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삶에 대해 이렇다 할 대화 없이 결혼한 우리 부부가, 그래도 일찍부터 고민했던 건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가 하는 문제였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은 같았다.
남편 회사 특성상 서울 발령은 불가능한데 내 삶의 터전은 서울이었다. 처음엔 아이를 서울에서 혼자 키우는 걸 생각해 보았지만 당시 직장은 '8 to 5' 제도로 오전 8시까지 출근했지만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공연기자로서 많은 공연들을 봐야만 했는데, 평일 오후 8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보고 자정 즈음에 집에 들어가는게 일상이었다. 갑상선암 수술을 비롯해 수술대에 여러 번 오르신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길 생각은 아예 없었다. 베이비시터만으로 이런 삶의 패턴 속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남편은 임신 전부터 아이가 생기면 시가에 맡기자고 했다. 남편의 누님 두 분이 한때 친정에 맡긴 아이를 주말마다 보러 오가셨다는데 그래도 조카들이 잘 자라주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외손주 세 명을 돌봐주고 계신 시어머니께 우리 아이까지 맡기기는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기약없이 나는 서울에, 남편은 경상도에, 아이는 전라도에 살면서 주 1회 상봉하기 위해 가족을 꾸린 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지방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건, 예시에도 없었다. 훗날 결국엔 주말부부로 살아야할 텐데, 아이가 어릴 때만이라도 가족이 모여 사는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낳은 아이는 내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복직 3개월 쯤 앞두고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 그만 두면 죽도 밥도 안 되니까 딱 3개월만 다니고 내려올게. 오빠가 3개월만 육아휴직하면 안될까?"
남편의 황당해하는 나이키 웃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평소 아이 둘 낳으면 4, 5년 휴직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자랑처럼 말했던 회사의 복지가, 남편 머릿속엔 '여직원'들만의 복지였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남편의 대답은 짧았고, 나는 침묵했다. 결혼과 출산으로 그간 이뤄왔던 모든 삶의 요소들이 바뀐 나와 달리, 남편은 물리적으로 거의 모든 것이 변함 없음에 울화가 치밀었다. 왜 여자만 변해야 하는가. 왜 여자만 선택의 기로에 놓여야 하는가. 깜깜하고 아득한 곳에서의 헛발질 같은 나만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쉬지 않고 해도 0, 안 하면 -100. 디폴트값과의 전쟁인 집안일에서 성취감을 얻기란 어렵다. ⓒ 황선아
결국 아이를 시가에 맡겨두고 복직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날아갈 듯 뛰어 기차역으로 향했고, 일요일 저녁 서울행 기차 안에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렀다. 돌을 갓 넘긴 아이는 금요일 밤엔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도 자지 않고 엄마를 기다렸고, 아토피가 재발했다. 복직 3개월 후 11년 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아이와 함께 남편의 직장이 있는 지방으로 터를 옮겼다. 가족도, 친구도, 일도, 나를 채우던 많은 것들과 단절된 곳.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천했지만 여파는 대단했다.
