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을 용기로 스스로 만드는 인생(1)
[대화의 기록] 1편_ 결혼
여성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크게 이슈가 된 웹툰 ‘며느라기’를 나 역시 빠짐없이 보았다. 결혼으로 맺어진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시가’가 등장하면, 무던하게 보이는 일상 속에서 기혼녀의 존재와 입장, 의견이 얼마나 많이 협의 없이 묻혀지고, 생략되며 후순위가 되는지 섬세하고 예리한 컷에 담겨 있어 크게 공감을 더했다. 여전히 많은 ‘시가’, 아니 ‘시댁’이 결혼을 통해 며느리들과 불공정 조약을 암묵적으로 맺어오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 아닌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합리와 합의, 의의와 수단을 판단하는 지극히 이성적인 논리는 관습 내지 인습의 틀에서 집안 분란을 일으키는 불편한 언행으로 쉬이 치부되기도 한다. 살아가는 모습이 변했고, 살아내는 이들의 모습도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11년 째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카스테라 님도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었지만 반복되던 의아한 현실 속에서 ‘미움 받을 용기’를 내고 있다. 시가라는 큰 산을 하나는 넘은 것 같다는 그녀는 이제, 결혼 후 비로소 알게 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와 우리’에 집중하는 결혼 생활을 꿈꾼다. 그 방법을 찾아가는 쉽진 않지만 그만둘 수 없는 여정, 카스테라 님과의 대화를 따라가 본다.
* 대화를 나눈 이의 실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가명으로 쓴 ‘카스테라’는 대화를 기록한 이가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 글에 실린 사진은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의 개인사진이니 임의 사용을 하지 말아주세요.
@ 아이 방학 중이라 하루가 더 긴 요즘이 아닐까요?
지금도 옆에서 뭐 하고 있어요. (웃음) 남편이 좀 일찍 출근하는 편인데, 아침 7시 40분쯤 나가거든요. 그때 밥 차려주고. 대단한 건 아니고 밥에 국 말아주는 정도? (웃음) 그리고 8시 반 쯤에 7살 둘째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하루 종일 첫째랑 같이 있는 거죠. 아이 숙제 봐 주고, 학원 라이딩 하고. 작년에 학교 입학했는데 코로나로 등교한 날이 거의 없어요. 아직 뭔가 대단히 학습하거나 그럴 나이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해요. 그러고 저녁 때 되고.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가 반복되는 거죠, 뭐.
@ 파티쉐라 들었어요.
키즈 쿠킹클래스도 열고 문화센터나 강의도 다녔어요. 제 가게를 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딱 코로나가 터져서 접게 됐죠.
@ 전공을 그 쪽으로 하신 건가요?
아뇨. 결혼 전에는 정유회사에 다녔어요. 국내 정유회사에 정유를 트래이딩하는 외국계 회사였죠. 해외 시간에 맞춰 일을 해야 해서 밤 늦게도 집에서 핸드폰 잡고 일하고. 그 생활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누가 돌봐야 할까, 생각해 봤어요. 그때는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에 계신 양가 부모님들은 아이를 봐 주실 수 없었고, 아이 봐주시는 분을 구해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고. 그 큰 비용을 들이면서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아이를 보자, 해서 퇴사를 하게 됐어요.
일도 힘들고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려고 퇴사했는데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서 참 우울하더라고요. 그때 숙명여대 ‘르 꼬르동 블루’ 과정에 들어갔어요. 가끔씩 린나이나 사기업에서 진행하는 쿠킹클래스에 다녔는데 그게 참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좀 더 배워보고자 한 거죠. 그런데 그 과정이 끝나던 달에 아이가 생기더라고요. 뭔가 배워서 써먹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아이 낳고 키우게 된 거에요.
코로나 이전, 아이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 ⓒ 카스테라@ 아이를 낳는 것, 키우는 것, 그에 따른 퇴사에 대해서 남편의 의견은 어땠나요.
