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관은 1인용(2)
[대화의 기록] 1편 _ 결혼
@ 환상은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연애는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사람은 외로우니까? (웃음) 사실 저는 연인이라는 관계보다 좀 더 넓은 개념으로서의 사람을 만나고 싶긴 해요. 제가 여전히 연애를 한다면 분명히 그 상대에게 올인할 것 같거든요. 저는 그걸 계속 경계하는 것 같아요, 한 사람에게 너무 기대지 않는 것. 사람이 쓸 수 있는 에너지에 한계가 있는데, 예전에는 그걸 애인에게 다 쏟았다면 지금은 부모님, 친구, 아예 모르는 사람 등 적절하게 나누고 싶은 거에요. 그래야 관계가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은 거죠. 그래서 연애를 하고 싶다기 보다는 새로운 에너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만나고 싶다, 그런 느낌이에요.
@ 연애는 열려있지만 확실히 거부하고자 하는 건 ‘결혼’이라는 제도라고 했어요.
한국은 결혼이 두 사람의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그게 제일 싫은 것 같아요. 두 사람을 통해서 약 100여 명의 사람이 연관이 되어 버리는데, 저는 그게 너무 버거울 것 같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두려운 거죠. 나도 내 부모님은 챙기지만 일가친척을 챙기지 않는데,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영역 속 사람들을 내가 다 흡수해야 하는가? 그게 싫은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본다면, 두 사람이 기대어 사는 것이 제가 유일하게 가진 결혼에 대한 환상이랄까요. 전 제 이야기를 남들에게 잘 못해요.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누가 묻지 않으면, 아니 물어도 잘 말하지 않는 편이고요. 나의 약한 면을 보여주기가 정말 싫어요.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 독립적으로 잘 사는 사람, 이렇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강한 거죠. 하지만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나, 언젠가는 주변 사람들이 떠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쨌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는 이혼하지 않거나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는 한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게 가능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하지만 나의 약한 점까지 자연스럽게 꺼내면서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관계를 위해 두 사람을 제외한 많은 것들이 들어오는 걸 견딜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견딜 수 없다고 결론이 난 거죠.
요즘 직접 해보고 느끼는 것에 관심이 많아 등산을 시작했다. ⓒ 장경진@ 결혼해서 살아보니 정말 두 사람의 정서적인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깨닫고 있어요. 하지만 저 역시 결혼을 생각하고 준비했을 때 ‘대화가 잘 통한다’ 정도의 생각이었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감에 대해 깊게 생각을 못 했던 것 같거든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의 나이가 되니까 조금씩 그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그저 누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안정감을 갖고 싶고. 그런 생각만 했죠.
@ 안정감이라는 말이 나왔잖아요. 결혼의 장점으로 ‘안정감’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비혼이 불안정한 걸까요? 경진씨에게 안정감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전 회사를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요. 예전에는 인생에 안정감을 주는 사람, 혹은 안정적인 상태, 그런 것들이 오래 지속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인간은 그냥 불안정한 게 기본값 같아요. 안정적인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 순간이 영원하진 않더라고요. 누구를 만나서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는 때가 있지만 그 사람과 있을 때마다 계속 안정적이라고 느껴지진 않잖아요. 이 모든 제 사고 방식의 출발점이 정말 ‘관은 1인용’이에요. (웃음) ‘누구라도 나에게 잠깐 안정감을 주면 땡큐’, 이렇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나의 인생은 나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그 상태에 맞춰서 내가 나를 단련하면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안정적인 순간이 잦으면 좋겠다, 그런 순간을 갖게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죠. 지금 제게 유일한 안정감을 주는 건 이 집이에요. 앞으로의 대출금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유일하게 안정감을 주는 게 이 집인 것 같긴 하네요.
@ 나의 경우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에 ‘이제는 다른 누군가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내 짝이 누굴까, 고심하고 찾기 위해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굉장히 홀가분하게 다가왔거든요. 그것이 결혼이 제게 준 첫 번째 안정감일 것 같네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 보다는 연애를 하고 싶어서 애쓰고, 연애를 하면서 상대가 결혼에 맞는 사람인지 고민하는 데 굉장한 에너지를 쏟는 것 같아요.
