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해도_이지현

[대화의 기록] 1편_결혼

by 인터미션

사람의 발걸음엔 기운이 실려 있다. 등장 만으로도 주변을 환하게, 어둡게, 차분하게, 흥분되게 하는 건 그 기운의 덕이고, 탓이고, 때문이겠다. 미술을 전공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프라이빗 전시회를 열어주고 있는 이지현은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발걸음마다 긍정의 기운을 담아 딛는, 내게는 없는 재주가 부러워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늘 먼저 웃고, 그 웃음이 맑으며, 웃음 안에 실린 겸손과 솔직함이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먼저 두드린다는 걸 깨닫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오랜 연애기간이 언제나 화제였고 그 남자친구와의 결혼도 한 편의 아름다운 로맨스 같았는데, 남자친구에게 연애도 결혼도 먼저 하자 하고, 헤어지자던 상대방의 통보를 유야무야되게 했다는 그녀의 일화는 이미 우리 사이에 유명한,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였다. 언제나 삶을 만들어내고자 도전하고 최선으로 이끄는 그녀의 모습이, 적어도 주변에 힘겹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그녀가 가진 밝음의 덕 때문이겠다. 하지만 ‘결혼’을 두고 나누던 이야기 속에는, 웃음으로 귀결되도록 애썼던 치열했던 사투가 곳곳에 서려 있었다. 웃기 위해, 수없이 안으로 울었을 것 같은, 그래서 지금 다시 웃을 수 있는 결혼 12년 차, 이지현과 나눈 대화를 풀어본다.


* 글과 함께 실린 사진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의 개인사진이니 임의 사용을 하지 말아주세요.


@ 결혼을 주제로 한 대화글을 싣고 있다고 했을 때, 네가 '롤러코스터 같은 결혼생활’이라고 했잖아. 난 결혼으로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입문하게 되었는데, 넌 그 세계가 엄청 스펙타클했나보구나. (웃음)

마침 어제(12월 6일)가 결혼기념일이었어. 12주년. 와. 연애 9년 반 하고 결혼 12년이니 진짜 청춘을 이 사람과 같이 보낸 거지. 인생의 반을. 남편이 어제, 이제서야 자기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하더라. (웃음)


@ 남편을 대학생 때 만났다고 했지?

내가 예중, 예고를 나왔는데 난 그때까지 세상에 음악, 미술하는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거든. 너무 뻔한 그런 분위기에서 살았던 거지. 그러다 진짜 여대 가기 싫었는데 여대를 가게 된 거야. 그래서 대학 연합 연극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정말 거기에서 그 전의 세상을 깨고 나오게 됐지. ‘이렇게 많은 전공이 있고, 이렇게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구나’, 난 그 전까지 서울에서만 사람이 사는 줄 알았었거든. (웃음) 그리고 자기 학비를 벌려고 열심히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고, 난 정말 충격이었어.


그래서 대학 입학하고 늦바람이 분 거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술도 엄청 마시고 동아리 선배들하고 어울려 다니고. 머리도 빨갛게 염색하고 다녔는데, 그러면서 엄마와 사이가 진짜 안 좋아졌어. 엄마가 꿈꾸던 딸의 모습이 아니었던 거야. 엄마가 어느 모임에 나보고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어. (웃음) 그렇게 엄마와 갈등이 심해지면서 내가 술만 마시면 울었거든. 내가 동아리 1학기 신입이었는데 같은 동기들은 “쟤 또 우네” 그랬는데, 2학기 신입으로 들어왔던 남편은 내가 우는 걸 처음 보니까 “너 왜 울어?” 그랬던 거지. 난 ‘어? 뭐지? 왜 얘가 내 손을 잡지?’(웃음) 그렇게 내가 먼저 남편을 좋아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것보다 대학 입학해서 들뜬 마음에 뭐든 해보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로 연애도 있었는데, 딱 남편이 걸린 것 같아. (웃음) 그런데 내 이상형이 말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남편이 말수도 적었고 참 착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되게 웃긴데, 조용히 지적으로 웃기는 캐릭터랄까. (웃음)