결혼할 때 남편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아이를 예뻐하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제가 27살, 남편이 30살 때 결혼했는데, 친구들 중에서도 결혼이 빠른 편이었죠. 3년 간 신혼을 재미있게 보내고 나니 그제서야 주변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갖더라고요. 그런 걸 보며 남편의 마음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아이를 한 명 쯤은 낳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걸 크게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마도 제가 친구들보다 결혼을 빨리 한 편이었고,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좋으니까 결혼하는 거지’, 이렇게 생각을 한 거죠. 남편은 일단 뭔가를 먼저 이야기하고 끌어가는 스타일이었고 저는 거기에 잘 따라가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남편의 그런 모습이 좀 믿음직스럽기도 했고요. 지금은 아니지만. (웃음)
@ 결혼 전 상대방의 매력포인트가 결혼 후에는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웃음)
그러게요. (웃음) 둘 다 취업 준비생이었을 때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제가 좀 따라다녔거든요. (웃음) 처음 만나 본 스타일이었어요, 그렇게 뭔가를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을. 아마 그런 모습에 제가 많이 끌렸던 것 같아요. 남편이 되게 ‘꾸러기’ 스타일이에요. 남들이 봤을 때 웃기기도 하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 같달까요.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남편의 그런 모습에 대리 만족하고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 후에 아이들 키우다 보면 서로 부부의 희생이 필요하잖아요. 분명 남편의 매력포인트였는데 그런 점들로 내가 힘들어지니 반대로 치명적인 단점처럼 보이더라고요. 나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쉽게 포기하는데, 왜 남편은 그러지 않을까? 서운하고 화도 나고, 결혼을 수백 번 후회하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 깨달은 건 남편은 결혼 전이나 후나 그대로인 사람이라는 거에요. 그 사람이 좀 더 가정적으로, 이타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욕심이었던 거죠. 살아보니 서로 다른 성향을 고치기는 어렵다는 걸 깨달아서,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맞춰가는 중이에요. (웃음)
작고 귀여운 손으로 톡톡톡. 아이들과 함께하는 베이킹 시간 ⓒ 카스테라@ 전 아이를 낳고서 본격 결혼생활의 시작을 느꼈어요. 아이가 없을 때는 결혼 전과 제 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출산 후 모든 삶의 모습이 바뀌었으니까요. 언제 결혼을 제일 먼저 실감하셨어요?
결혼 후 첫 명절에 시댁에 갔을 때요. 서울에 살 때였으니까 명절 때 시댁에 가서 2, 3일 씩 자고 왔거든요. 지금은 시댁과 가까이 살아서 잠을 집에서 자는 게 너무 좋아요. (웃음) 그런데 항상 남편은 고향에 온 거니까 친구들 만나러 나가고 저는 아버님, 어머님이랑 같이 집에 있는 거에요. 어머님은 남편 들어오면 저한테 한 소리 들을까 봐 새벽까지 안 주무시고 기다리셨다가 문 열어주시고. ‘아, 이 집에는 내 편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진짜 다르구나’, 하고요.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도 내 편은 없는 것 같아요. 시댁에 가도 남편은 대우를 받고, 친정에 가도 대우받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명절은 내가 며느리임을 여전히 확인 받는 날 같아요.
@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시가는 결혼한 여자들에게 원만하게 지내기 힘든 대상으로 종종 자리하지요.
남편이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 저희가 일산에 살고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도 길고, 그때는 회식도 많으니 남편이 집에 오면 밤 10시, 11시인 거에요. 특히 아이 둘 중 하나가 아플 때면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와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어요. 남편이 지역 발령을 받아도 조금이라도 일을 시작하기에 편한 곳을 선택하기로 결정하기로 했는데, 마침 시어머니께서 가까이 살면 아이를 자주 봐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고민없이 시댁이 있는 지역으로 갔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아이를 안 봐주셨어요. 제가 허리 디스크가 있어서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는데, 그 사이에도 아이를 안 봐주셔서 멀리 사시는 친정 엄마 오시라고 해서 아이 맡겨 두고 병원에 다녔어요. 그때 시어머니한테 많이 서운했어요. 어머님이 그때만해도 50대 초반이시라 젊은 편이셨는데, 막 사회활동 재밌게 하실 때라 그러셨는지. 나중에 남편에게 얼핏 듣기로는, 한번 아이를 봐주기 시작하면 계속 봐야할 것 같았다고 하셨다는 것 같더라고요. 여튼 지방에 내려와서도 육아는 다 제 몫이었어요. 그리고 매주 주말 시댁에 가서 지내고요. 제 집에서도, 시댁에서도 뭔가를 계속 해야만 하는 사람은 저였어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