저는 ‘모두가 다 짝이 있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어차피 죽을 때 혼자 가는데. (웃음) 어찌 보면 자만일 수도 있는데, 애쓰지 않아도 감정을 나누는 관계가 배우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저는 1인용 삶에 맞는 것 같아서, 거기에 플러스 알파면 좋은 거죠.
제가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잖아요. 제일 처음 혼자 여행을 간 게 교토였어요. 4월에 교토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저는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주변 친구들은 누구도 휴가를 낼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럼 나 혼자라도 갈래’, 이렇게 된 거죠. 어떤 사람은 ‘나중에 친구들과 날짜 맞춰서 갈래’, 이럴 수도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은 거죠. 기본적으로 성향이 1이 기본값이라고 살아서 2가 되지 않아서 불안하진 않아요. 결혼에 대해서 “뭔가 이건 아니야!”라고 전투적으로 생각해서 비혼을 택한 게 아니라, 나는 정말 자연스럽게 플러스가 되면 좋고 아니어도 이 상태로 가겠다는 거죠.
나를 잘 데리고 살기 위해 수시로 여행을 다녔다. 몽골에서. ⓒ 장경진@ 비혼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편견도 있을 것 같아요. “왜 그 나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니?”라든가 관용어 같은 “결혼해야 철 든다”, “애를 낳고 키워봐야 어른 된다” 같은 말들도 있잖아요.
친척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게, 아빠가 형제 중 막내신데, 위에 큰 아버지 네 분에 고모 두 분이 계세요. 그런데 큰 아버지들이 다 딸을 하나씩 두셨는데 아직도 결혼을 안 하셨거든요. 그 분들은 50대시고, 결혼 안 하고 잘 살고 계시니 어른들이 더 이야기를 안 하시는 게 있어요.
그런데 제가 들은 여러가지 말 중에 “지금은 괜찮을 수 있는데 나이 들어서 어떻게 할 거냐”, 그 말이 제일 걱정이긴 해요. 결혼에 대한 유일한 환상이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주는 정도라고 했잖아요. 죽음에 가까워질 때라면 어떨까, 제 생각엔 6, 70대부터는 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 같긴 해요.
@ 비혼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남다른 감정이나 경험 등이 있나요?
올해 마흔 살이 되었는데, 확실히 주류에서 밀린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 그 단계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하잖아요.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이에 대해 묻는다거나,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묻는다거나 그러는데, 결혼을 안 한 4, 50대에게는 물어볼 게 별로 없고, 나도 할 말이 없는 거에요. 내 애기를 할 자리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마흔이 되자마자 확 다음 판으로 넘어간 느낌이랄까.
@ 굉장히 의외의 이야기네요. 저는 결혼 안 한 여성들이 사회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이나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고 사는 모습들을 SNS나 주변 이야기들로 접할 때면 내가 결혼, 출산, 육아로 주류에서 멀어진 느낌을 크게 받거든요. 사회에서 탈락된 느낌이요.
그건 일 적인 영역에서의 이야기일 것 같고, 영역에 따라 다른 것 같거든요. 전 일은 있지만 세대적인 측면에서 이쪽에도 못 끼고 저 쪽에도 못 끼는, 세대 가운데 끼어있다는 느낌이 있는데 나와 가까운 세대 쪽으로 들어가려면 결혼을 했어야 되는 거에요. 그런데 결혼을 하지 않으니 제 나이 또래들이 있는 세대에도 안 들어가지는 거죠.
40대가 되고 지금 제가 설 ‘판’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은 4, 50대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한데 어디서 찾아봐야 될 지 모르겠더라고요. 결혼을 하면 각각의 스테이지가 있어서, 궁금한 게 생기면 그 스테이지에 맞춰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묻는다든지, 책이라든지. 가령 육아책은 많지만 결혼 안 한 사람의 집이나 나와의 관계, 노화되는 몸, 그런 이야기들이 많진 않잖아요.
