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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njinn May 10. 2016

#3. 2주차 퇴사인, 조언을 구합니다.

나를 찾는 길

  정확히 2주 전, 4년간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이유는 지난번 글인 'KPMG를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쓴 메일'에 기록해두었습니다.)


  지내 온 2주간 함께 모시고 부대끼며 일하던 분들, 업무를 통해 알게 되었던 선배님들, 알고 지내온 친구들을 찾아 뵙고 조언을 듣고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이 나서 이제부터 어떤 자세로 삶을 대하겠노라고 고백하듯 이야기를 하고 났더니 많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려 섞인 걱정을 들을 때도 있고, 아직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것을 콕 집어 듣거나, (많은 경우) 결혼하고 애 낳으면 다 끝..(그러니까 넌 아직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거야..)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듣기도 했습니다.  

"요즘 같은 힘든 시기에 독립이 뭐냐, 경험은 있냐, 준비는 되었냐, 돈은 많이 모아두었냐, 여행가서 재충전이라도 해라, 뭐가 됐건 할거면 당장 빡세게 빨리하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가라, 프리랜서 라면서, 사업도 구상할 거라면서 그래서 너는 뭘 하고 싶은거냐"등등등…


  그리고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조언들 가운데는 '이게 다 결혼 때문이다'와 함께 "언제쯤 니 명함이 나와서 너를 그에 맞게 부르면 될까?"가 있었습니다. 종종 남들이 흔히 걷는 길을 가지 않을 때 너를 어떻게 하면 내가 아는 프레임에 맞게 정의함으로서 '분류되지 않는 존재가 주는 인식의 불일치를 빨리 없앨 수 있을까' (선자리에 내보내려고 하시는 엄마친구아줌마들께서 특히 좋아하시는…) 하는 그 질문에 대하여서는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내 자유에 충실하게 살겠다!' 라고 선언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바람에 나도 어서 빨리 뭐라도 확정 지어서 명함이 주는 안락함이나 욕심에 나 자신을 숨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수 년 전 시험 준비를 할 무렵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넌 공대 출신이니까 이 과목은 이렇게 하는 게 좋겠고, 저 과목은 저렇게 해야하고, 수험생이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하며, 강의는 어디서 듣고, 잠은 몇 시간 자고, 마음가짐은 어떠하고" 등등등..

(대신 그 때는 '수험생'이라는 한마디로 자신을 정의 내릴 수 있었던 것이 어쩌면 조금은 마음 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니 겨우겨우 시험을 끝낼 수 있었던 힘은 그런 저런 조언들을 곱씹어, 여러 번 실패하고 실패를 거듭해 가면서, 그 실패에서 알게된 '나의 방식'을 찾은 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편집증 환자가 된 듯이 시험 과목들을 나노 단위로 쪼개어 반복해서 책을 썼던 것과 같이..)


  이제 독립하여 내가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거듭 조언을 구해야 하는 까닭은, 그 조언 자체 뿐 아니라 조언을 구할 때마다 정말 깜짝 놀랄만큼 약한 나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 모습에 너무도 꼭 맞는 답을 듣게 되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조급해 지려고 할 때는
여유를 가지라 한숨 돌리게 되고,
이게 맞나 고민이 될 때에는
자신을 믿으라 격려 받고,
나태해 지려고 할 때는
목숨 걸고 하라고 채찍질 당하고,
겉멋이 들려고 할 때는
본질에 충실하라고 따끔하게 충고 듣습니다



  그리고 바라건데 이 조언들이 쌓이고 쌓여 간다면,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보면 아마도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번에도 '나의 방식'이, 그로 인하여 내 삶의 중심이 반듯하게 서리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만남에 있어 의도를 갖지 않고 당분간 다니며 인사를 드리고 조언을 구하는 일을 계속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잠깐만이라도 만나서 차도 좋고, 밥도 좋고, 술도 좋고, 어떠세요?? :)



  덧붙여, 지금은 매일 악착같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운동하고, 생각하고, 책을 읽고, 글 쓰고, 피아노 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긴 시간 에너지 쓸 수 있도록 몸과, 마음과, 비전을 비축하고 있는 중입니다.  음.. 그러니까..아마.. '2주차 퇴사인?' 정도 될 것 같네요 (저를 부를 수 있는 명함이 나오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습니다만, 편하게 부르실 때가 오거든 곧장 말씀 드릴게요ㅎㅎ)


#그러니까 나는 백수라는 말을   #이렇게까지 길게 쓸건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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