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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민 Dec 14. 2021

수포자가 생기는 이유,  '물포자' 때문이다.

수학과 과학을 배우는 맥락을 찾고, 수학 과학의 학습 범위를 늘리자

 인생에 수학은 필요없다?


여러분은 한 번쯤 다음과 같은 명제를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수학 그거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되는거 아님? 인생에 수학은 쓸모 없어"


저는 반대의 발화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중3때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국에 왔던 원어민 선생님이었는데요.


"돈을 잘 벌려면 수학이 너무 중요하다. 수학 잘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


제 경험상, 수학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과 수학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꽤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필요없다고, 어떤 사람은 필요하다고 하는데 중간이 없는 것 같아요. 더 나아가서, 수학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수학이 필요없는 집단에 속했던 경우가 많고, 수학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반대의 집단의 속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진짜 사는데 수학이 필요한가? 저도 10대 때 의문을 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필요할 수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수학은 국/영/수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돼서 많은 수험생을 괴롭게 하는 것일까요? 꼭 필수여야만 할까요?


개인의 관점이 아닌, 사회의 관점에서의 수학

여기서 잠깐 다소 추상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러분은 학교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학생 개인의 자아 실현을 위한 보조자?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 교육? 대학 공부를 위한 발판 제공?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저는 이 사회가 필요한 인재를 기르기 위한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은 자원이 없는 수출 주도의 국가로,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자원 수입해서, 기깔난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인데요. 제품을 만들려면 기술이 필요하고, 기술은 결국 사람이 개발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여러분의 생각에는 삼성전자가 떠오를 것이라 확신합니다. 삼성전자는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체급입니다. 그런데 이 반도체는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최첨단 과학의 산물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삼성전자에서는 이를 반영하듯, 이공계 석박사 위주의 임원이 다수입니다.


삼성그룹 임원, 삼성전자로 한정해도 이공계 석박사 비율은 50% 이상이 된다, 사진=한국경제


반도체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쌓이는 IT 기술, 소프트웨어를 한국에서는 또다른 미래 동력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K-뉴딜 정책 등을 보면 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IT 기술에 대한 지원 내용이 반영된 것이 그 근거입니다. 미국의 테슬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시가총액이 높은 것도 IT, 반도체 등 기술 집약적 제조업이 사회의 기대를 받고 있기 때문이겠죠.


K-뉴딜, 사진=기재부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과학, 그리고 그 언어인 수학을 필수로 지정하는 것은 타당해보입니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해야하니, 영어도 필수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기른다는 관점 자체에 반감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겁니다.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어떤 국가 중심의 목적성 아래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럴 수 있는데요.


여기부터는 제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국력은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속한 국가를 축구팀이라고 생각하면, 내 팀이 잘되면 결국 개인의 커리어도 나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70-80년대의 선배들이 고생하시면서 얻어낸 경제 성장의 산물을 지금 개인들이 많이 누리고 있는 것처럼요.


국가의 보호가 없으면, 개인은 아무런 권리도 찾지 못하는 난민이 될지도 모릅니다. 국가의 보호를 국제사회에서 당당히 인정 받기 위해서는, 다소 올드한 개념이지만 '국가 경쟁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경쟁력의 중심에는 군사력 뿐 아니라 기술력이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에서, 미국이 대만을 감싸고 있는 이유도, 대만이 보유한 최대의 반도체 기업 TSMC 때문이라는 분석도 종종 제기되곤 하니까요.


국가 경쟁력이라는게 그냥 가만히 있어도 유지되면 좋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뒤쳐집니다. 계속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살아남습니다. 과거 아시아의 맹주였던 일본의 사례를 보면 더욱 이것이 두드러집니다. 일본은 아직도 메일이 아니라 팩스를 쓴다고 하죠? 일본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대비가 미흡해, 성장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1인당 GDP도 한국에 거의 따라잡혔구요.

사진=디지틀조선일보


결국 기술 개발은 대한민국이라는 '우리 팀'이 살아남기 위한 숙제인 것이고, 좋은 팀원을 계속해서 길러내야만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수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진로를 택할 수 있겠지만, 사회의 입장에서는 수학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육 당국에서는, 학생들이 '수포자'가 되는 것을 막고, 수학 실력을 키워서 사회에 더 적합한 인재를 길러내려고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왜 배우는 지...맥락이 거세된 수학과 '물포자'

