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관은 1인용(1)

[대화의 기록] 1편 _ 결혼

by 인터미션

2020년 통계청 사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3세 이상 인구 10명 중 6명(59.7%)은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왔다. 2018년도부터 비혼(非婚)에 대한 열린 생각이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에게서 나타나며 그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적당한 나이(혼기)가 되면 으레 하는 것’으로 여겼던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 사항으로 두기 시작한 것은 대단한 인식의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는 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변화를 만들고 있는 많은 이유들이 현재 우리나라에 자리한 결혼의 모습과 결혼을 대하는 자세, 결혼을 둘러싼 현실을 조금은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프리랜서로 공연과 사람에 대한 글을 깊이 있게 써오고 있는 장경진은 자연스럽게 비혼의 길로 들어섰음을 말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대단한 투쟁 의지나 강렬한 호불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과 취향,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뻗어나간 곳에 비혼이 있었고 그것을 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스스로를 일으키고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바라며 살아가려는 한 성인의 가짐. 인간에게 ‘1’이 기본값이라 생각한다는 그녀가 갖고 있는 결혼, 그리고 택한 비혼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 글에 실린 사진은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의 개인사진이니 임의 사용을 하지 말아주세요.


@ 결혼을 한 사람들 중 자연스럽게 ‘결혼은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선택지에 ‘결혼’을 두기 보다 ‘결혼할 사람’을 두곤 하죠. 나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비혼’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결혼을 선택지 위에 둔 경우겠죠?

그렇죠. 비혼은 미혼과 기혼 사이에서 혼인 선택 여부를 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결혼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언젠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 중의 상태요.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비혼을 이야기할 때면 대부분은 독신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독신’이 좀 즉각적인 단어죠.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거고, 독신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결과적인 뜻이 강한 것 같아요.


@ 결혼을 안 하겠다는게 아니라 결혼을 할 지 안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가 비혼이라는 해석이네요.

어느 방송에서 이야기하더라고요, 비혼은 결혼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는 상태고, 독신주의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입장인 거라고. 비혼이라 해도 최종적으로 이런 상태라면 대체적으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죠.


@ 경진씨의 비혼은 어떤 의미인가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동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간다면 거기에서 비롯되는 권리나 의무나, 여러가지가 있을 거잖아요. 그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큰 것 같아요. 두 사람 사이에서 파생되는 감정 이외의 것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에요. 내가 생각하는 비혼은 서로의 감정만 나누는 상태인 거죠.

창덕궁에서- 좋은 순간은 혼자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 장경진

@ 비혼에 대한 생각을 언제부터 했어요?

시대적으로 비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때가 있었잖아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있었던 것 같고. 결정적인 사건을 꼽으면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제가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 결혼 이야기가 나올 텐데 전 그런 상태가 아니었죠. 아니면 부모님과 같이 살고 계신 분들이라면 결혼을 통해서 독립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요.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은 약간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전 이미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었고,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았어요. 지금 결혼할 사람이 없고, 그런 시간이 굉장히 길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집을 샀다는 것. 사실 이게 진짜 중요한 사건 같은데, 제가 합정동에서 한 8년 정도 살았는데 그 집이 싸고 교통도 좋고 여러모로 상태가 좋았지만 굉장히 오래된 집이어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집이었어요. 부모님이 지방에서 몇 번 올라오실 때마다 얘가 과연 언제까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부모님들은 당연히 자식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길 바라실 거니까. 그렇다면 결혼을 해서 좋은 집으로 가거나, 아니면 서울에서 더 좋은 환경에서 살려면 돈이 더 많아야 하는 거죠. 엄마가 선을 몇 번 보라고 해도 제가 시큰둥하니까 한 번은 제게 결혼을 할 건지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그 전에도 “선 자리는 어쨌건 결혼을 전제로 하는 만남인데, 내가 결혼에 생각이 별로 없다, 이 상태로 누군가를 만나는 건 상대에게 못할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죠. 그런 이야기를 몇 번 했더니 엄마가 “네가 결혼 생각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계속 살 수 있으려면 집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집을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제가 서른 넷, 6년 전 쯤이었을 거에요. 그 때만 해도 제가 집을 살 생각을 했겠어요, 그냥 넘어갔지. 그런데 조금 있다 엄마가 또 진지하게 전화를 하시더라고요. 엄마가 돈이 많진 않지만, 너의 몫으로, 결혼자금으로 얼마를 가지고 있는데 이걸 집 사는데 보태라, 지금 쓰지 않으면 나중에 엄마 아빠의 병원비가 될 수 있다, 그러시더라고요. 그 순간 ‘진짜 그런가?’ 생각이 들어서 그 때부터 집을 알아보고 지금 사는 집을 산 거죠.


