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내가 직장생활 11년 차거든. 입사 후 3년 정도까지는 사고 싶은 것도 사고, 엄마 아빠 좋은 옷, 신발 같은 것도 많이 사드리다가 이후에는 돈을 쓸 데도 없었으니 차곡차곡 모았지. 그래서 결혼 전에 기반을 많이 다져놨었어. 부모님이 노후자금을 털어 2/3 이상을 부담하셨지만, 내가 모은 돈을 보태고 대출을 받고 전세를 껴서 서울에 집을 사놨었거든. 요즘 전세도 없고 집 구하는 것도 어려운데, 부모님은 살아가는 동안 갚아나가면서 그 아파트에 들어가서 편하게 살라고 하셨어. 딸이 교대근무 하면서 몇 년 마다 힘들게 이사 다니면서 고생하는 거 보기 싫으시다고, 그리고 준비해 두면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결혼하면 그 집에 들어가서 살 거니까 남자 쪽에서 신혼집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잖아. 그래서 나와 부모님은 당연히 예단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남편이 자기네 집은 결혼식 때마다 한복을 어머니 일가 친척분들 다 맞춰서 해 입는다, 다른 사람들 결혼할 때 이불 많이 받았다, 엄마가 애교예단 이야기도 하시더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건 예단을 하라는 소리잖아. 그 이야기를 듣고 엄마랑 나는 충격을 받았지.
물론 시댁도 일부는 챙겨주셨어. 예물도 해주시고. 시댁도 힘드셨을 텐데 결혼한다고 도와 주신거지. 그런데 난, ‘우리가 이만큼 하니 며느리 들이면서 받을 것은 받아야겠다’ 이런 느낌이 들더라고.
첫 번째 프러포즈에서 ⓒ 이민주
솔직히 금액적으로 따지고 보면 아파트에 들어간, 부모님께 상환해야 할 부모님 돈, 대출금을 빼도 내가 해가는 돈이 시댁에서 받은 거에 몇 배는 되거든. 그런데 거기에 예단까지? 소개팅 주선자가 내 지인인데 우리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서 남편 쪽에 전달되도록 이야기를 했나 봐. 나중에 예단 이야기는 어머님이 혼자 준비하시려고 했던 거라고, 그걸 남편이 잘못 이야기한 거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예단은 없애기로 했어.
나중에 엄마가 그래도 며느리가 챙겨야 한다고 해서 예단 이불을 신혼집에 쓸 거 준비하면서 시댁 드릴 것도 해서 보내드렸는데 시댁에선 안 받겠다고 하시더라고. 보내지 말라고 했으면 보내지 않는 것인데,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냐고 하시면서. (웃음) 그런 의도가 아니고 딸을 보내는 것이니 포근하게 감싸주시고 허물은 덮어달라는 의미로 받으시라고 했는데도.
남편한테도 시댁에서 해 주신 돈은 우리가 아파트에 들어가 살 때 우리 부모님께 고스란히 드려 갚아야 하는 돈이라고 말했어. 엄마 아빠의 노후자금 모두가 우리가 살 아파트에 들어있는 거고, 우리도 넉넉하지 않은 집인데 딸이 결혼한다니까 바리바리 싸 주시는 거니까, 너무 죄송하잖아.
남편이 첫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지금 있는 곳으로 이직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거든. 그래서 준비한 결혼 자금 대부분이 시댁에서 해 주시는 거라 남편은 자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었을 거야. 결혼식 준비도 내가 3교대를 하면서 다 하고 있었는데 오빠는 옆에서 미안하다고, 몰라서 못 챙겼다고만 하고. 모르면 주변에 물어라도 봐야 하지 않냐고 하면 자기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물어보냐고 하고. 자존심 상한다는 거지. (웃음)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과 자격지심만 남은 거야.