내가 고백했더니 자기도 좋다고 하더라.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어. 근데 나는 ‘오케이, 연애 성공!’ 하고 다른 하고 싶은 거 하러 다녔는데 남편은 당황했다고 하더라고. 이런 게 사귀는 건가 싶어서. 몇 번 나한테 헤어지자고도 했다는데 난 기억이 안 나. (웃음) 어느 한 번은 나한테 문자로 헤어지자고 했는데 내가 만나자고 해서, ‘아, 헤어지자는 것에 답을 주려나 보다’하고 만났는데, 내가 너무 해맑게 나오더라는 거야. ‘아, 얘가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나 보구나’ 했다고 하더라고. (웃음) 근데 난 정말 그런 문자 받은 것도 생각이 안 나거든. 근데 남편도 “내 문자 봤어?” 이렇게 물을 법한데 그런 얘기도 못하는 거지. 미안했나 봐. 남편이 너무 착했어.


@ 헤어질 고비는 없었어? 10년이 보통의 시간은 아니잖아.

뜨거울 땐 뜨거웠지만 전체적으로 우리가 다른 커플들처럼 매일 만나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 난 내 삶이 더 중요했나 봐. (웃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유럽여행도 친구들과 두 달 갔다 오기도 했는데 남편은, 당시엔 남자친구였지, 힘들어했지만 되게 무던하게 또 기다리더라고. (웃음) 그리고 남편이 군 생활로 방위산업체에 다녔는데, 그래서 훈련도 4주밖에 안 하니까 헤어질 타이밍을 놓쳤지.


그렇게 애틋하게 잘 지내다 대학 3학년 때 남편은 캐나다로, 난 독일로 어학연수를 갔거든. 그때 헤어질 뻔 했어. 연락이 드물어지면서 마음도 흐릿해지고, 서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달까.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런 저런 이유들도 있었고, 남편이 다른 이성에 약간 관심을 두기도 했고, 그렇게 헤어질 상황이 되기도 했었어. 그런데 난 다시 남편을 보니 좋기도 했고 그동안 내가 잘못했던 것들이 생각나기도 해서 제대로 잘해보고 싶더라고. 이때가 만난 지 6년 정도 됐을 땐데 솔직히 함께 한 시간을 누군가에게 뺏기고 싶지 않기도 했거든. 그래서 다시 잘 해보자고 말했고 그렇게 복잡했던 상황이 정리가 되면서 다시 만났지.

IMG_26855.JPG 연인에서 남편으로 ⓒ 이지현

그러다 스물 일곱 살 때쯤 남편이 진로 고민을 하면서, 친한 선배 중에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분을 보고 자기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더라고. 그때 난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가끔 가서 밥 사주고 그랬는데 얘가 한 번에 시험에 붙더라고. ‘어? 대단한데?’ 그랬어. (웃음) 그러고 나니 주변 선배들의 훈수가, 앞으로 남자친구한테 선도 많이 들어올 거다, 그러니 잡아라, 그래서 내가 결혼하자고 얘기했어. 그러니까 남편도 그러겠데. (웃음)


@ 뭔가 ‘너 참 멋지다’ 싶은데, 한편으로 그런 상황들이 좀 웃기기도 하다. (웃음)

나중에 남편도 이야기했는데, 자기는 공부머리만 있지, 스스로를 굉장히 깊이 파고들면서 뭘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잘 못한다고, 굉장히 수동적이라는 거야.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어. 지금은 좀 달라지긴 했는데 당시만 해도 어떤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고, 자기가 상처 받지도 않고, 뭘 기억해두었다가 감동을 주지도 않고. 난 그걸 무난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같이 사는 사람에게 좀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었거든. 그럴 때마다 ‘왜 내가 너 같은 애랑 결혼했나’. (웃음)


그런데 살다 보니 시들시들할 때가 생기잖아. 나도 깜빡 할 때가 있고. 그럴 땐 다행이야. 남편이 그걸 서운해하지 않아. (웃음) 섬세한 남자들은 맘에 안 드는 선물을 하면 싫어하거나 뭘 잊으면 되게 섭섭해한다잖아. 우리 남편은 그걸 따지지 않으니까 안 해줘도 괜찮고. (웃음) 나이 드니까 그런 게 편한 거지.


