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에 여자라는 설렘을 얹어보려(2)
[대화의 기록] 1편_ 결혼
@ 지난해는 코로나 때문에 맞벌이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더 막막했을 거야.
안 그래도 하루 버티고 하루 사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났을 쯤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서 끝난 게 아니구나, 했지. 회사에 있는데 아이 학교에서 단체문자가 왔어. 학교 근처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으니 지금 바로 애들을 집으로 다 데려가라는 거야. 혹시 못 데려가는 사람은 긴급돌봄 신청하라고. 그런데 긴급돌봄 신청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아파트 앞 동에 사는 아이 친구 엄마한테 부탁해서 같이 데려와 달라고 해서 그 집에 잠깐 같이 있게 했고. 그런 임기응변을 계속 하고 있지. 그런데 여기서 되게 아이러니한 건, 이런 컨트롤을 여전히 나 혼자 하고 있다는 거야. 남편은 “그래서 어떻게 했어?” 물어보면 내가 “이렇게 저렇게 했어” 그러는 거지.
@ 육아에서 남편이 담당자 보다 조력자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왕왕 있잖아. 나도 육아휴직 후 복직할 때 남편에게 3개월 육아휴직을 권했는데 남편의 황당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
많은 남자들이 육아가 자신들의 일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아. 그걸로 가장 많이 싸운 것 같아. 동지가 없다는 생각. 난 지금 전쟁터에 나섰는데 나가보니 나 혼자인 거야.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고.
제일 화가 났던 건 남편이 “그래서 뭘 원하는데? 내가 도와주고 있잖아”였어. 그 말 듣고 내가 엄청 욕을 욕을. (웃음) ‘너의 일이나, 내가 열과 성을 다해서 도와주고 있지 않느냐’, 그거잖아. 남편한테 앞으로 도와준다는 말 한 번만 더 하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그런데 의도치 않게 내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라 토요일 하루는 남편이 온전히 아이를 케어하게 됐거든. 그런데 남편도 야행성이라 토요일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거야. 그러면 아이는 점심 때까지 굶고 있고. 그 말 듣고 회사에서 펑펑 울었어, 너무 속상해서.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 평일엔 야근하느라 새벽에 퇴근하고 그러니 토요일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건데, 엄마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안 그러잖아. 그런데 남편은 일어나서 아침 챙겨주고 자기도 모르는 새 잠이 드는 거라고 하더라고.
여하튼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이젠 남편이랑 아이가 엄청 친해서 나 없이 둘이 되게 잘 다녀. 남편이 낚시를 너무 좋아해서 아이 어릴 때 혼자 1박 2일로 낚시 가고 그랬는데, 그땐 참 싫고 엄청 싸웠는데 지금은 아이를 데리고 가니까 (웃음) 나에게 1박 2일간 자유가 주어지지. 또 학교에서 1, 2학년 때 아빠 참여수업 같은 걸 하는데, 끝나고 나올 때 자연스럽게 아빠 손 잡고 나오는 애가 우리 애 밖에 없다는 거야. 둘 사이에 끈끈함? 그런 게 생겼어. 그렇게 만들기까지 정말 전쟁이었다, 다시 겪고 싶진 않은.
나의 개구쟁이 두 남자, 친구같은 아빠와 아들 ⓒ 이아영@ 육아 외 결혼 생활의 다른 부분들은 어땠어?
남편과 요새 대화하면서도, 우리는 육아 아니면 싸울 일이 없었겠다고 해. 그게 되게 충격적이더라. 이 사람하고 잘 맞네, 안 맞네, 앞으로 이 사람과 어떻게 해야 평생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게 되었다는 거. 결혼 초반에 했어야 됐을 것 같은 생각들을 이제서야, 아주 조금 여유가 생기니 하게 되다니. 이제서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데, 좀 씁쓸하긴 하더라고.
굉장히 슬픈 건, 남편에게도 ‘참 슬프다’고 말했는데 전쟁 같던 결혼 생활에서 아주 조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나서, ‘아, 내가 여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남편과 나, 우리 관계는 뭘까, 서로에게 이성인가 동료인가. 앞으로 3, 40년을 같이 살 텐데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어떤 포지션으로 살 것인가. 말이 잘 통하고 즐겁고 유쾌한 동료이지만, 그것만으로 오랜 시간 한 집에서 사는 게 가능할 것인가. 그런 화두를 남편에게 던졌어. 남편은 ‘나는 여전히 네가 귀엽고, 아이 잘 키워서 고맙고, 결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난 잘 모르겠어. 과거가 너무 치열해서 그런 건지, 이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어쩔 땐 남편이 남자친구 같이 느껴질 때도 있고. 살짝 여유가 돌아와서 조금 설레는 느낌? 마음이 두근두근하고.
