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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njinn May 09. 2016

#2. KPMG를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쓴 메일

결심의 순간

KPMG를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나 스스로의 질문과 해답에 대해서 모시던 상무님께 보내드렸던 메일입니다. 이는 제가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여 언제든 돌아보았을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하여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2016. 2. 22

상무님.

지난 주말 3일동안 꼼짝 않고 치열하게 고민해보았습니다.
고민하면서 읽었던 ‘승려와 수수께끼’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미뤄놓은 인생설계’
1단계 : 해야만 하는 것을 해라
(그렇게 미룬후, 궁극적으로) 
2단계 :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비슷한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자란다.
‘뛰기 전에 걷는 것부터 배워라’, ‘첫술에 배부르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등..

사람들은 대부분 빨리 부자가 되는 것이 1단계를 가장 빨리 통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뤄놓은 인생설계’대로 산다는 것은, 1단계에서 내 본모습이나 관심사와는 별개인 일을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열정이란 저항할 수조차 없이 어떤 것으로 당신 자신을 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반면 의지란, 책임감 또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일에 의해 떠밀려 가는 것이다.

만약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조금이나마 자기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어떤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는 욕망은 열정이 아니며, 일정 수준의 몫이나 보너스, 또는 회사를 매각하여 현금을 벌고 싶다는 욕심도 열정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따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열정이 아니다. 그것은 의지에 가깝다.
‘미뤄놓은 인생설계’의 삶에서 1단계에 발휘되는 것은 의지다. 보류시켜 놓은 2단계야말로 열정이 담겨 있는 시기다. 사람들은 2단계에 이르렀을 떄, 열정이 저절로 부활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거기까지 도착하기만 하면 말이다.

하지만 1단계를 통과한 운이 좋은 몇몇 사람들도 2단계로 넘어가면 목적의식과 방향감각을 잃는다. 본인이 ‘정말’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1단계에서 너무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할애한 나머지, 어떤 비전으로 나아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보람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는 것은 어떨까?

— — — — — — — — — — — — — — — — — — — — — — — — — -

저에게 있어서 의지와 열정이 무엇이고 그 둘은 어떤 차이일까를 곰곰히 고민해 보았습니다. 회계사가 된 것, 이곳에서 재무자문을 배운 것, 스타트업을 돕겠다는 생각,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마음 조차도 어쩌면 저에게는 의지의 영역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 열정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적으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지난 주에 상무님께서 말씀하셨던 ‘죽을 때 어떻게 죽고 싶느냐?’ 하는 질문과도 맞닿은 대답일 것 같습니다.

저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가장 좋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전공을 선택한 까닭도 집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틈만 나면 음악을 배우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일도 펜이 있고, 악기가 있고, 붓만 있으면 그 순간 순수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떄문인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회계사로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내 지식의 결과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보다 어쩌면 기존의 프레임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큰 즐거움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회계법인에서 경력을 쌓고, 자본시장에서 명성을 갖는 것은 무덤 앞에서 제가 조금도 관심을 갖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안정이나 쾌락에 지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평생 고민과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죽는 순간 까지도 그 시점의 나에게 있어 가장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그것이 생각에만 머물지 않도록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고민하면서 타인이 만들어 놓은 틀이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그보다 더욱 내가 가진 선입견에서 나를 깨부수는 일이 평생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가르침 주신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너무도 감사드릴 일들 뿐이고 그래서 지금 조직이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저 하고 싶은 대로 뛰어 나가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계속 가슴을 붙잡지만,

지금 저의 선택에 올바른 결정, 어리석은 결정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하나의 결단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맞다고도, 지금이 퇴사를 하기에 적기인지도 전혀 확신이 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번 해봐야겠다하고 결단이 선 일을 잘 모르겠다거나 불안하다는 이유로 돌이키는 것은 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정말로 온전히 제가 좋아하는 대로 제가 만들어보고 싶은 대로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행여 잘 안된다 할지라도 그 다음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 시점에 제가 가질 최선의 노력을 다 꺼내어서요.

끝까지 붙잡아 주시고 계속 다시 생각해보라고 해주셔서 그만큼 제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여겨주신 것이 정말 너무나도 감사드리고 또 그만큼 죄송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더 빨리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마음의 매무새가 늦어졌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상무님.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정말로 KPMG를 떠나서 조금씩 새로운 환경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 가건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고 즐겁게 또 열심히, 항상 새로움을 잊지 않고 세상에 내가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증명하며 살아가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선물했던 책들과, 끝까지 웃으며 보내준 사랑하는 동료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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