너무나 슬픈 이야기 같은데, 결혼을 하고 나면 ‘나’에 관련된 이야기가 없잖아요, 나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지. 아이와 결혼을 떼고 40대 여성의 이야기가 분명 있을 텐데, 결혼한 경우는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런 이야기가 없고, 결혼 안 한 경우는 결혼을 안 해서 그런 이야기가 없고. 그런 의문 같은 것들이 있어서 4, 50대의 삶에 대해서 너무 궁금한 게 많아요.
단 하나의 짝보다는 좋은 시간을 나눌 수 있는 넓은 관계를 더 원한다. ⓒ 장경진@ 비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재력과 체력이죠. (웃음) 사실 재력은 잘 모르겠어요, 요즘 제가 잘 못 벌고 있긴 해서. (웃음) 그런데 체력은 정말 너무나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멘탈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멘탈의 많은 부분이 체력에서 나오잖아요. 그래서 재력과 체력 중에 뭘 선택할거냐고 물으면 전 체력을 선택할 것 같아요.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챙기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단 아프지 말아야 하고, 아팠을 때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태여야 되는 거에요. 그 두 가지만 따라주면 적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서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 자가를 가진 이의 자신감인가요? (웃음)
그간 안심이 되긴 했는데, 특히 이 코로나 시대에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위기가 분명히 있어요. 최근에는 집을 팔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긴 해요. 제가 30년 상환 대출이 있는데 지금 5년 했거든요. 대출 시작과 거의 동시에 회사를 그만둬서. (웃음) 미래를 전혀 생각 안 한 거죠. 그래서 돈이 없어지니까 집을 팔거나 전세를 줘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하기도 했어요. 그러기엔 아파트처럼 내 집이 팔았을 때 돈이 많이 남는 것도 아니고. 집을 팔고 다른 데로 간다면 더 낮은 컨디션으로 가야 한다는 걱정도 있고. 전세로 옮긴다면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없는 삶을 이미 살아본 거잖아요. 그래서 집을 파는 것도 쉽진 않더라고요. 아마 팔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집이 가장 안정감을 주긴 하지만 가장 애물단지이기도 해요. 요즘 모두가 그렇지 않나? (웃음)
@ 최근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으로 출산을 해 화제가 되고 있어요. 국내에선 불법이지만, 해외에서는 개인의 선택 영역으로 허용이 되고 있는 부분이에요.
저는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최근에 결혼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결혼 전 난소에 문제가 있어서 생식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해서 난자를 얼렸거든요. 그 친구가 그리는 행복한 가정에는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 거죠. 그 얼린 난자로 지금 시험관 시술을 계속 시도하고 있어요. 제 입장에서는 저렇게까지 힘든데도 계속 시험관을 해야 하나, 싶지만 그건 제 친구가 생각하는 인생이고, 제 친구가 바라는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인 거죠.
생각해 보니, 전 정말 나 이외 사람을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네요. (웃음) 나 하나 책임지고 살기도 너무 힘들어서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나에게만 쓰는 거죠. 어떻게 보면 나의 편의를 위해서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았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못 질까 봐 너무 무서운 것 같아요.
@ 나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요?
결혼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기도 하고, 각자의 결혼은 다 다르기도 하고, 정말 정답이 없는 게 결혼 같네요. 결혼에 대한 답을 내가 내릴 수도 있고, 누군가가 내려줄 수도 있는데, 전 제가 내리기로 결심을 했고 결혼을 선택 안 한 거죠. 그런데 어찌 생각해 보면, 전 한국에서 통용되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건데, 어떤 것이 사회가 내린 정답이고 저는 그게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 상황에서 나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아요. 그렇다면 결국 모두가 정답이 아닌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 혼자 서는 것이 인간의 기본 숙명이라면, 혼자 서는 내가 더욱 단단하기를, 더욱 넓기를, 그리하여 아름다운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삶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비혼 상태 장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