@ 연애 10년이 결혼 한 달을 못 이긴다는 말도 있잖아. 막상 결혼해보니 어땠어?

진짜 신혼 때 정말 많이 싸웠어. 결혼은 서로의 문화가 만나서 충돌하는 거라고 하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과 나는 다 다른 거야. 그건 살아온 환경이 정말 다르다는 건데, 그 다름의 세포가 몸 속 하나하나에 다 새겨있잖아. 이를테면, 난 냉장고 문을 열어두고 뭔가 하나씩 꺼내는데, 남편은 하나를 꺼내고 나면 꼭 문을 닫아야 해. 또 난 금방 다시 들어갈 거라 방 불을 켜놓고 나오면, 남편은 오갈 때마다 불을 다 끄고 다녀야 하고. 최근까지 싸운 건, 남편은 샤워하고 쓴 수건을 말려서 3일을 더 써. 그거 고치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 (웃음) 쓴 수건을 말리는 것까진 좋은데, 마르기 전에 그 수건을 쓰면 너무 축축하잖아. 그리고 샤워하고 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닦는데 (웃음) 그걸 다시 쓰기가 난 너무 싫은 거지.


@ 각자의 문화가 만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 어쩜 이렇게 우리가 다를까, 싶은 순간의 연속이잖아.

정말 완벽히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 둘은 너무나 다른 사람이야. 일단 자란 환경이 너무나 달라. 나는 아빠가 사업을 하시기도 했고 정치 쪽에도 계셔서 주변에 사람들도 엄청 많고 엄마랑 아빠가 요즘 말하는 밥차를 불러서 밖에서 여러 행사도 많이 하셨거든. 대외적인 활동이 많으셨지. 내 동생도 음악을 해서 성격이 굉장히 들쭉날쭉하고. 전체적으로 우리 집이 감정곡선도 심하고 경제적인 곡선도 심하고, 롤러코스터처럼 곡선이 심한 집이야. 나도 굉장히 외향적이고. 그런데 남편 집안은, 아버님이 열 세 살 때 혼자 상경하셔서 온갖 고난 겪으시면서 자수성가 하셨거든. 대기업에서 30년 회사생활 하시면서 스스로 겪으신 것이 곧 모든 것의 지표가 되셨으니까, 남의 말씀을 잘 안 들으셔. (웃음) 어머님은 거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으셨지만 표현을 하거나 발랄하신 성격도 아니시고. 아들 둘 있는 집안이 언제나 고요했지. 그래서 남편은 감정 표현도 매우 잔잔해. 그렇게 다른 집에서 자란 두 사람이니 부딪히는 게 너무 많은데 안 헤어지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너무 신기해.


아마 처음에는 남편의 조용한 스타일과 나의 외향적인 스타일이 서로 끌렸을 거야. 나도 남편이 말이 없는 게 참 좋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아우, 힘들더라고. (웃음) 그리고 남편은 커피를 안 마셔. 사람들이 탄 걸 기피하면서 왜 콩을 태워 먹냐고 하는 사람이거든. (웃음) 그리고 단 것도 안 좋아해. 딱 밥만 먹어. 그래서 카페 데이트 같은 게 쉽진 않았어. 또 맥주도 너무 졸리다고 안 마셔. 난 커피도 좋아하고 맥주도 너무 좋아해서 남편과 같이 이런 것도 마셔보고 저런 것도 마셔보면서 맛이 어떻다, 향이 어떻다, 공유하고 싶은데 그런 교류가 안 되는 거지.

1607845072566.jpg 언덕도, 눈길도, 손잡고 오르자 ⓒ 이지현

@ 그렇게 둘이 다른데 왜 안 헤어졌다고 생각해?

둘 다 되게 인간적으로 무던한 것 같아. 서로 커 온 이야기를 하면 둘 다 외로웠던 사람이더라고. 상실감이 싫은 거지. 부부 상담도 받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 내가 이혼서류 써 놓고 남편한테 사인하라고도 했는데 안 한 적도 있고. 나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고, 남편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돌아보면 남편이 옆에 있었고 내가 남편 옆에 있었던 거지. 보통 인연이 아니구나,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천천히 서로를 데워주다, 나중에 뜨거워지는,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한 것 같아.


