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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렐레스 감독의 '백(白)'색 실험은 섬뜩하고, 또 영리했다. 흔히 '실명'이라는 소재를 접한다면 무의식 중에 품어두었던 '흑(黑)'색을 연상하는 것이 보통이다. 계절의 바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나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없는 상실의 공간.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색채 대신 메이렐레스 감독은 과감히 '백(白) 색' 캔버스 위에서 실험을 감행했다. 그것은 우리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을 시험케 하는 섬뜩하고 영리한 실험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의 원작자인 '주제 사마라고'가 설계한 실험이지만, 어찌됫건 그것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것은 메이렐레스 감독의 공이다.)
영화를 실험으로 친다면 그 실험의 가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모든 인간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단 한 사람만 빼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본능을 시험할 도구 세 가지를 제공한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규칙이지만, 이것으로 우리는 이미 영화 속의 인물들처럼 '피실험자'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볼 수 없는 상태. 즉 '실명'은 모두가 평등한 상태로 회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이러한 조건만이라면 이 실험은 진전이 없다. 여기에 인류 투쟁 역사의 근간이 되는 식량, 자본, 무기를 부여함으로써 평등했던 세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실험자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각각의 요소로 우위를 점해가면서 갈등을 유발하게 되고, 점점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단 한 사람만 빼고'라는 두 번째 조건. 바로 주인공인 의사의 아내로 등장하는 줄리안 무어의 존재다. 유일하게 '시야(視野)'를 가진 그녀는 이미 그 사회 속에서 최고 계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시종일관 실명된 자들의 수발을 들어주고, 모두의 식량 문제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기도 한다. 눈이 버젓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이는 본능보다는 이성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선(善)함'을 표현하는 동시에 집단속에서 무기력한 개인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영화 속 실험 이외에 도처에 즐비한 장치들이었다. 영화가 아무리 철학적이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보고 있자면 개인적인 판단보다 영화의 흐름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의 목적을 잃고 단순히 내용에 젖어들 때, 이따금씩 온통 화면이 하얘진다. 이는 모든 것이 안보인다는 '실명'의 상황을 표현하는 것 외에도 '플래쉬백' 효과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제공한 것이다.
이외에도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 대신 의사, 의사의 아내, 한쪽 눈이 먼 노인 등, 보편적인 대명사를 사용하거나, 서양에 국한된 배경이 아니라 중간중간 동양적인 배경도 등장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메이렐레스 감독의 '백(白)'색 캔버스는 어느 한 세계나 인종에 치우치지 않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실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고민한다. 저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본능에 충실한 자들의 행동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말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해피엔딩이 맞다. 이러한 실험 속에서도 본능보다 이성을 택한 실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비로소 '백(白)'색 캔버스에서 해방된 이들. 우리네의 인생을 통틀어 거대한 실험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과연 우리는 어느 무리에 속할까.
난 니놈 얼굴을 기억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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