그렇다면 대한민국 고등학교 수학 교육의 현황은 어떨까요? 우선 저는 현행 고등학교 수학에서 배우는 내용이 너무 적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수포자와 수험생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목표로, 수학 과목의 범위는 계속 줄어서 결국 OECD 주요국에 비교해도 확연히 작습니다. 여기서 수능 변별력을 유지해야하니 좁은 범위의 고난이도 문제를 개발하는 방식입니다. 범위가 좁은 고난이도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범위 바깥의 개념을 이용하면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안 가르쳐준 내용이 문제 해결의 팁이 되니, 오히려 양극화가 발생하는 셈입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학의 맥락이 거세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여기서 '수학과 수학', 즉 학문으로서의 수학과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수학을 구분한 뒤 논의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수학과 수학'은 논리 체계에 대해서 배우고, 수능 수학은 그 체계를 이용해 문제를 푸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순수학문인 '수학과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겠지만, 그 결과물을 이용해서 적용하는 분야는 무궁무진히 많습니다.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제외하고도, 사회과학 등의 계량적 분야에서는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이 계량적 분야에서 파생된 것이 오늘날의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입니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 수단으로서의 수학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과목은 무엇일까요? 바로 물리학입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 배우는 수학의 개념들은, 대부분 물리학에서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개발된 방법들입니다. 혹은, 이미 개발된 수학적 방법들이 물리학에서 적극 사용되기도 했죠. 물리학의 이러한 방법론은 19-20세기에 큰 성공을 거뒀고, 오늘날 과학 기술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행 물리학 과목과 수학 과목은 이상하리만치 분리되어 있습니다. 우선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물리학1, 물리학2의 기본 기조는 '최대한 수학 없이 이해하기' 입니다. 근대 물리학의 시초로 추앙받는 뉴턴이 물리를 하려고 미적분을 만든건데, 미적분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고 서술하려고 애쓰다보니 고등학교 물리는 반쪽짜리나 다름 없는 상황입니다.


나무위키에서 말하는 수능 물리학


반대로 수학을 배우는 입장에서도 이걸 왜 배우는지 모릅니다. 수학이 개발된 이유가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인데, 뭘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그 맥락을 잘 알려주지 않거든요. 예를 들면 주기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파동, 그 파동을 기술하는 개념이 허수와 삼각함수인데도 이러한 내용은 잘 다뤄지지 않습니다. 로그는 천문학자들이 수십자리수의 곱셈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도구에서 출발했습니다. 미적분과 벡터는 자연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으며, 행렬은 그 구체적인 문제(특히 회전 운동)를 풀기 위해서 적극 사용되었습니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수학적 방법들은 다른 학문에도 도입되었으며,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한계비용' 등의 개념은 미분으로 정의됩니다.


이러한 맥락을 함께 공부한다면, 수험생 입장에서도 '이딴 걸 왜 배우나'라는 생각 정도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특히 수학과 물리를 함께 배우도록 하면 고등학교 수학을 배우는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학습 범위가 늘어난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럼에도 제 생각에는 이게 지름길입니다. 오히려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택한 현행 체제에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올해 수능에서는 가점으로 인해 '미적분' 즉 과거의 '가형'(이과 수학)으로 수험생들이 몰렸습니다. 이렇게 보면 수포자 문제는 마치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좁아진 수학의 범위, 맥락이 거세된 수학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어, 학생들의 능력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그 근거로, 여전히 물리학은 수험생 선택 과목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탐1에서도 화학 물리가 최하위, 2에서도 화학 물리는 최하위다. 사진=나무위키, 자료=교육과정평가원
사진=매일경제

물론 수학과 물리학이 수험생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수학과 물리학이 일상 언어와는 달라서 낯설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들을 괜히 어렵게 설명한다고 지적하지만, 일상에서 쓰는 언어는 그 개념이 모호해서 오히려 오해를 낳기 쉽습니다. 깔끔하게 수학적으로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이 가장 엄밀하고 쉬운 방식입니다. 우리가 미국 사람과 이야기하려면 영어를 써야겠죠. 다양한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학이라는 외국어가 직빵입니다.


대입이 끝나자 마자, 수험생과 대학간의 괴리는 체감되기 시작합니다. 물리를 피해서, 수학에서 물리라는 맥락을 제거한 채로 입학하는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힙니다. 대학교 1학년에 대다수의 이공계 학생들은 일반 물리학 과목을 통년으로 배워야 하는데요. 일반 물리학(1), (2)는 고등학교 물리학1과 물리학2를 합친 것보다 범위가 넓어 2배 가까이에 이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과 관련된 학과인 전/화/기 그리고 재료(신소재) 공학 등에서는 이 일반 물리학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후 과목을 제대로 밟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고등학교 3년 내내 없던 맥락을 갑자기 1년 안에 만들어 내야 하는 셈입니다. 새내기니까 미팅도 하고, 여행도 가고, 이런 저런 교양도 수강해야한다는 말을 들으면서요. (그나마 컴퓨터공학과/산업공학과/통계학과 정도가 물리에서 약간은 자유로운 것 같네요.)




2021년, 여러분들의 청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가요? 열정, 노력 꿈, 도전, 젊음...이런 단어들은 청춘을 수식하는 단골이었는데요.


이미 2010년대에 청년들을 지칭하여 '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더 나아가 집을 포기하고, 이제는 꿈도 희망도 없는 세대라는 뜻입니다. N포 세대의 배경에는 취업난, 취업 준비생의 고스펙화가 그 배경에 있습니다. 학벌, 영어성적 대외활동, 봉사활동, 인턴까지...그렇게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 이 시대의 자화상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스펙을 포기하기 이전에, 수학과 물리를 먼저 포기했던 사람들입니다. N포 세대가 문제인 만큼, 수포 세대와 물포 세대가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포자 문제의 중심에는 물포자가 있으니, 맥락이 거세된 현행 고등 수학에 물리의 내용을 첨가하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이요?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그리고 반은 농담이지만, 그래서 고등학교 수학 범위를 최소 1.5배 이상 늘리고, 물리학1, 2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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