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는건 어려운게 아닌데 그 다음을 생각하면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시엄마는 안돼봐서 모르겠다만 대다수 친정엄마들의 얘기가, 딸네 갈때마다 냉장고 채워주는데 드는 돈이 꽤 만만찮다고들 한다.
나 역시도 '친정엄마'다 보니 딸네 갈때면 나름 섭섭잖게 장을 봐가긴 한다만, 처음부터 그리해줬던건 아니었다.
결혼한뒤 힘든 일이 생길때마다 나는, 내어줄것도 별로없는 친정에 늘상 손을 내밀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마치 당신일인양 안타까워 하면서, 아무도모르게 도와주시곤 했다.
뿐만아니라 빠듯한 월급으로 허리띠 졸라매고 사는 딸이 안스러우셔서, 작은거라도 어떻게든 살림에 보태주려 애를 쓰셨다. 우리집에 오실때면 쌀이며 고기는 물론, 친정인 진해에서 물좋은 생선을 바리바리 싸오시곤 했다. 생선을 내 돈내서 사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뭐든 넘치게 도와주시고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시던 엄마덕분에, 여태껏 어려운 고비고비를 잘 넘겨오긴 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믿는구석' 때문에 남편이나 내가 우리 형편과는 맞지않게, 대책없이 살았던 부분도 어느정도는 있었던것 같다. 그러다보니 툭하면 친정에 손을 벌리는 악순환이 이어졌고, 도와주시려던게 어떤면에선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걸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큰아이를 시집 보내면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건 딸아이 살림에 도움은 물론 일절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단단히 선을 그었다.
큰딸아이가 시집간뒤 얼마 지나지않아, 어느날 우연히 함께 장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저녁메뉴가 김치찌개라며 딸아이가 집어든 돼지고기와 두부를 보는순간, 나는 당황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얘기다만.
딸아이가 결혼할때 나만의 초간단 조리법을 적은 요리노트 한권을 건넨것 외엔, 용감하게도(?) 어떤 야채나 고기를 사는게 좋은지... 기본 장보는 법도 가르치질 않았고. 뭐든 닥치면 다하게 돼있다는게 지론인지라,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본적도 당연히 없었더랬다.
그래서그랬는지 딸이 집어든 두부는 '유기농' '친환경' '국산콩'이 아닌, 시판두부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물건이었다. 돼지고기 또한 맛없을게 분명한 부위로, 막썰어져 소포장된 찌개용이었다.
김치찌개라면, 질좋은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숭덩숭덩 썰어넣고 끓여야 제맛이 나는 법인데. 이런 저렴한 재료를 고르다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싶어, 왜 그걸 골랐냐 물었다.
그랬더니, 딸아이의 대답이 너무나 간단명료했다. "이게 제일 싸요!"
그말을 듣는순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안스러움, 속상함, 기특함 등이 범벅이 되어 마음속이 말할수없이 아려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장보기를 끝내고 딸과 헤어져 돌아오는데, 운전하는 한시간을 내내 울면서 왔다. 처음엔 눈물만 줄줄 흐르던 것이, 나중엔 엉엉~ 차안이 떠나가라 걷잡을수 없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어릴때부터 책상이며 화장대 서랍가득 뭐든 사제끼고 쟁여놓던 욕심많은 딸아이가, 제형편에 맞춰 그리 아끼며 사는 모습이 기특한 한편.
문득 엄마생각이 났던 것이다.
옛날에 내 엄마도... 아낀답시고 알뜰살뜰 어렵게 사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 아프고 짠한 마음이었겠구나.
엄마가 뭐든 사주시면 속없이 그저 좋아라만 했던 철없음과, 그런 나를 바라보던 엄마속을 꿈에도 헤아리지 못했던 나의 모자람에 대한 후회가 끝도없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엄마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 그 아픈마음을 다독여 드릴수도 없는 지금.
다늙어 내가 친정엄마 입장이 되고나서야, 이제 겨우 깨닫게 되다니...
규모있게 살아보려 몇푼도 안되는 두부값조차 아끼려는 딸도 안스럽고, 엄마한테도 미안해서 도무지 눈물이 멎질 않았던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두부며 돼지고기 따위, 수백번 인들 딸아이에게 못사줄까!
그러나 제아무리 잘난 부모라한들 먼저가게 마련이니, 끝도없이 언제까지나 늘 그리해줄 수도 없는일.
그러니 애초 생각대로 마음 단단히 다져먹고, 제 살림 꾸린답시며 애쓰고 사는 걸 그간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그런데 선을 너무 세게 그었던가?
며칠 전 해외 여행중에, 텀블러를 사다줄수 있겠냐며 큰딸이 문자를 보내왔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흔쾌히 그러마 했는데, 돌아오시면 텀블러값을 주겠다는게 아닌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뿔사!! 그간 내가 너무 차갑고 냉정한 엄마였구나 싶어, 큰딸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손자가 태어난 후론, 나도 다른 친정엄마들처럼 갈때마다 냉장고도 채워주고 손자 옷가지도 보이면 사들이긴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처음 2년간 아무것도 사주거나 도와주지 않았던 나를 보고, 어쩌면 그때 딸아이도 내게 선을 그었던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큰 딸이 결혼한 이후 지난 5년간 몇차례나 해외여행을 갔어도, 엄마라는 위인이 선물은 고사하고 과자부스러기 조차 사다주질 않았으니 딸아이가 그럴만도 했다.
부모한테 기대어 질척거리는 젊은이들이 많은 요즘 세상에, 제가 부탁한 물건의 값을 확실히 치루겠다는 큰딸이 너무나 예쁘고 대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미안함을 금할수가 없었다.
(당연히) 돈을 받지 않고 선물로 전달한 텀블러는, 커피를 좋아하는 큰딸이 오늘도 잘 쓰고 있다.
사랑하는 큰딸.
그동안 엄마한테 많이 섭섭했겠구나.
다음부턴 부탁안해도, 네 선물 잊지않고 꼭 사다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