키워드 5. 그래서, 뭘 할 수 있겠어?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니 오전 시간이 주어졌다. 프리랜서로 일하겠노라 마음은 먹었지만 일은 거의 없었다. 현장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공연 글의 의뢰가 대한민국 남쪽에 발이 묶인 내게까지 오기란 쉽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그간 몸담았던 현장에 지치기도 했다. 어쩌다 쓰는 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더욱더 눈에 많이 들어왔다. 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까지 책과 노트북과 싸우려는 의지도 사라졌다. 서점, 극장, 미술관, 그간 날 위로해주던 것들은 KTX를 타고 큰 도시로 나가야만 만날 수 있었는데, 오고 가면 아이의 하원시간이었다. 발은 더 묶인 듯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날 삼켜버렸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어쩌다 밖에 나가면 봄 옷도 꺼내두지 못했는데 사람들은 반팔을 입고 있었다. 어른과의 대화가 고팠지만 남편은 "얼른 쉬라"며 혼자 TV 앞에 앉았다. 지친 몸도, 지친 마음도 스스로 다스려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긍정 마인드가 발휘되진 않았다. 아이와 노인을 위한 복지는 눈에 띄는데 엄마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은 이의 방황을 잡아줄 복지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내 가장 가까운 사랑의 벗 ⓒ 황선아
그래서 자주 구인사이트에 들어갔다. 몇 군데 '되면 어쩌지' 하면서도 이력서를 넣었고, 퇴사 후 몇 개월 되지 않아 근처 대도시 문화재단의 지원사업 담당자로 합격했다. "올해가 내가 아이 등하원을 시킬 수 있는 마지막 해"라고 못 박으며 남편이 독려했고, 미련이 남을까 출근을 결심했다. 하지만 날 기다린 것은 최저시급보다 적은 월급을 받는 계약직의 자리. 15년 경력은 다른 직원들의 감탄사를 자아내고, 내 업무량만 늘게 했을 뿐 그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간식준비부터 사업진행을 위한 모든 일들이 담당자 1인의 몫이었다. 대부분의 부서에서 정규직은 팀장 1인 뿐이었고 팀원들 대다수는 계약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동료들의 마음은 언제나 허공을 떠다니는 듯했다. '아직 내가 조직에서 일을 잘 하는구나'하는 자신감을 얻었지만 그간의 경력과 능력, 나의 의욕이 보상으로 환원되는 재취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달았다. 경단녀. 여전히 난 무언가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키워드 6. 우린 서로 달라요
문득 남편은 동네에 있는 기관의 계약직을 알아보라 했다. 농림, 축산, 교통... 조직의 성격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문학을 배우고 무대를 익히며 일해왔는데, 과거의 내 족적이 그에게도 중요한게 아니었구나 싶어 울컥했다. 아이와 남편 말고 나의 세계가 사라지자 특히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기대는 마음이 커졌는데 그럴수록 우린 서로 다르다는 것에 더 큰 상처를 받곤 했다. 성실하다는 남편의 장점이, 내가 아파 걷지도 못할 때도 출근하는 모습으로 나오자 타인처럼 느껴졌고, 미주알고주알 하지 않는 믿음직함이 자주 나를 외롭게 했다. 여전히 그는 매일 청소했고, 쓰레기를 버리고, 아이를 예뻐했지만, 그의 배려가 나의 바람과 어긋난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농담으로라도 "내 영혼의 비타민 같은 남자를 만나면 바람필 거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남편은 허허 웃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내게 불만이 있겠지.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런 순간은 없었겠지 ⓒ 황선아
아차. 싶었다.
내가 결혼 생활에 괴로운 순간이 있는 만큼 그도 내가 싫어지는 순간이 분명 있을 터인데, 한 번도 내색이 없었다. 친한 친구가 말한 부부 사이의 '긍휼한 마음'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에 서서 좋다, 싫다 말하지 않는 묵묵함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내 처지가 더 애처롭지만 조금은 체념하고 조금은 받아들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발버둥치다보니 날 찌르던 몇몇 것들에 심드렁해질 때도 있었다. 포기일까, 달관일까, 지혜일까. 여전히 헛갈리긴 하다.
키워드 7. 나에게 결혼이란.
결혼은 나를 보는 눈과 세상을 향한 시야를 모두 열어 젖히게 했다. 자존감이 밑바닥을 치고 보니 과거의 그림자만 잡고 살아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니, 이미 과거는 내게서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별 게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에 닿으니 별 거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솟아났다.
성실한 남편과 푸르게 자라는 아이도 곁에 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그네를 밀어주고, 텃밭에서 키운 딸기를 함께 따 먹는 행복은 나를 충만하게 만든다. 기쁨이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경험은 결혼으로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이를 확실히 돌봐 줄 사람만 있다면 경력단절 엄마들만큼 열정적으로 일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말은 진심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결혼 후에야 처음으로 제대로 찾아봤다. 부끄러운 일이다. 여성임에도 여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니. 온라인 북클럽에도 참여하고, 오랫동안 생각만 했던 글도 쓰기 시작했다. 움직이니 뭔가 조금은 더 보이는 것 같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숨통이 트였다. 여전히 혼춘기(婚春期) 속 방황이지만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와 힘이 조금은 생긴 걸 위안으로 삼아본다. 스스로 칭찬하지 않으면 이제 엄마인 사람을 칭찬해 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