내가 원했던 건 나나, 우리집에서 준비한 것에 대해서 ‘고맙다, 고맙습니다’ 그런 마음을 말씀하시고 작은 성의라도 표현해주시는 거였거든. 그런데 우리집에서 보낸 성의와 배려가 계속 곡해되니까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
첩첩산중 결혼식 준비의 시작, 드레스투어부터 ⓒ 이민주
이건 내가 욕 먹을 수도 있는데, 솔직히 결혼식 손님 식사비나 폐백비 같은, 우리가 낼 건 당연히 우리가 하겠는데 부대비용까지 칼 같이 반반으로 부담하는 건 좀 억울하다고도 했어. 반대로 생각해보면, 흔히들 남자 쪽이 집 마련 비용을 좀 더 부담하면 여자 쪽이 혼수를 하는 식인데, 내가 집을 하는데 오빠가 혼수를 할 거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래. 그래, 내가 혼수하려고 따로 모아둔 돈이 있으니 그걸로 시작하자 하더라도 아파트에 들어간, 우리 부모님께 상환할 비용이나 오래된 차를 바꾸는 일 같은 것도 우리가 같이 벌어서 해야 하는데, 결혼식 비용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니 그제서야 남편이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고. 그 이야길 남편이 시댁에 가서 했을 거 아니야. 결혼식 부대비용만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시댁이 뒤집어졌었어. 그건 어른들이 상의할 문제지 우리 둘이 정할 일이 아니라고. 그건 못하시겠다는 거잖아.
그래서 한 번 뒤집어 엎었어, 결혼 못 하겠다고. ‘아, 이건 아니구나’ 싶었지. ‘결혼은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한데 정작 여기서 나는 빠져 있구나, 우리 부모님만 딸 시집 보내는데 바리바리 챙기시는구나, 우리집이 보여준 배려를 받아들이시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 와중에도 우리 부모님은 계속 “뭐 해줄까?” 이야기하시고. 그러실 때마다 너무 속이 상해서 “둘이 살면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울면서 이야기하면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결혼할 때 챙기는 것은 당연히 부모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엄마 아빠는 전혀 서운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니까, 정말 몇 달은 내내 울면서 지냈지. 남편과 시댁은 돌려 돌려 이야기하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시댁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셔야 하는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모르셨던 것 같아.
@ 결혼식 앞두고 그만하자고 말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아빠가 항상 그랬어, 결혼 전날이라도 내가 싫으면 결혼식장 안 들어가시겠다고. 그 말에 용기를 많이 냈지. 절대 화를 내진 않고 (웃음) 조근조근 남편한테 이야기했어. “결혼 준비과정에서 나에게 잘하겠다고, 내가 그 이야기를 100번은 넘게 듣고 미안하단 이야기는 200번도 넘게 들은 같은데 오빠가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시댁 부모님이 이렇게 하셨는데 그걸 어른의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난 오빠도, 오빠 부모님도 감당할 수 없으니 2, 3일간 연락하지 말고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자”고 했어. 숙제도 하나 내줬지. 주변에 우리 상황을 다 이야기하고 어떤 조언들이 나오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 그래서 남편이 숙제를 잘 풀었어?
그걸 계기로 되게 많이 바뀌었어. 표정이나 말투도 많이 바뀌고. 초반에는 나한테 무조건 다 괜찮다고만 했는데, 이후부턴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 것 같고. 그리고 내가 뒤집어 엎은 다음 날 나 몰래 우리 엄마, 아빠한테 찾아갔더라고. 부모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모르는 척 하고 만나셨대. 오빠가 많이 생각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됐다고 이야기했다고. 그날 오빠랑 둘이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놓으며 한강에서 펑펑 울었어. 그리고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받고. 이렇게 바뀌고 있는 사람과는 결혼해도 되겠다고 생각을 했지. (웃음)
결혼식의 막이 오르다 ⓒ 이민주
@ 난 결혼하기까지 어려움이 하나도 없었거든. 양가 모두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주셨어. 그래서 결혼 전 남편과 싸우는 일이 없었는데, 오히려 결혼 후 부부로서 살면서 부딪힐 때마다 싸워보지 않은 두 사람이라 잘 싸우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돼. 많이 부딪혀보고, 이견을 표출하고 험난하게 조율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으니까. 넌 어쩌면 좀 더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 사전 백신을 맞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결혼 준비하면서 느낀 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남자가’, ‘여자가’가 있다는 거야. 남자와 여자가동등하게 공부하고 사회생활 하는데도, 아직까지 결혼문화에 대해서는 남녀 구분이 있다는 걸 되게 많이 느꼈어. 그래서 난 결혼 준비 과정이 ‘남녀 차이는 없다, 신부 측이라 뭘 준비해야 하고, 신랑 측이라서 당연히 뭘 넘어가도 되고, 뭘 받아야 한다는 건 없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이해시켜주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
@ 결혼 후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봤어?
