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충히 머리 빗어 묶어 부모님이 곱게 키운 딸. 외고 시험엔 낙방했지만 반에서는 공부 좀 한다 했던 모범생. 어느 날 본 연극에 빠져 그 길로 극단에 들어가 대학로에서 공연을 올리는 게 마냥 기쁘던 꿈 푸른 청춘. 알뜰히 월급 모아 매년 휴가 때마다 원하는 해외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일을 하고 돈을 벌었던 경제 활동자.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히고, 또 만들어 나가는게 좋았고, 재밌었고, 보람되었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은 '결혼'을 통해 한 번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세계에 들어섰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계 속에 있던 '나'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생경한 그 모습에 당황스러워서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렸고 책임져야 하는 생명도 생겼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가야 하는지, 갈 수 있는지, 그 무엇도 알 수가 없었다.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간 꾹꾹 눌러왔거나 모른척 했던 '나' 같기도 했다. [대화의 기록-1. 결혼] 편은 그렇게 시작했다. 나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마지막 대화의 기록은 지난 7개월 동안 결혼을 두고 삶의 부분을 나눠주신 아홉 분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맞닿는 주제어에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채우고자 한다. 주제어는 아주 쉽게 추려졌지만, 그에 대한 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참으로 어려웠다. 6살 명랑한 남자아이를 키우며 결혼 7년차에 들어선 황선아와의 대화다.
키워드1. 결혼을 하겠다고?
아빠는 장남의 책임과 의무에 일생을 바친 이 시대 마지막 세대셨고, 엄마는 8남매의 장남과 결혼해 시동생들을 자식보다 먼저 가르치고 결혼시키며 1년에 12번 쯤의 제사와 설과, 명절과 그 밖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치뤄야 했던 이 시대 마지막 맏며느리셨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전을 부쳤던, 고달펐던 엄마를 가장 가까이서 보며 커 온 동정심 많은 딸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 3학년 때 같은데, 내일이 당장 시험인데 예외없이 야자를 안하고 와 음식준비를 돕고 청소를 하며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내게 아빠는 "집안일 잘 하는 사람이 공부도 잘 한다."고 한마디 하셨다. 제사고 명절이고 큰 일이 있어 집 안에 사람이 북적일 때에는 오히려 독서실에 있다 더 늦게 오라고 하던 오빠를 향한 나와 다른 처우에 종종 눈물이 났다.
이쯤되면 결혼을 거부했음이 마땅했다. 한 여자의 인생을 갈아 넣어 '정상'이라고 여기는 형태의 결혼과 가족이 유지되는 걸 이토록 절절하게 보고 느껴왔기에, 결혼이 나에게 긍정적인 의미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엄마도 다 큰 딸을 두고 "여자가 자기 일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된다."고 수없이 말했다.
하지만, 결혼이 하고 싶었다. 손마디가 터져 나가며 찬 물에 빨래를 하고 음식을 하면서도 가곡을 흥얼거리고 농담을 잃지 않으시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엄마가 되어야지.' 했다. 결혼을 거부하기는 커녕, 결혼이 주는 고난도 '엄마처럼 이겨낼거야'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던 것일까. 결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 전에 '결혼은 으레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이미 굳게 자리잡은, 평범한 한 사람이었으리라. 연애를 하며 만나고 스쳤던 남자들은, 연애시절 남자였기에 자상했고 재미있었다. 관계에 있어 평등과 상호존중을 넘어서 힘의 우위를 점령한 건 거의 대부분 여자인 '나'였다. 남녀의 만남에 갈등과 헤어짐이 있다해도 설렘과 기대가 더욱 컸다.
결혼하기 전 해, 엄마와 둘이 다녀온 체코 여행. 지금 생각해보니 참 잘했다 싶다. ⓒ 황선아
엄마도 변했다. 서른이 넘은 딸이 소개팅이라도 나간다 하면 원피스를 다려주고 구두를 사줬다. 만나면 재미있던 남자와의 연애가 우여곡절 끝에 마침표를 찍고 나서 물밀듯이 소개팅이 몰려왔었고 귀신도 곡할 노릇같이 상대 모두가 내게 통장을 드리밀며(왜 남자들이 자기 통장을 보여줬는지 그땐 알지 못했지) 결혼하자 했는데, 그 중에서도 엄마는 "왜, 그 남자 있잖니, 그 사람은 안 만나?"라고 잊지 않고 물었던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키워드2. 왜 이 사람과 결혼을?
