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에 여자라는 설렘을 얹어보려(1)

[대화의 기록]1편 - 결혼

by 인터미션

회사 출퇴근을 안 하면서 ‘특별한’도 없어지고 ‘대외 활동’도 없어지다 보니 24시간 추리닝 단벌로 사는 나를 보게 되었다. 설거지하며 튄 물, 청소하며 묻은 먼지, 음식하며 밴 냄새, 아이 어르고 달래며 묻은 침, 거기에 내 땀까지 차곡차곡 쌓인 그 옷을 이불 안까지 들여오고 싶진 않았고, 그래서 뒤늦게 잠옷이라는 걸 입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하루에 두 번은 스스로 단장하려 했다, 노동자와 휴식자로.

비난 나만의 일이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대학시절 언제나 이름 앞에 ‘예쁜’이라는 형용사가 붙여 불리던 친구, 이아영도 그랬나 보다. 작고 하얀 얼굴, 까르르 웃음소리, 긴 생머리 휘날리던 그녀도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고 나니, 푸른 꿈 속을 날 새도 없이 거친 오늘을 헤쳐 걷는 단벌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 속에 순간순간 자신을 놓치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스스로를 껴 안을 수도 없었던 하루하루의 삶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새롭게 ‘나’를 보고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짝과 ‘우리’에 대해 고민한다. 비로소 요즘 결혼생활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결혼 11년 차, 이아영과의 대화다.


* 글과 함께 실린 사진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의 개인사진이니 임의 사용을 하지 말아주세요.


@ 네가 결혼한다고 해서 친구들끼리 모인 날에 널 데리러 온 귀여운 분(웃음), 네 남편 첫 인상이 참 좋았어.

그때는 부르지 않아도 내가 있는 곳을 다 쫓아다녔지. (웃음) 한 살 어린데 하는 짓은 열 살 어린 것 같지만. (웃음)


@ 그때는 네가 결혼을 빨리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빠른 나이는 아니었더라.

2010년에 결혼했으니까 딱 서른 살 때지. 주변에 친한 사람들 중에 결혼한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결혼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지. 또 결혼 생각도 없었고. 난 아빠가 안 계시니까 엄마랑 동생들이랑 계속 같이 살 거라고 생각했거든.


@ 그런데 결혼을 한 거네,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연하를 만난 것도 처음이었거든.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는데 주선해 주신 분이 내 나이를 착각해서 동갑이라고 했다는 거야. 나중에 한 살 어리다고 해서 ‘한 번 만나고 말아야지’ 했는데 남편이 두 번인가? 만났을 때부터 계속 결혼하자고 하더라고. 난 농담으로 생각했거든. 그때 엄마가 조그만 식당을 하고 계셨는데, 도매시장에서 장을 볼 때마다 배추며 무며, 남편이 와서 그걸 자기 차에 실어다 줬어. 남자들이 차 엄청 아끼잖아, 근데 그때 남편 차가 산 지 1년도 안 된 새 차였더라고. 그 차에 이것저것 막 실어다 주는 거 보고 ‘착한 애구나’ 생각을 했지. 여하튼 남편은 계속 ‘기승전결혼’이었어.


@ 상대가 싫었다면 ‘기승전결혼’이 귀에 안 들어왔을 텐데.

그 당시 내 삶이 참 피곤했어. 기댈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아빠도 안 계시고 남자는 막내 남동생 뿐인데, 남자가 주는 울타리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없는 거야. 그런데 남편이 계속 그런 역할을 하려고 하더라고.


또 남편이 자기 부모님들도 날 아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가족 행사에 두 번인가 갔었어. 가서 보니 아버님도 그렇고 남편 집이 되게 가정적이야. 가족에 대한 끈끈함이 있는, 그런 집에서 자란 거지. 사촌 형들도 다 결혼을 빨리 했고,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괜찮아 보였나 봐. 그래서 자기도 빨리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했던 것 같아.


나도 이 사람과 결혼하면 좀 더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가정을 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러는 와중에 어머님이 식장을 잡으셨더라고. (웃음) 연초에 만나서 10월에 결혼했으니 엄청 빨리 결혼한 거지.

우리, 세 식구 ⓒ 이아영

@ 결혼식 준비하면서도 부딪힐 일이 많잖아.

우린 결혼식 준비하는데 문제가 하나도 없었어. 한 번도 안 싸웠어. 나도 별 생각이 없었고, 이 사람도 최대한 내가 신경 안 쓰게 했고. 가구나 뭐 그런 것에 둘 다 관심도 없었고 잘 모르기도 했고. 그래서 큰 문제 없이 굉장히 순탄하게 결혼했지. 그런데 결혼해서 우리에게 놓인 가장 큰 문제는 육아였어.


너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고 생각했던 게,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것과 육아라는 걸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싶더라. 결혼 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보통 사람들을 보면, 난 그 8할 이상이 육아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 육아 자체의 어려움도 크지만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변하는 나와 내 주변의 상황들도 결혼생활을 ‘힘들다’라고 만들곤 하지.

