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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카 Feb 04. 2021

컨테이너에서 엿보는 테슬라의 미래

'혁명'의 완성은 생각보다 어렵고 느릴 수 있다


테슬라 창업자 엘론 머스크. 출처: James Duncan Davidson

어디서나 테슬라를 이야기합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해보다 상승세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가장 뜨거운 주식입니다. 덩달아 테슬라가 전기차 혁명의 승리자가 될거라는 전망도 더 힘을 얻고 있습니다.


테슬라가 전기차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년에 걸쳐 이어질 전기차 혁명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미래를 고민할 때 참고할만한 이야기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무려 70년 전 얘기입니다.



컨테이너 혁명과 '혁명가' 말콤 맥린

'더 박스' 표지. 현재는 절판입니다. 출처: 교보문고

<더 박스>는 컨테이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로세로 반듯한 쇳덩어리로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썼는데, 이게 한번 쉬지도 않고 읽을 만큼 재밌습니다. 컨테이너가 어떻게 실용화 됐고 세상을 바꿨는 지 흥미진진하게 풀죠. 오늘날의 1인당 소득으로 G7을 넘어선(펄-럭) 한국을 만든 단 하나의 물건을 꼽으면 반도체가 아닌 컨테이너라고 확신합니다.


1956년 4월 26일. 최초의 컨테이너선이 뉴욕 뉴어크항을 출항했습니다. 이전에도 컨테이너는 있었습니다. 철골을 덧댄 거대한 상자가 활용된 건 오래된 일이죠. 이때까지는 갑판 위에 가끔 보이는 특이한 화물 정도였고, 거의 모든 화물은 부두노동자가 등짐으로 옮겼습니다.


첫 컨테이너선을 띄운 '혁명가'는 자수성가한 트럭운수업자인 말콤 맥린이었습니다. 컨테이너에 맞춰 모든 운송 시스템을 뜯어 고친 '컨테이너화'에 도전한거죠.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정부는 전쟁을 위해 마구 찍어낸 배를 민간에 헐값에 나눠줬습니다. 맥린은 거저 나눠 준 배를 컨테이너에 맞게 개조하고 크레인을 설치했습니다. 여기에 맞춰 항구도 뜯어 고쳤고요. 트럭운수업자답게 컨테이너에 최적화한 트럭 운송 체계도 세웠습니다. 맥린은 컨테이너를 발명하진 않았지만, 컨테이너화를 시작했죠.


결과는 혁명적이었습니다. 1956년에 일반 화물을 기존의 화물선으로 옮기는데 드는 비용은 톤당 5.83달러였습니다. 맥린이 계산해보니 이걸 컨테이너선으로 옮길 때 비용은 톤당 15.8센트로 줄었습니다. 운송비가 37분의 1로 준거죠. 전기료 1만원 나오던 게 271원이 나온 셈. 혁명이란 말도 부족한 결과입니다.


여기서 '그렇게 말콤 맥린은 운수업의 혁명을 이끌고 세계화를 이룩했습니다'로 끝났으면 책이 이렇게 두꺼울 필요가 없겠죠. 맥린이 컨테이너선을 띄운게 15장의 책 중 1장 내용이에요. 이제부터 '혁신의 저주'가 뭔지 생생하게 전개됩니다. 테슬라가 벌써 혁명을 다 이룬 것처럼 보인다면, 말콤 맥린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장애물 만난 컨테이너 혁명

컨테이너선. 출처: 픽사베이

운송비를 혁신적으로 줄였으니 순식간에 운송업계가 컨테이너화 했을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첫 컨테이너선이 출항하고 6년이 지난 1962년에도 뉴욕항의 화물 중 컨테이너 화물은 8% 밖에 안됐습니다. 이것도 전체 항구도 아닌 뉴욕항의 수치고, 국제화물은 넣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국제화물 중 컨테이너로 옮긴 비율은 0%였습니다.


혁신은 수지 타산이 맞는 모델을 '짜잔'하고 개발하고 끝이 아닙니다. 첫번째 벽은 정치적 문제입니다. 부두노동자는 인기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단결력은 강했고 선적과 하역, 배분 등 여러 공정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파업의 위력도 셌죠. 수도 많고 소득도 높아 정치적 영향력도 강했습니다. 부두노동자는 컨테이너가 위협이 될 걸 간파했고 파업으로 맞섰습니다.


'부두노동자'라는 글자를 가리면 오늘날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를 설명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나마 저 때는 전후 호황기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정치적 지형이 더 안 좋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노동절약형 기술진보의 힘으로 노동자들이 밀려나겠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닐거에요.


