나름대로 즐겨 봤으니 그런 것에 대한 미련이 없달까. 그나마 지금 상황을 참을 수 있는 거지.


@ 결혼해서 참 좋다, 하는 순간도 많잖아요.

안정감을 주는 거. 혼자일 때보단 지금 뭔가 좀 더 안정된 느낌이 있지. 내가 공황장애를 겪고 있잖아. 작년에 남편의 빚을 알게 됐을 때도 안 왔던 공황장애가 회사일로 왔는데, 그러면서 신랑에게 위로를 많이 받았지. 이 사람이 말은 많지 않아도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 아빠는 죽을 때까지 내 편이라지만 남편은 나와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남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서 내 편을 들어준다는 생각이 드니까 감정적으로 든든함? 그런 게 들더라고.


@ 결혼을 앞두거나 결혼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서로에게 솔직했으면 좋겠어. 작년에 그 큰일을 겪으면서 깨달았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결혼 초에 빨리 겪어서 다행이다 싶어. 늦게 알았으면 일이 더 커졌을 거고 내 충격이나 상처도 더 컸을 테니까. 그래서 결혼을 하려면 상대에게 솔직해야 해. 자기의 치명적인 실수나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어떤 부분을 속이고 만나는 건 아니라고 봐. 세상에 비밀은 없어, 솔직하게 말하고 만나야지. 결혼할 사람이라면 함께 감내하고 해결할 방향을 찾을 거야.


@ 언니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에요?

음, 또 하나의 인내의 길을 걷는 것? 작년에 큰 일 겪고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거기서 배운 건데, 누구나 원가정에 문제는 있잖아. 나도 우리 아빠와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아빠와 같은 사람을 피하고 피해서 결혼을 했던 건데, 알고 보니 피한 게 아니었던 거지. 소름 끼치더라고. 아, 그런 거구나. 그렇다면 난 지금 또 하나의 인내의 길을 가야 하는 거구나, 생각했어. 상담 선생님도, 결혼이 마냥 행복할 거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고 하시더라. 또 하나의 길을 닦아 나가야 하는 거라고. 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배우자는 내가 피하고 싶은 걸 다 피해서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환상이었더라. 심리상담 받으면서 정말 마음의 치유가 많이 됐어. 마음의 길을 지금부터 잘 닦아 놓으면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을 더 잘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에게 결혼이란,

인내하며 또 하나의 길을 닦아 나가야 하는 것.


평생 짠한 존재,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에 고군분투 중인 결혼 4년 차 푸른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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