맞아. 별 문제 없이 결혼을 했는데 애를 낳으면서 급격히 우울증이 왔어. 결혼준비 하면서 아이가 생겨서 그 다음 해에 출산했으니 신혼이 아예 없었지. 임신 중에는 되게 좋았어. 난 대학생 때부터 일을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거든. 아르바이트도 계속 하고, 나중엔 시간 강사에. 휴. 그래서 임신하면서 일을 쉬니까 너무 좋은 거야, 먹고 놀고 자고.


그런데 애를 낳고 친구도 없고, 가족들과 떨어진 곳에서 혼자 아이와 있다 보니 내가 잉여인간 같더라. 아이는 참 예뻐, (웃음) 예쁘잖아. 그런데 대화할 상대가 없는 거야. 약간 멍, 한 상태로 몇 개월 지내니까 정신병이 오는 것 같더라고. 아이가 4, 5개월쯤 됐을 때 남편이 직장에서 집으로 뛰어오기도 했어. 내가 전화해서 엄청 히스테릭하게 소리지르고, 애 울면 같이 울고. 난 진짜 우리 애가 잘 자라준 게 너무 고마워.


@ 나도 출산 후 타지로 와서 하루 종일 아이하고만 있었거든. 성인들의 대화가 없다보니 내 어휘력도 줄어들더라고. 혼잣말도 늘고. 왜 엄마들이 혼잣말을 많이 하는지 그때 알았어. (웃음) 그렇다고 갓난아이와 외출이 쉽지도 않았고. 우울증의 시작이 이런 거구나, 싶었지.

너무 답답했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 지금은 사는 동네가 많이 번화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되게 시골이었단 말이야. 갈 데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애는 어리고. 그래서 애를 카시트에 태우고 혼자 밤 새 돌아다닌 거야. 제부도 바닷길도 가고, 가서 어항 속에 새우들 헤엄치는 것도 보고. 우리 애가 밤낮이 완전 바뀌었었는데, 나도 학원 강사를 오래해서 야행성이라 밤에는 애랑 얼마든지 놀아줄 수 있었거든. 근데 애가 낮엔 자야 하잖아. 그런데 낮에도 잘 안 자는 거야. 그게 너무 힘들었어.


육아서적도 한 다섯 권 찢었다. (웃음) 육아 공부를 해보겠다고 사서 봤는데 다 아닌 거지. 막 찢다가 종이에 손 베고. (웃음) 그러면 남편이 새벽에 퇴근해서 그거 치우고. 그렇게 전쟁 같은 2, 3년을 지냈다.


@ 곧 다시 일을 시작했잖아.

아이 낳고 1년쯤 지나서 엄마가 일 접으시고 우리 옆 아파트로 이사하셨거든. 어느 날 우리집에 반찬 주러 오셨는데, 날 보더니 갑자기 “엄마가 애 봐줄 테니까 다시 일 할래?” 그러시더라. 20대 때 8cm짜리 힐 신고 풀메(풀 메이크업) 아니면 안 나가던 애가 아이 낳고는 하루 종일 파자마만 입고 있더라는 거야. 그걸 보고 되게 마음이 안 좋았다고 하시더라고. 그 전까진 절대 아이 안 봐주시겠다고 하셨거든. 그때 바로는 아니고 좀 지나서 파트 타임 강사를 다시 시작했어. 아이가 5, 6살 될 때까지 엄마가 많이 봐주셨어. 학원 강사들은 오전에 시간이 되니까 오전에는 내가 케어하면서 어린이집 데려다 주면, 엄마가 같이 하원해서 밥 먹이고 씻기고, 저녁부터는 나랑 남편이 번갈아 보고.

혼자 놀 때 탄생한 아이의 종이접기 작품들 ⓒ 이아영

그러면서 엄마랑 두, 세 번 의절했지. (웃음) 엄마랑 딸들이 욱해서 싸우잖아. 그럼 서로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거야. 나도 자존심 상하니까 애 안 봐줘도 된다고 하고, 엄마는 기껏 봐줬더니 그런 이야기한다고 하고. 그럴 땐 아이를 시댁에 잠깐 맡기기도 하고. 엄마가 봐 주신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부부가 휴가 내고 연차 모아 쓰고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끌어왔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참 하루살이처럼 사는 것 같다. 하루는 이 집에 맡기고 또 하루는 저 집에 맡기고.


언젠가는 아침에 출근하는데, 그때 집 근처에 신도시 조성한다고 레미콘이나 큰 트럭들이 많이 다녔거든, 운전하고 가다가 백미러를 보는데 뒤에 엄청 큰 차가 오는 거야. ‘저 차가 날 치고 갔으면 좋겠다’, 그 생각이 들더라. 그 생각을 하는데 슬프지도 않아, 그냥 멍 하니. 며칠에 한 번씩 그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굉장히 위험했던 거지. 그때가 정말 우울과 갈등이 피크였던 것 같아. 바쁜 남편을 잘 보지도 못했고 육아를 내가 더 많이 하네 마네 그러면서 싸우고. 낙이 없었지, 판단도 흐려지고 술만 마시고. 아이가 네다섯 살 땐데 남편과 싸우면 혼자 애 데리고 놀이공원 가고, 박물관 다니고 그랬어. 이를 꽉 깨물고 씩씩하게 살 거라고 하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그런 게 주기적으로 왔어. 그러다 아이가 크고 남편이 아이를 보살피는 시간이 좀 더 늘면서 내가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아.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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