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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숙자 Mar 28. 2017

논-액션 스릴러의 신성(晨星), '미스슬로운'

https://www.instagram.com/sukja07/

미스 슬로운 (Miss Sloane, 2017)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 후 작성된 글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스슬로운은 관객들이 인지하는 보편적인 스릴러적 특징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다. 갑자기 어디에서 살인마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공포도, 높은 건물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허우적거리는 액션신도, 최근 영화계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는 미녀와 야수, 라라랜드에서 보여준 뮤지컬적인 요소나 달달한 로맨스도 전무하다. 더군다나, '로비스트'라는 주제는 적어도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존재도 아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미리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스슬로운은 분명 스릴러였다. 그것도 앞에서 언급한 요소들 없이도 아주 완벽한 스릴러.

  그렇다면 스릴러이기에 필요한 요소들 없이도 존 매든 감독이 당당하게 이 영화를 스릴러라는 카테고리에 끼어넣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비결은 바로 '속도감'과 '제시카 챠스테인'의 존재다. 사실 이 두 가지 요소는 영화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그 말인즉슨, 어중간하게 이 두 가지 요소에 승부를 걸었다간 필패(必敗)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미스슬로운은 시작부터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느껴지는 영화다. 때문에 초반에는 관객들이 영화의 속도에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초반 십여분 정도일 뿐이다. 영특하게도 존 매든 감독은 제일 빠른 박자를 가장 초반부에 심어놓았고, 이후, 빠르지만 초반부보단 느려진 박자를 유지했다. 이미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초중반부터는 가랑비에 옷 젖어가듯, 무리 없이 영화에 스며들 수 있도록 말이다.

  존 매든 감독이 이러한 전략을 쓴 이유는 바로 엄청난 대사의 양과, 미합중국 총기 법률에 관한 어려운 용어들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스릴러라도 기본적으로 영화의 내용이 이해가 안 되면 그만큼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사 속에 꽤 많이 등장하는 조크들도 어려운 용어 때문에 자칫 떠나갈 수 있는 관객들의 마음을 잘 잡아두었다.




  미친 존재감, 제시카 챠스테인. 대단한 여자다.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배우 개인의 능력이 전체적인 영화의 척도를 얼마든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었다. 미스슬로운에서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슬로운 대사의 양은 전체 인물들 대사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배우 한 명이 영화 내내 쫑알쫑알 계속 대사를 내뱉는다고 생각해보자. 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하지만, 제시카 챠스테인은 대사의 분량, 속도, 발음, 그리고 거기에 실린 다양한 감정들까지도 모두 소화해냈다. 아마도 그녀가 완벽하게 미합중국의 로비스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터스텔라, 마션, 헌츠맨을 비롯하여, 드라마, 멜로, 스릴러, 공포 등 장르를 가리지 않은 다양한 역할에서의 연기가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ㅤ

  사실, 미스슬로운에서 두각을 나타낸 부분은 이 두 가지뿐만이 아니다. 캐릭터 자체를 놓고만 봐도, '엘리자베스 슬로운'이라는 인물이 가진 일에 대한 욕심과, 평범한 삶에 대한 욕구 사이의 딜레마를 잘 표현해 내었다. 홀로 와인을 마시면서 와인병을 꼭 끌어안는 장면과, 돈을 주고 생판 모르는 남자를 몰래 불러내어 격정을 나누는 장면들은, 겉으로는 일에 중독되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철한 로비스트처럼 보이지만, 그녀도 분명히 평범한 삶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국에서 개봉까지 D-1, 그녀는 이미 충분히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확신한다.

신념 있는 로비스트는 자신의 승리만 믿지 않는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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