@ 이제 두 사람만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구나.
그런데 생각해 봐. 사람들이 결혼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 아빠가 되려고 결혼을 하는 건 아니었을 거란 말이야. 결혼을 할 때 ‘당신은 엄마하고 난 아빠를 해서 잘 살아봅시다’ 그런 건 아니잖아. 그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 남편과 대화를 많이 하는데 다른 건 얘기가 잘 통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벽이랑 대화하는 것 같단 말이지.
@ 와, 정말 그 말이 크게 와 닿는다. 엄마를 하고 아빠를 하려고 결혼하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런데 아이를 낳고 살다 보면 단번에 엄마, 아빠로만 살게 되고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잖아.
꼭 섹슈얼한 것만이 아니라, 뭔가 남자와 여자로서의 설렘? 그런 미묘한 감정 없이, 물론 연애할 때처럼 살자는 건 아니지만, 서로를 향한 그런 마음이 없는 상태로 상대와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을까? 아빠로서, 엄마로서 역할도 있지만 그것 말고 둘 만의 특별함이 없다면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랄까? 아이는 언젠가는 클 거고, 오롯이 둘이 남겨질 시간이 다가올 텐데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을 때 함께 사는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남편은 지금도 우리가 너무 괜찮고, 주변에 물어봐도 우리들처럼 많이 대화하는 부부들 없다고 해. 내가 말하는 포인트가 뭔지 모르겠다고.
지금 우리가 좀 편해졌지만 여전히 숙제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포기하고 넘어가서 현재 평화로움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연애했을 때의 감정이나 그때 생각했던 관계를 다시 떠올려 봐야 하는 것인지, 요즘 내가 결혼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부분인 것 같아. 그러다 포기하고 박서준 나오는 드라마를 봤지. 박서준 되게 잘 생겼다, (웃음) 저런 말과 저런 표정으로 날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고. (웃음)
아주 가끔, 남편 손이 건내주는 꽃다발 ⓒ 이아영@ 부부 사이에 대화가 많다는 건 너희가 건강한 부부라는 하나의 증거 아닌가?
유머코드가 잘 맞아. 가끔 남편이 회사로 간식을 들고 날 데리러 올 때가 있는데 주변에선 너무 좋아 보인다고, 결혼할 때 어떤 걸 봤냐고 물으면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을 하고 있었다’라고 하는데. (웃음) 그래도 후배들에게 결혼을 할 생각이 있다면 유머코드가 맞는지 보라고 해. 대부분 유머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가치관이 비슷한 것 같아. 비슷한 것에 웃고 비슷한 것에 화를 내고, 난 웃는데 ‘넌 저게 왜 웃겨?’ 이렇게 반응하면 유머코드가 아니라 전반적인 가치관이 안 맞는 거일 수 있거든. 나와 남편은 유머코드가 맞고, 남편이 엄청 장난꾸러기야. 나쁘게 이야기하면 철이 좀 없는 거지만 난 그게 좋고. 좀 수위 조절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웃음)
@ 또 결혼을 하면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게 있다면 뭘까?
공감에 대해서. 이 사람과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섭섭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가, 혹은 내가 그걸 이해 못하면 참 힘들지. 이건 싸우면서 깨달은 건데, 화법도 중요해. 자기도 모르게 굉장히 자기중심적으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만약 연애할 때조차 그런 화법을 쓴다면 당장 헤어지는 게 낫지.
@ 지금 생각해보니, 난 그저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을 때 결혼을 했더라고.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너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 때 결혼을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넌 어때?
혼자 잘 살 수 있을 때, 혼자 살 준비가 됐을 때,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 해도 내 삶이 흔들리지 않을 때 결혼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결혼을 준비하면서, 혹은 결혼을 한 이후에도 그 결혼이 어그러질 수 있는데,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내 삶이 흔들리지 않을 때, 혼자 살아도 즐거울 수 있는데 이 사람이 좋아, 그럴 때 결혼을 하면 좋을 것 같아. 결혼으로 인해 내 삶이 통째로 흔들리지 않을 때.
결혼이란,
내 발로 걸어 들어왔는데 쉽게 나갈 수 없는 것이랄까,
내가 선택한 삶이기에, 하루살이처럼 오늘이 끝인 것처럼 열심히 사는 것.
엄마라는 전사의 이름에 여자라는 설렘을 얹어보는, 결혼 11년 차 이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