그 전까지는 ‘내가 이렇게 살다가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을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결혼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을 안하고 있다가 엄마 말씀을 들으면서 처음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봤던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지도 않고, 결혼을 위해서 누군가를 일부러 만나고 싶지도 않다면 일단 내가 결혼이 아니라 먹고 살 수 있는 걸 만들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경진씨 어머님 생각이 열려 있으신 것 같아요.

제게 이런 이야기를 전한 건 엄마였는데, 이런 상태를 만든 건 아빠에요. 엄마는 그래도 제가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하셨대요. 아빠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결혼하면 외조 잘하는 남자 만날 것 같다”, 그런 이야기하셨거든요. 그런데 결국 우리 아빠는, 그냥 내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거죠. 결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신 것 같아요. 엄마 아빠 두 분이 이야기를 하셨고, 그걸 좀 더 자연스럽게 저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니까, 엄마를 통해서 이 이야기가 저한테 들어온 거죠.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부모님의 지지가 컸다.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리스본 여행. ⓒ 장경진

@ 한국 사회에서 자녀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온전히 그 의견을 존중해 주는 부모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인데, 그런 면에서 비혼을 선택할 때 힘들게 하는 큰 장벽 하나가 경진씨는 없는 셈이네요.

그렇죠. 결혼에 대한 압박이 대체적으로 외부의 세상과 부모님으로부터 온다고 보면, 저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압박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동거를 하겠다, 이런 이야기는 아직 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약간 이런 식이세요. 그것이 저의 학교 선택이든, 직업 선택이든, 많은 선택에 영향을 줬는데 결혼의 선택에도 미친 거죠.


외부에서의 압박도 있을 수 있는데, 공연이나 콘텐츠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결혼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제 주변은 특히 그래요. 결혼 준비나, 시댁, 육아, 이런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정말 없어서 제 입장에서는 어떤 청정구역에 있었던 거죠. (웃음)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은 안 해도 되는 거구나,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연애를 안 한지 오래 되었고, 혼자서도 잘 살아가고 있었다’는게 자연스럽게 비혼으로 가게 된 요인 중 하나라고 이야기 했잖아요. 나 역시 연애 경험이 많지 않지만, 언젠가 푹 빠졌던 상대에게 보기 좋게 차인 적이 있거든요. 그때 많이 힘들어하던 제게 주변의 한 분이 이야기하신 게 아직도 기억나요. 연애도 성공의 경험이 중요한데 저는 그게 부족하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감정을 나누는 것이 너무 미숙한가, 연애의 실패가 다 내 탓 같아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일부러 피하지 않는데 오래 연애를 하지 않고 있을 때, 관계 맺음에 대한 자기 의심이 들진 않았어요?

제가 오래 연애를 안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도 아마 그 부분일 것 같아요. 저 역시 연애에 대한 상처가 있는데 그 상처가 정말 어릴 때, 대학교 2학년 때쯤 왔었고, 미처 해결이 안 되는 상태, 그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에 마음을 좀 닫았거든요. 마음을 닫고 나만 잘 지내면 굳이 상처받을 일이 없잖아요. 초반에는 그런 상태를 스스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장기화되다 보니 혼자 하는 것이 익숙한 거에요. 그리고 이 생각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관은 1인용’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어떤 끈끈한 관계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없어요. 거의 첫사랑에 가까운 대학생 때 그 연애가, 나중에서야 생각해 보니 너무 많은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거든요. 당시 전 관계라는 걸 층위를 나눠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친구 사이에서는 조금 속상해도 견딜 수 있는 일을 연인 사이에서는 참을 수 없었던 거죠. 나의 모든 감정들을 상대에게 100% 올인(All-in)해 버린 거에요. 힘든 것도, 좋은 것도 다 올인. 그런데 상대방도 내게 그렇게 100% 쏟는 게 아니라면 두 사이가 어긋나버리잖아요. 사실 그게 아주 좋은 관계도 아니고. 그 이후에 모든 걸 쏟아 붓는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도 깨닫고 환상도 사라진 거죠. 이젠 ‘연애를 해서 이런 걸 해야지’, 하는 생각도 없어요. (웃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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