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한 가장 오랜 기억은 우리집에 놀러 와서 밥을 먹을 때의 장면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대여섯 살 정도였을 때 같은데, 실수로 물을 엎자 “어머, 물 엎질러졌네.”하는 주변의 말에 얼굴이 시뻘게지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던 소녀의 얼굴이 생생하다. 큰 소리 한 번 듣지 않고 컸다는데, 아마도 큰 소리 들을 일을 만들지 않았던 순하고 여리던 기질은 그녀를 성실하게 성장시켰을 터이고, 지금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암병동에서 생사를 오가는 이들과 함께하는 간호사로 제 몫을 다 하고 있는 중이다. 한때는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폐쇄병동에서 온몸을 무장하고 지낸다고 하여 대견하다 싶었고, 내 아이가 병원놀이에 한창 빠져 있을 때는 진짜 청진기와 바늘 없는 주사기를 간식거리와 함께 보내줘 나보다 마음씀이가 넉넉한 어른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문득 결혼 소식을 알렸다. “바쁜 와중에 할 건 다 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 덕담에 “나 할 이야기 엄청 많아.”하며 웃던 이민주(33)의 이야기를 신혼 여행이 끝나고 들어볼 수 있었다.
* 글에 실린 사진은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의 개인사진이니 임의 사용을 하지 말아주세요.
@ 깨 볶는 신혼 보내고 있어? (웃음) 코로나 시대에 결혼식 준비하고 치르느라 고생 많았다. 날짜 잡는 것도 고민 많았을 것 같아.
결혼식 날을 한 번 정하고는 미루지 않고 했어. 나는 병원에 있잖아. 병원 내 지침이 국가 지침보다 더 강하거든. 우리는 환자들을 봐야 하니까. 어차피 지침이 느슨해지진 않을 거라 결혼식을 길게 끌기 싫더라고. 거리두기 제한이 상향돼서 하객 50인만 된다면 50인만 모시고 하고, 100인이면 100인만 모셔서 하자, 했지. 아마 거리두기가 더 강화됐어도 정한 날짜에 했을 거야. 어차피 결혼을 하면 이 사람과 할 건데 코로나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1, 2년 안에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으니 그냥 해치우고 싶었다는 느낌이었달까?
@ 언제 하더라도 지금 남편과 결혼할 거라는 생각이 확고했구나.
결혼 준비하면서 결혼에 대해서 엄청 많이 생각을 하게 됐어. 그 전엔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 해야지’, 그렇게만 생각을 했고 결혼을 한다, 안 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던 것 같아. 주변 사람들도 거의 다 결혼을 했으니까.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까 결혼은 선택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물론 난 했지만 결혼을 안 해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 비혼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네가 말한 것처럼 결혼을 선택권에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확실히 예전보다는 많아진 것 같아.
응. 그런데 일단 자기 스스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주변을 설득할 수 있는 나의 기준점이라 할 수 있는 생각이 있어야 비혼이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것 같아. 주변에서도 이런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비혼을 인정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 결혼식장에서 두 사람의 데이트 사진들을 보니 대부분 마스크를 하고 있더라. 코로나 시국에 만난 건가?
맞아, 만난 지 1년 됐지, 소개팅으로. (웃음) 원래는 만날 남자가 아니었어. 소개팅 대타로 나온 사람이었거든. 원래 소개받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소개팅 이틀 전에 회사에 일이 생겼다는 거야. 주선자가 너무 미안해해서 혹시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해 주면 안되겠냐고 했는데, 정중히 거절했거든. 원래 하기로 한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 만나는 건 좀 그렇잖아. 몇 번을 거절했는데도 좋은 사람 있다고 만나보겠냐고 해서 결국 나갔는데, 남편을 만난 거지.
만난지 100일 즈음, 첫 커플링 ⓒ 이민주
@ 괜찮은 대타였구나. (웃음)
예전에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들이나 연애했던 사람들에게서,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 그래서 그저 소개팅, 그저 연애만 하는 사람이었지. 이 사람(남편)도 처음엔 결혼 생각 같은 거 안 들었어.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이 있는 사람 같았어. 자신을 지탱하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랄까? 자기 직업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는 사람, 그 직업에 많이 만족하고 있는 사람 같았지. 그렇게 초반에는 좋은 점만 보였던 것 같아. 그래서 만났는데, 코 뀄어. (웃음) 두 번째 만날 때 나한테 사귀자고 했거든. 난 아니었는데. (웃음) 한 시간 넘게 나를 설득한 것 같아. 자기를 왜 만나야 하는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 좋은 사람이라고, 잘 해주겠다고, 자기는 내가 좋다면서. (웃음)
@ 결국 설득 당했구나. (웃음) 너도 설득 당할 정도의 호감이 있었다는 거잖아. 만나고 1년 만에 결혼까지 한 걸 보면.
첫 인상이 나쁘지 않았어. 결혼을 해도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남편이 옆에서 날 굉장히 많이 챙겨주는 걸 보면서였거든. 이 사람과 같이 살면 나를 굉장히 잘 이해해 주겠구나, 생각했지. 내 직업을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내 결혼의 1순위 조건이었거든. 난 3교대로 일하잖아. 낮, 밤이 바뀌고 주말, 공휴일이 없는 사람인데 그런 직업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긴 힘들거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해도 내 직업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옆에서 많이 응원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지.
