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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스 Oct 24. 2023

시어머니와 기막힌 7주간의 동거(4)

후회: 아이는 왜 아팠을까 - 내 의견을 표현하는 게 항상 바람직한가

판사님, 

인테리어 차 시어머니와 동거한 지 2주가 지났습니다. 

남편의 워크샵 행은 구겨진 바지와 아기식탁의자에만 변화를 가져온 게 아니었습니다. 이날을 계기로 한 달 넘게 온 가족을 고생시킨 감기 바이러스가 우리 집에 침투하였습니다. 


나의 무결함을 주장하기 위해 시어머니와 다툰 게 아이를 아프게 한 걸까요? 



남편이 워크샵에서 잠도 못 자고 추운 야영장에서 밤을 새우다 감기에 걸려왔습니다. 아이도 남편이 걸린 감기에 옮아 코감기에 걸렸다가 열이 심하게 오르고 중이염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전 감기가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2주 가까이 항생제를 먹어야 했지요.


아이가 아픈 모습을 보니 저는 시어머니와의 다툼이 무안하면서 후회스러웠습니다.

현재 우리 집에서 가장 날이 서 있는 두 사람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현재 우리 집에서 가장 힘이 약한 두 사람은 남편과 딸아이. 이 두 사람이 지금 아픕니다. 


왜 둘이 먼저 아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계기로 제가 시어머니께 너무 심하게 대들고 있진 않나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께 나의 정당성을 외치는 것이 갈등을 만들고 있고 이 갈등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남편과 아이도요.


시어머니와 저는 시시때때로 싸워댔는데요, 아이가 잘 때뿐만 아니라 옆에 있을 때도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저와 남편에게 쌓였던 서운함을 아이가 보는 앞에서 다 쏟아내시고, 저는 또 욱해서 바로 반박했습니다. 그냥 넘어가면 마치 시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다 맞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요. 


아이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키워주신 엄마와 자기를 예뻐해 주시는 할머니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안한 정서로 인해 시어머니가 오신 기간 동안 밤잠을 잘 못 들고 계속 울었습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아이의 육체 건강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보란 듯이 아이는 저와 어머니가 가장 심하게 싸운 다음날부터 앓아누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도, 내가 봤을 때 틀린 말, 우리 상황과 맞지 않은 말을 하는 것 같아도, 즉각적으로 반발하지 않고 '그럴 수 있구나'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그렇게 내 아이의 정서적 육체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미 60 넘게 사신 분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데 더군다나 내 몇 마디 퉁명스런 말대답으로 변화시키기란 가당치 않을 것입니다. 시어머니에게 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선 나의 감정을 절제하고 해야 할 말을 정리해 차분히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지혜가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생활습관으로 시어머니가 불편해하시고 감정이 폭발하셨을 때 저도 같이 맞대응하며 폭발했습니다.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면서요. 시어머니의 비판에 계속 방어기제가 발동해 내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스스로를 방어하고 변명하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시어머니와 긴 시간 (1박 이상) 교류하는 일이 생긴다면 (일주일 넘게 머무르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의견이 다를 경우 차분히 내 의견을 말씀드리고 그 후에는 가볍게 응대해 드리는 식으로 나를 보호하면서 접촉을 최소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판사님, 저는 아직도 제가 한 행동이 옳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감정이 상해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세월을 보냈으니까요. (하지만 완전히 안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뒤에 계속 다른 문제가 터집니다..) 그래도 순간 폭발하여 화를 내는 건 좋지 않다는 걸 배웠습니다. 아 더 일찍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서로의 다름을 (다른 생각, 다른 배경, 감정 반응, 기질…) 극복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성품이 훌륭하든지 대화 스킬이 좋든지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시어머니와 관계를 맺어가며 이 두 가지를 더 발전시켜보고 싶습니다.


표지 사진 출처: UnsplashKelly Sikk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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