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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Apr 26. 2024

타로 카드 읽는 밤.

 취미로 시작한 타로가 동네에 소문이 났다. 야유회를 준비하는 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저번 야유회 때 타로가 제일 재미있었다며 이번 야유회도 타로를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귀찮은 척은 했지만, 인정받는다는 은 아이나, 어른을 떠나 누구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야유회 한 귀퉁이에 자리를 펴고 첫 상담을 받았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지, 누군가 점지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죠? 저는 선생님이 뽑으신 카드를 읽어줄 뿐입니다. 그러면 고민을 말씀하시죠.”

“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어요. 아들 나이는 40 중반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혼자서 아들 하나 키우며 지금까지 살았어요. 하늘이 도왔는지 제가 하는 일마다 잘되더군요. 그래서 아들만큼은 부족함 없이 키웠죠. 지금 아들은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며, 잘살고 있어요. 자식도 셋이랍니다. 자식이 셋이다 보니 제가 지금도 부족한 생활비를 주고 있죠. 그런데 그게 문제였나봐요. 아들은 무슨 일이든 제가 해결해 주길 원하고 있답니다. 얼마 전, 제가 옆에 있는데 손녀가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사달라고 했어요. 그때 아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할머니 것이고, 차도 할머니 것이야.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다 할머니 것이야. 사실 너도 할머니 것이란다. 그러니까 할머니에게 사달라고 해. 아들의 말을 들으니 화가 나더군요.  아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그날 이후로 연락을 끊었어요. 몇 번 온 연락을 피했더니, 이제는 연락도 없네요.”

“연락 안 한 지 얼마나 됐어요?”

“석 달쯤 됐어요.”

“그동안 살면서 아들에게 섭섭했던 일이 많았죠. 또 무슨 일이 있었죠?”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가끔 추임새를 넣고, 고개를 끄덕이며, 긴 시간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아들을 생각하면서 카드 두 장을 뽑겠습니다. 이제 본인을 생각하며 카드 두 장을 뽑겠습니다.”

아들 카드에는 여덟 개의 컵과 은둔자 카드가, 엄마는 여사제와 에이스 검이 나왔다.

“아들은 감성적인 사람이네요. 말도 없고, 혼자 있기 좋아하며, 생각이 많네요.”

“맞아요.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죠.”

“반대로 엄마는 객관적이고, 침착하죠.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요. 그러니 아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죠.”

“맞아요. 오랫동안 혼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제가 어느새 사람이 변했어요.”

“아들의 현재 심리 카드 한 장, 엄마의 현재 심리 카드 한 장, 그리고 결론 카드 한 장 이렇게 뽑아 볼게요.”

 아들의 현재 심리 상태 카드는 다섯의 나무 카드, 엄마의 현재 심리 상태 카드는 정의 카드가 나왔다. 결론 카드로는 매달린 사람 카드가 나왔다.      

“아들의 현재 심리 상태는 카드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아이 다섯 명이 나무를 들고 다투고 있죠. 지금 아드님은 마음이 편치 않아요. 굉장히 심란합니다. 힘들어하고,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반대로 어머니는 아직도 용서가 안 되고 있어요. 저울을 들고, 칼을 들고, 잘잘못을 가르고 싶어 하죠. 그렇죠?”

“저는 용서 안 돼요. 그동안 제가 어떻게 키웠는데, 나에게 이러면 안 되죠.”

“결론 카드로 매달린 사람이 나왔죠. 우리가 흔히 역지사지라 말하죠. 반대로 매달려 바라보면 카드의 그림처럼 평화로운 얼굴이 나옵니다. 제가 보기에 아들은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고 엄마의 사랑 또한 잘 알고 있어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저도, 선생님도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늦지 않게 아들과 이야기하세요. 내일 밤이라도 만나서 식사라도 하세요.”

    

 상담을 의뢰한 선생님은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요’라는 말에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말을 듣고 싶었고,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타로는 점술이 아니다. 타로를 보는 사람들은 문제의 답을 알고 있다. 다만 한 스푼의 용기가, 위로가 필요할 뿐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원하는 말을 찾아 이야기할 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밤새 쉬지도 못하고, 타로를 펼쳤다.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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