@ 부부상담은 왜 받았어?

아이 낳고 결혼 초반에 내가 사업을 시작했잖아. 대학원 다니며 디자인컨설팅을 하다가 어찌해서 유통 쪽으로 빠지게 됐는데, 남편은 나의 그런 면을 좋아했어. 자기 집은 평탄하게만 살았는데 나는 뭔가 하자, 그러고 하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사업의 A부터 Z까지 모르고 A, B 정도만 알고 사업을 시작했고, 망했지. (웃음) 멀리 보면 많이 배우고 유익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많이 힘들어졌는데 다행히 친정에서 조금 도와주고 남편이 빚을 다 갚아 줬어. 그때 내가 우울증이 왔었지.


우울증을 어찌 겪어내고 내가 본래의 궤도에 오를 때쯤 남편한테 번 아웃이 온 거야. 남편도 그 즈음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거든. 동업자가 남편과 정반대의 성격이었는데 나보다 더 심해. 배터리를 3개 달고 다니는 것 같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데 초반에 남편이 그걸 맞춰가는데 힘들어 했거든. 나도 미쳐 나의 우울증을 다 극복하지 못했고 해소하지 못한 찌꺼기들이 있었고. 그래서 둘이 엄청, 장난이 아니게 싸웠어. 정말 미안한 건 그때 첫째가 다섯 살이었는데 못 볼 꼴을 많이 보여줬다는 거. 아이가 어렸을 때라 다 기억을 못하지만 단편적으로 이미지를 몇 개 기억하더라고.


여튼 그때서야 남편에게 사춘기가 찾아온 거였어.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절절하게 경험했고 자기가 왜 사는지, 왜 이 여자랑 사는지, 모든 사람이 싫고, 심지어 자기 부모님까지 싫어했었어. 모든 것에 화가 난 상태였지. 너무 힘들어서 이혼서류도 내가 썼었거든.


그런데 상담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요새 이혼이 흠도 아니고 많이들 한다, 그런데 여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되면 그때 하시라, 이혼을 하고 나서 여자들이 제일 힘든 게 경제적인 부분이고,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은 정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그리고 아빠가 없을 때 아이와 어떻게 놀지, 아이를 어떻게 키울 지 구체적인 플랜을 짜보라고 하더라고. 그 두 가지가 다 됐을 때 하는 게 이혼이라고. 그래서 이혼이 우선은 아니다, 생각하고 상담을 제대로 받아보자 했거든. 8개월 동안 같이 상담 받으면서 둘이 엄청 울고 그 과정에서 정말 서로를 많이 이해하게 됐어. 놀라운 건 9년을 사귀고 결혼한 지 5년이 됐음에도 우리는 서로를 잘 몰랐었다는 거야. 그때서야 비로소 나를 알게 되었고 상대를 알게 되었지. 그렇게 회복 단계로 갈 때쯤 미국에 가게 됐어.


@ 맞아, 남편 사업차 캘리포니아로 간다고 했었잖아.

남편이 창업 컨설팅을 하다 만난 사람을 통해서 미국에서 사업을 할 기회가 생겼거든. 남편이 영어를 하니까 투자 유치를 해서 사업을 키우자고. 다섯 명 정도 팀을 꾸려 미국에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의 A부터 Z까지 다 엉망진창이었어. 미국행을 위해, 사업을 위해 들였던 모든 경제적인 지원이 다 물거품이 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상황이 더 힘들어지더라. 남편은 일 수습하고 소송 준비하러 한국에 먼저 들어갔는데, 난 좀 더 버텼어.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자', 해서 집도 다 정리하고 마음을 다 틀어서 간 곳이었는데 한국에 다시 돌아가기가 너무 창피한 거야. 그런데 결국 백기를 들고 왔지. (웃음) 다달이 월세가 350만원 넘게 나가는데, 너무 말이 안 되는 거지. 한국 와서는 친정에 7개월 정도 얹혀 살았어. 두문불출하고 사람도 거의 안 만나고. 나중엔 집에도 눈치 보이고 해서 연고도 없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거야. 그래도 전에 상담 받은 게 있어서 서로 노력 했어. 주변에서 ‘여러가지 상황을 좀 더 알아보지 그랬냐’, 그런 비난도 있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극단으로 치닫진 않았어. 남편이 잘 이겨내더라고.