그걸 굉장히 많이 이야기했어. 일단 결혼생활에서 우리 둘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고, 경제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지. 우리가 결혼하면 친정 부모님께 상환해야 하는 빚이 생기는 거고, 그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거라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편과 이야기한 건 노후였어. 지금 부모님 세대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 세대는 더더욱 자식들에게 기댈 수 없을 테니 지금부터 준비하자고. 우리는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다른 사람들보다 출발선이 더 앞에 있는데 이건 유산이다, 우리가 받은 걸 우리 다음 세대에도 물려줘야 한다고 이야기했지.
우린 좀 더 성실히, 착실히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 남편도 동의했어. 우리는 이제 시작하는 부부니까 뭔가 강하게 마음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옆에서 내 생각을 따라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니까 그게 남편이 주는 큰 지지라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 둘은 지금 되게 좋아, 너무 좋아. (웃음) 앞으로 그렇게 살아보려고. 그리고 나를 통해서 효도하려고 하지 말라고, 결혼하고 나서야 효자인 척하는 남편도 싫다고 했어. 예전엔 안 하셨던 걸 며느리 들였다고 뭘 하신 게 한 번 있거든. 그걸 경험하고 말했지.
@ 똑순이구나! 나는 왜 네 나이에 그런 생각을 못했지? (웃음) 난 지금도 아이가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 다니게 해 주는 것까지가 부모로서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 남편은 집도 해주고 손주도 봐주겠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생각이 참 달라. (웃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직장 때문인 것 같아. 나도 스물 세 살부터 돈을 벌었는데 간호사들이 평균적으로 직장생활을 되게 일찍 시작하잖아. 한 3년은 다들 돈을 써버리는데 이후에 주변 동료 의사들, 간호사들 통해서 어떻게 돈을 모으고 결혼하는지 보게 되거든. 그렇다 해도 스물 여섯 살부터 돈을 모으는 거잖아. 그런데 요즘 신입들은 돈도 안 쓰더라고. 선배들한테 연금은 어떻게 드는지, 보험은 어떤 걸 드는지 물어봐. 어릴 때부터 그런 집단 속에 있다 보니 뭔가 나도 생각하는 게 빨라지더라고. 그러니까 내 또래 남자들 만나면 뭔가 성에 안 차. (웃음)
@ 앞으로의 결혼 생활에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
책임감. 나는 아직 결혼 초반이고 아이도 없으니까 ‘서로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게 커. 결혼은 어떤 방식으로든 한 쪽만 성장하면 안 된다고 봐. 서로가 커야 하잖아. 서로가 서로를 위해, 나 역시 성장하고 상대방을 생각하며 같이 성장하는 삶을 살다 보면 먼 훗날 서로를 바라보며 ‘내가 결혼을 잘 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결혼이란,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 내가 몰랐던 상대방의 성격, 성향, 집안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이걸 감당할 수 있을지 나에 대한 것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과정.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을 감당하고 책임지겠다는 다짐의 과정.
노력도, 책임도, 성취도, 보람도, 서로가 동등한 결혼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결혼 2개월 차 이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