1960년에 '기계근대화협정'이라는 협상을 통해 컨테이너 선사와 노동자는 타협을 이뤘지만 갈 길은 멀었습니다. 선사끼리의 경쟁이 불 붙었습니다. 컨테이너화는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서 공정을 쉽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일단 인프라가 갖춰지면 서비스에 큰 차이가 없고 끝없는 원가 경쟁이 시작되고 투자도 계속해야 합니다.


컨테이너화를 시작한 맥린의 시랜드서비스사가 앞서갔지만, 6년째 적자였습니다. 빚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후발주자는 계속 치고 들어왔습니다. 돈을 벌어도 원가절감 압박과 추가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지경이었던 거죠. 당시 큰 손이었던 담배회사 레이놀즈가 맥린에 대한 투자자로 들어왔는데, 그 현금부자도 결국 포기하고 나갈 정도였습니다.



전기차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2016년 헤어드라이기로 유명한 영국 다이슨이 전기차 개발을 선언하면서 자신들은 모터를 잘 만들고, 전기차는 모터로 가는 물건이라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수천 개의 부품으로 정교하게 만드는 내연기관보다 진입장벽이 낮아진거죠. 다이슨은 2019년 프로젝트를 포기했지만 테슬라 앞에는 벤츠, BMW, 현대차 등 쟁쟁한 거인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여기에 거의 끝이 없는 자본 투자 부담도 있습니다. 다이슨은 3년 만에 7500억원을 태웠는데, 미련없이 포기했다. 상업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전기차가 대중화하면 결국 가격이 중요해질텐데, 그럼 투자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이뤄서 더 싸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윤은 박해지고 투자금은 계속 쏟아 부어야 합니다.



워런 버핏이 비슷한 얘기를 여러번 했는데, 항공업계가 이랬습니다. 버핏 회장이 말하길 '자본가 입장에서는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할 때 총으로 쐈다면 돈을 많이 아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행기가 혁신인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지만, 이후 약 100년 가까이 항공산업에 투자해서 돈 번 사람은 없었거든요.


희대의 기회 베트남 전쟁 만났지만...


여러 장벽에 막혀 지지부진하던 컨테이너화에 숨통을 틔운 건 베트남 전쟁이었습니다. 1970년 군수보급으로 속을 썩던 미군은 컨테이너를 해결책으로 찾았고,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덕분에 맥린도 돈을 벌기 시작했고, 베트남서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러 물건을 채우기로 하면서 환태평양 무역의 시대도 열었습니다.


어릴 때 정주영 회장이 뜬금없이 배를 만든다고 한 게 그저 위인의 '뚝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던 걸 알았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바클레이를 찾아가 그 유명한 '이순신 지폐' 에피소드를 만든 게 1971년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잘 보고 설득한 거죠. 역시 에피소드는 아름답지만 비즈니스는 합리적입니다.


베트남전쟁이라는 엄청난 기회를 맞은 맥린은 드디어 성공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아예 일본, 대만에 한국까지 가세해서 더 싸고 더 빠른 배를 찍어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대형 항구와 컨테이너선을 만든 동아시아는 빠르게 치고 올라왔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세계 10대 무역항 중 7곳이 동아시아에 있습니다. 첫 컨테이너 선을 띄운 뉴욕항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정리하면 혁신이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①그 혁신이 사업성이 있어야 하고(제록스) ②정치적 문제를 돌파해야 하고(타다) ③언제가 될지 모를 '그때'를 기다려야 하며 ④누가 승자가 될지 모르는 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고 ⑤대중화를 이룰 이벤트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굴곡이 있는데, 여하튼 맥린은 나중에 파산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결국 1990년대 들어 컨테이너는 세상을 바꿨지만, 첫 출항 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할 줄은 몰랐던거죠. 물론 그는 컨테이너화의 선구자로 역사에 남았고, 그가 죽었을 때 전세계의 컨테이너선은 뱃고동을 울려 예의를 표했습니다. 


읽는 내내 이미 혁명이 일어났다거나 '사실상' 완성됐다거나 '이건 실패할 수 없는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테슬라에 대한 시선이 떠올랐습니다. 1960년대에 컨테이너화는 전기차보다 덜 매력적인 아이템이었을까요? 컨테이너는 세계 경제를 넘어 동아시아의 부상이라는 지정학적 격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컨테이너 선사에 투자해서 돈 번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연하지만 혁신은 참 먼 길입니다.


물론 테슬라는 현재 전기차 혁신을 선도하고 있고, 앞서가는 기업입니다. 승자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맥린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은 혁신이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생각보다 더 길고 어려운 투쟁을 해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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