1607844883065.jpg 선물 같은 삶을 위해 서로, 열심히 ⓒ 이지현

그리고 우연치 않게 둘째가 생겼네. (웃음) 우리는 둘째가 참 선물 같아. 우리끼리는 무지개 징표 같은 아이라고 얘기해. 성경에, 노아의 홍수 뒤에 하나님께서 이제 이러한 고난을 주시지 않겠다고 무지개를 띄워서 약속하셨다는 부분이 있거든. 그래서 열심히 살았지. 서로서로 버틴 거야. 그러다 보니 ‘시간이 약이다’는 말도 또 한 번 실감하게 되고. 정말 요즘처럼 평탄한 결혼생활이 처음인 것 같아. 소소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내가 겪은 일에 비하면 손톱 만한 일도 안 되고. (웃음) 아, 참 지금 생각해봐도 스펙타클했네.


@ 배우자가 무너지는 모습을 옆에서 본다는 건 엄청나게 괴로운 일이잖아. 그 순간들을 어떻게 견뎠어?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 나한테 위기를 극복하려는 기질이 좀 있나 봐. 이렇게 가정이 무너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지금 정신을 차리고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왔어. 막 다짐하고 작정하고 그런 건 아닌데, 난 엄마니까, 엄마로서의 생각이 있었던 것도 같아. 또 하나는 그때 종교에 귀의하게 되어서 매일 새벽기도를 나갔어. 그 두 개로 버텼어. 나나 남편이나 둘 다 모진 성격은 아닌 것 같아. 기본적으로 천성이 약은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 그런 기질이 바탕이 되어서, 순간 힘든 것이 있더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남편도 큰 일 겪고 매일 나와 기도하면서 나보다 더 신앙이 독실해졌는데, 그래서인지 우리끼리는 하나님이 붙들어주셨다, 그렇게 이야기 해.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인데 그걸 붙들어주셨다고. 그리고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함께 해서인지 정신과 육체가 섞인 느낌이 들어. 그래서 쉬이 서로를 놓을 수 없달까.


@ 여러가지 힘든 일들을 겪게도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니 참 좋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면?

있지. 주말 저녁에 남편은 여기서 요리하고 난 저기서 요리하고, 요즘 남편이 요리에 빠졌거든. 그러면 거실에선 두 아이가 깔깔거리고 웃고 떠들고. 내가 “밥 먹자” 그러면 같이 모여 앉아 밥을 먹고. 그런 순간에 ‘아, 참 결혼하기 잘 했다’ 생각이 들어. 참 별거 아닌 일상인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한편으로, 어쩌면 우리가 결혼이라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 단지 나에서 다른 가족구성원이 더해졌고 그런 우리가 함께 일상을 보내는 것인데 말야.


이효리가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남편과는 가족인데 벗고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고 그런 사이가 된 게 너무 신기하다고. 나도 그래. 물론 샤워하고 벗고 나오는 집도 있고 아닌 집도 있지만, 샤워하고 남편이 돌아다녀도 그게 막 이상하진 않잖아. 가족인데 그런 모습들이 안 이상하고, 그 사람이 애들 아빠가 됐다가 내 남편이 됐다가 내 연인이 됐다가, 역할이 변하고, 되게 묘하고 복합적인데, 그래도 다행인 건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이 사람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쁘지 않다는 거야. 남편하고 손잡을 때면 이제 서로가 깊이 신뢰하고 있다는 걸 느껴. 결혼 한번 해 볼 만하구나, 싶은거지.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다시 태어나도 결혼할 거냐고 물으면, 지금 남편과 다시 결혼할 거냐고 물으면, 난 잘 모르겠어. (웃음) 이번으로 됐지, 뭐. (웃음) ‘결혼해서 너무 좋아요, 너무 행복해요!’ 이건 아니야. (웃음)



결혼이란,

산을 오르며 느끼는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나는 것


참 다른 남편과 한 몸이 된 것 같은, 결혼 12년 차 이지현



그녀의 추천곡을 함께 나눕니다.

정인 <오르막길>

https://youtu.be/HwC3KGJK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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