@ 어떻게 해 주는 게 잘 챙겨주는 거야? (웃음)
내가 3교대로 근무하잖아. 거기다 대학원도 다니고 있었는데 졸업시업도 있고 국가고시도 봐야 했고. 일할 때는 일하고 쉬는 날엔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여자친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같이 있고 싶고, 놀고 싶을 텐데 여자친구가 쉴 때마다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싫을 수도 있지.
그런데 내가 아침에 일찍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 그때 남편 집이 수원이었는데 거기서 간식거리를 챙겨와서 스터디룸에 8시간이고 10시간이고 내가 공부할 동안 옆에서 자기도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같이 있어주는 거야. 점심 같이 먹고 나 차 한 잔 사다 주고, 그러다 저녁 같이 먹고 다시 집에 가서 다음 날에도 공부한다고 하면 다시 간식 사 들고 스터디룸으로 오고. 그런데 그때는 뭘 못해. (웃음) 결혼하려고 공들이는 여자한테 뭘 못하겠어. (웃음)
국가고시를 준비하며 남자친구를 남편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 이민주
@ 남편 분이 집중하셨구나. (웃음) 여자친구가 다른 일이 있다면 그 시간에 따로 자기 하고 싶은 걸 할 텐데 공부하는 네 옆에 같이 있었다는 건 좀 놀랍다.
처음에는 나도 내 공부 할 테니 시간 될 때 잠깐씩 만나자고 했는데, 남편은 같이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그렇게 했어. 그때 내 직업에 대해 많이 믿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또 중간에 내가 코로나 확진자 병동으로 가게 됐었거든.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고민 없이 혼자 결정해서 가면 되는데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쉽게 결정을 못하겠더라고. 고민고민 하다가 지금 코로나 병동 지원자를 받는데 부서에서는 한 명이라도 지원을 갔으면 하고, 그렇지만 지원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거든. 그런데 남편이 자기는 상관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감염에 대한 건 어련히 잘 알아서 챙길 테고,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지지해 줄 거라고. 그런 과정들이 있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내 직업을 존중 받으며 내 생활 패턴을 이어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그게 결혼 결심에 제일 중요한 계기가 됐지.
@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 삶의 모습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게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데 참 중요한 부분이더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구나.
둘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나중에, 미래에~”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아. “우리 결혼할래?” 이런 이야기도 없었던 것 같고, 서로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했던 것 같아.
코로나 확진 병동에서 근무할 때 ⓒ 이민주
@ 여자들의 환상, 남자들의 부담인 프러포즈가 없었다는 건가? (웃음)
시켰지. (웃음) “오빠, 프러포즈해야 해, 할 거지? 난 꼭 받아야 해”라고 이야기했어.(웃음) 프러포즈를 두 번 했는데, 첫 번째는 솔직히 마음에 안 들었거든. 값비싼 선물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벤트 업체 불러서 꽃다발, 양식 코스… ‘아! 하라고 해서, 시키니까 하는 거구나’, 딱 그 생각이 들더라고. 진심은 빠지고. 그런데 결혼 한 달 전쯤에 우리가 되게 위태위태했었거든. 결혼 준비하면서 많이들 싸우잖아. 그 과정 끝에 오빠가 진심을 털어놓고 우리 둘이 울면서 이야기를 했던 날이 있었는데, 난 그날 남편이 했던 말이 진짜 프러포즈라고 생각해. 남편한테도 이야기했어. “오빠가 나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나에 대해 생각해주고, 결혼 준비과정에서 어떤 걸 간과했는지 알고, 깨우쳐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이 자리가 나에게는 진짜 프러포즈”라고.
@ 결혼의 제1관문은 결혼식이지. 결혼 준비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나 보네.
소개팅 자리에 나가서나 남자를 만날 때 내 연봉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어. 어디 병원 간호사 몇 년 차다, 그러면 “연봉이 높다면서요, 한 달에 얼마 정도 벌어요?” 이런 식으로 넌지시 잘 물어보는 거야. 내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직업군이 많거든. 병원 사람들도 그렇고 고등학교 친구들도 그렇고. 우리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 보면 공부 안 한 사람들 없고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 왔고.
또 우리가 또래 남자들보다 평균적으로 돈을 많이 번다는 것도 아니까 남자를 만날 때 다른 조건을 보지 않아. 더 좋은 조건, 더 돈을 많이 버는 남자를 바라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었어. 자신의 직업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다들 결혼을 했지. 나도 같은 생각이었고. 남편은 소개팅 자리에서나 만나면서 한 번도 내 연봉이나 버는 돈에 대해서 묻거나 말한 적이 없었어. 난 성실하고, 탄탄한 직장 다니는 건강한 사람이면 충분했고, 그래서 남편을 만났지. 그런데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 하잖아. 결혼 준비하면서 딸 가진 부모와 아들 가진 부모의 차이를 많이 느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