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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카 Feb 14. 2021

"불공정보다 불평등이 낫다"

재수 공부마저 강남만 뜨겁다



얼마전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의 강연이 화제였습니다. '인구 감소로 사교육은 곧 망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이 말을 학원 창업자가 해서 반향이 컸습니다. 인구가 줄면 직격탄 맞는 산업으로 사교육이 꼽힌지 오래라 학원이 망해간다는 건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잘나가는 사교육이 있습니다. 재수학원입니다. 정확히는 의대·서울대를 노리는 최상위권 대상 재수입니다. 서울 주요 대학 신입생의 34%는 재수생이고, 서울대 신입생 중 15%는 삼수생입니다. 강남에선 의대 가는데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 된 지 오래죠.


지난해 학생 감소 폭이 워낙 커서 재수 학원은 어떤가 취재했습니다. 강북과 지방은 예년의 80~90% 수준인데, 강남은 30% 이상 학생이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2019년 교육부가 선물한 정시 확대 덕분입니다. 여기에 32개 약대가 학부 선발로 전환하면서 자연계열 최상위권에는 '큰 장'이 섰습니다.



정시 축소에 '재수는 필수' 된 강남

연도별 전형 모집비율. 출처: 대학교육협의회

아이러니는 강남 사교육에 적대적일 것 같은 현 정부에서 강남의 숙원을 해소해줬다는겁니다. 통계상 강남·서초구의 진학률은 50% 밖에 안됩니다. 졸업생 절반은 재수 할 만큼 보편화 했다는 건데, 이게 2000년대 초부터 정시가 줄면서 일종의 병목현상이 생긴 결과입니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강남 학생도 '대학가기 영 힘들어서' 재수를 해온거죠.


'강남'이라는 곳이 워낙 독특하고 유별난 곳으로 이미지가 생겨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재수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워낙 쟁쟁한 친구가 모여 있어서 내신은 엉망이지, 매년 학종은 늘고 정시는 줄지 만만치 않은 조건입니다. 지난 몇년 이들에겐 고난의 세월이었던 셈입니다.


왜 갑자기 정부가 정시를 늘렸을까요. 최상위권 학생들은 정시를 좋아합니다. 정시 비율이 높을수록 신입생 중 고소득층 비율이 높아지는 건 연구로 입증됐습니다. 정시는 이미 만들어진 위계구조를 그대로 산출하는 기계입니다. 상류층 자제를 넣으면 높은 확률로 서울대를 뱉어내고, 저소득층을 넣으면 안좋은 결과를 만들고. 많은 데이터로 입증됩니다.



결과가 기울어도, 반칙보다 낫다는 여론


결국 한국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건 '불공정한 걸 보느니 차라리 불평등한 결과가 낫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시가 뽑아내는 결과가 계층이동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도, 이해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방식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죠. 대신 정시가 불평등한 결과를 뽑아내도 승복한다는 약속입니다. 9등급이 9등급을 맞으면 '그래 내 잘못이지'라는 개인의 책임이 되니까 트러블이 적습니다.


한국에서 '시험은 선거'라는 관점에서 봐도 이해가 갑니다. 다수당이 의석을 독점하는 선거가 좋냐, 아니면 득표수에 비례해 의석을 가져가지만 투·개표가 다소 미심쩍은 선거가 좋냐. 후자를 고를 사람은 없습니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간혹 벌레가 나오기도 하는 식당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몇몇 사건도 수시에 대한 강한 불신을 만들었습니다. 숙명여고 성적 조작 사건은 내신 성적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사건은 다른 학교에서도 여러 건 생겼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서 불거진 스펙 논란은 2019년 교육부가 정시 강화를 선언하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정책결정권자에게도 나쁘지 않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정책 결정권자가 강남에 살고 있고, 그들의 자제도 최상위권 학생이기 때문에 정시 확대를 선호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걸 음모론으로 볼수도 있지만, 보수적으로 봐도 미필적 고의 정도는 맞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그렇게들 원한다는데 하지 뭐 (나도 좋고)' 정도가 아닐까요?


그래서 강남 사교육계의 부흥을 이끈 정시 확대를 보면 씁쓸합니다. 불신에서 피어난 대중의 반감과 상위 계층의 실질적 이익이 딱 맞아 떨어져서 불평등을 용인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공정'의 실상은 이미 1등급인 사람은 1등급을, 9등급은 그대로 9등급을 맞아야 합당하다는 프로세스입니다. 계층이동성 '0'인 사회가 겨우 우리가 추구할 사회인지 의아합니다.


이건 입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대원칙이 됐습니다. 그게 우리가 그렇게 진통을 겪고 만든 '공정론' 논쟁의 결과입니다. 대입 뿐 아니라 다른 문제도 계속 집중화하고 있지만, 대중이 그걸 지지하니까 거칠 게 없습니다.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는' 건 이렇게 인기도 없고 힘든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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