소개팅 자리에서 남편은 착해보였고, 그것 뿐이었다. "좋은 분 같은데, 저보다 더 잘 어울리시는 분 만나셨으면 좋겠어요"와 같이 유치하고 비열한 오지랖 문자가 나의 단골 멘트였는데, 여지 없이 남편에게도 전송됐었다. 그런데 이후 대기 중인 소개팅을 하나씩 치룰 때 마다 '그래도 저번의 그 남자가 낫네'라는 생각이 불쑥 고갤 들곤 했고, 그 생각이 드는 찰나마다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었다. '잘 지내시죠?' 하고. 사귀자는 말 대신, 회사 근처 지날 일이 있는데 시간이 맞으면 밥을 사 주겠다고, 그때 여행 가신다 했는데 여행책을 보내주겠노라고. 연애도 안 해봤다는 남자가 이제 보니 고단수였나.
그렇게 2년 동안 두 세 번쯤 만날 때마다 역시 별다른 감정이 없어 돌아서곤 하다가 디데이를 잡고 한 달만 사귀어보자고 했다. 지지부진한 우리의 관계에 어떤 방향으로든 마침표를 찍고 싶었던 나의 제안이었는데, 주말에 한 번씩 만나 미술관을 가고 드라이브를 했다. 그러다 간송미술전을 둘러보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대를 보며 불쑥 또,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른 남자 그만 만나야지.'
이렇게 미술관을 함께 다닐 수 있는 남자면 좋다 싶었다.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도 컸다. 네 번 쯤 만날 때 우리는 결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미술관이 좋은 게 아니라 남편은 역사 덕후였다.
시가에 예단을 보낼 때 함께 보낸, 아빠가 쓰신 예단 편지 ⓒ 황선아
키워드3. 그래서 결혼해서 어떻게 살건데?
서른 다섯 살 여자와 서른 아홉 살 남자가 1월에 본격적으로 만나 8월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8월에 아이를 낳았다. 둘 다 무던한 편이었고, 나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다. '세상사 될 일은 이리 순조롭다'는 말이 적어도 나의 경우인 것 같았다.
'결혼에 대한 그림이 다르다'는 걸 처음 느낀 건 결혼식 청첩장을 돌리던 때였다. 남편은 불쑥 "나중에 은퇴하면 혼자 세계여행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섭섭했다. 아무리 꿈이 그렇다 해도, 한창 깨가 쏟아지고 떨어지기 싫어할 결혼 직전 아닌가. 그리고 이어진 말. "은퇴 전까지 선아는 혼자 다니고 싶은데 다 다녀. 절대 안 말릴게." 결혼을 앞두고, 상대가 그리는 미래에 배우자는 없는 것 같았다. 곧 같이 살건데, 그 사람이 바라는 위시리스트에 '같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때, 우리가 그리는 결혼 후 삶에 대해서 서로 나누었어야 했다.
우리가 왜 결혼을 하는 것인지, 결혼해서 어떻게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대화를 했어야했다. 문제는 우선 내가 결혼 생활에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결혼을 하는 것이 좋았지, 결혼 후 어떻게 살겠다는 이상도, 계획도 없었다. 성실하게, 열심히. 그저 태도만 다지고 있었다. 출산 직전까지, 부부가 일주일에 한 번 만날 땐 태도만 성실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남편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와 육아와 함께 일주일을 마주하니 우리 사이에, 적어도 나에겐 큰 문제가 생겼다. 이 남자와의 대화가 겉돈다는 것, 이 사람은 나를 모르고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 위험선 아래까지 치달았으나 선을 넘지 않는, 적당히 넘어가 하루를 급히 마무리 하고자하는 서로의 태도. 남편과 나는 성실했다. 아이를 보며 번갈아 저녁을 먹었고, 주말이면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한 두 시간 밖에 나갔다 오며 내게 쉴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남편이 밥을 먹을 때 난 아이를 꼭 안고 돌아서 거실 창문 밖을 보며 종종 소리 없이 울었고, 남편과 아이가 없는 빈 집 쇼파에 누워 멍하니 천정을 보며 이렇게 땅 밑으로 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산, 육아를 통해 결혼생활 중 여자로서,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존감이 밑바닥을 쳤다. 그래도 난 아이 발이 그렇게 참 예쁘다. ⓒ 황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