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을 끝으로 나의 첫 요가 수업을 마무리했다. 딱 추운 겨울부터 봄을 지나 여름 앞까지의 시간을 채웠다. 수련하기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을 남겨둔 채 수업을 마무리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겨울 입김이 쌀쌀했던 첫날의 수업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작년부터 내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커졌다. 바래왔고 그려왔던 기회가 왔지만 그 앞에서 갑자기 나의 모든 마음에 불씨가 꺼졌다.
아빠의 장례식 이후 내 안에서 단단한 뿌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빨리 일하고 싶다가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누구를 만나 뭔가를 나누고 싶다가도 아무도 없는 곳에 가만히 누워있고 싶었다.
아빠 사무실 정리로 할일이 많아서인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려가는 길에 너무 울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이 안났다.
너무 담담해서 처음으로 의젓하다는 말을 들었다. 일을 마무리하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바로 요가 수업을 준비했다. 그냥 공백 없이 뭔가를 계속 채우면 그 시간이 잘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날 수업을 위해 공덕역에 도착해 경의선 숲길을 걷는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맞는걸까. 자소서도 써야하고 면접도 준비해야하는데 난 이 한시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게 맞는 걸까. 첫 수업이 어떻게 끝난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센터를 나오면서 느꼈던 포근한 마음은 아직까지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모든게 식어버린 바깥 공기와 달리 센터 안은 열기와 에너지가 가득했다. 모순적인 내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이 끝난 뒤 타인이 나에게 집중한다는 건 긴장을 동반하면서도 참 고마운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온기 하나 없는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졌다. 집으로 돌아갈 때 같은 길을 걸으며 복잡했던 마음을 지웠다. 그 위에 열심히라는 마음 하나를 새롭게 새겼다.
요가 TTC를 수료하고 나면 요가에 대해 준전문가 정도는 될 줄 알았다. 수료가 시작이었음을 알고나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여러 센터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차곡차곡 쌓아가며 뿌듯한 성을 만들었다가도 결핍이 느껴지는 순간에 힘없이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아무것도 개척되지 않은 땅 위에 씨앗을 심어서 싹을 틔우는 건 무척 고되고 힘든 일이다. 당시엔 한주에 단 두 시간을 위해 싹이 틀만한 걸 계속 찾아내는 일이 버겁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수업을 하며 나누는 그 에너지와 온기가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을 다 채워서 보내면서도 불쑥 찾아오는 공허함 때문에 괴로운 마음이 진해질 때가 있었다. 그 기세가 하루의 반을 차지하다 수업만 가면 거기서 딱 그쳤다. 화요일과 목요일이 기다려진다는 말 앞에서 용기를 선물받았다. 스승의 날에 받았던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더 좋은 수업을 해드리고 싶었다. 당시엔 몸이 편하면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수련에 더 집착했다. 뭔가를 좋아하고 노력하다보면 꼭 나보다 더 좋아하고 더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같은 걸 좋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수업에 대해 그리고 요가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주고받았다.
그안에서 내가 내린 생각은 한번에 모든 것들이 깊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요가를 잘 하고 싶다고 갑자기 고급 아사나를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호흡과 시선이 내 마음대로 조절되는 것도 아니었다. 깊어지기 위해서는 새김질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마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잘 간직하며 수련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부터는 시간 위에 노력을 쌓아서 깊어져보자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었다.
여름 앞의 시작
지금 회사에 최종 합격하면서 현재 센터에서 더이상 요가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대를 변경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다 그만 두었다. 두 가지를 욕심내다 모두에게 피해만 주게 될 것 같아 당분간은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어쩔 수 없이 끝맺음에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좋아하는 계절 앞에서 끝과 시작이 한번에 찾아왔다.
교육부터 시작해서 뚝섬으로 첫출근까지 쉼표하나 없이 이어졌다. 8월에는 수련을 거의 하지 않고 러닝만 계속 했다. 사무실, 지하철 등등 내부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바깥 공기가 필요했다. 회사를 처음 다녀본 건 아니지만 처음은 늘 새신발을 신은 것처럼 두근대면서도 어딘가 어색하다. 8월 동안 일을 배우고 공부하다 어느덧 9월이 시작되면서 가을이 발 앞까지 찾아왔다. 가을은 수련하기 정말 좋은 계절인데. 야외요가가 제일 잘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마음에 기쁨이가 짙어진다.
이사도 알아보고 공부할 것들도 참 많지만 나아감은 나한테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준다. 행복이 뭘까라는 고민을 은은하게 자주 한다. 면접에서도 인생의 유일한 낙을 일과 운동이라고 답했다. 다들 특이하다고 했다. 사실 행복하다는 감정을 잘 몰라 일과 운동에 대한 성취를 행복이라고 적어냈다.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할 때는 적어도 시간 안에 갇혀있는 기분은 느끼지 않았다. 그 외 시간은 마음에 에너지가 잘 채워지지 않았다. 이건 누구를 만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에 관한 영상을 추천해주면서 나는 내 상태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나는 행복을 화려한 뭔가라고 착각하고 살았구나 하는 마음, 그리고 지금 내가 당장 불행하지 않으면 나는 일단은 행복하다. 생각은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고마웠다. 아마 이 고민을 깊게 해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람에게 행복한 일이 진심으로 많이 생기길 바란다. 한동안 여러가지로 혼란스러웠지만 8월의 마지막 이후 조금씩 차분해져가고 있다.
앞으로도 잘 살아감에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나를 잘 살펴가고자 한다. 회사 생활도, 수련도, 수업도 조금씩 깊이있게 천천히 나아감을 진행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