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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황금주파수 700MHz,
누가 가위질했나

53부. UHD vs 이동통신 격돌

by 김문기

2008년 10월 29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주파수 회수·재배치 계획을 발표한 순간 업계는 곧바로 촉을 세웠다. 2012년 아날로그TV 종료와 함께 698~806MHz, 총 108MHz 폭이 통째로 비게 된다는 사실이 예고되면서, 이른바 ‘황금주파수’라 불리는 700MHz의 운명을 둘러싼 조용한 전운이 피어올랐다.


미국이 2007년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하자마자 700MHz를 통신용 경매에 부쳤던 전례, 독일과 유럽 각국이 차세대 이동통신의 핵심 자원으로 지정했던 흐름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나라 역시 통신 중심 재배치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사상 최초의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가 2011년 예정돼 있었다. 1.8GHz, 2.1GHz와 함께 700MHz 역시 경매 매물로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을 달궜지만, 방송계의 반격은 예상보다 거셌다.


오랫동안 방송용으로 활용돼 온 700MHz 대역을 향후 UHD, 3DTV 등 차세대 방송 서비스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와 더불어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통신사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줄곧 이어졌다. 통신계가 ‘황금 광맥’의 기술적 가치를 앞세웠다면, 방송계는 ‘공공성’이라는 정치적·사회적 무게를 얹어 대치했다.


결정적으로 2011년 1차 주파수 경매에서 700MHz 대역이 제외되면서 갈등은 증폭됐다. 정부는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내세웠지만, 2012년 말까지는 최종 결론을 내야 했다.


중재의 방패 없이 양 진영의 충돌이 장기화되던 시점에 2012년 1월 방통위가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의결한 것이 상황을 다시 흔들었다.1) 2020년까지 600MHz 이상을 단계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야심찬 목표 속에 700MHz의 40MHz 폭을 이동통신용으로 우선 배정하겠다는 결정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broadcasting 진영은 이를 ‘알박기’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통신 업계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추가 확대를 요구했다.


글로벌 흐름은 통신 업계 쪽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였다. 2012년 2월 세계전파통신회의(WRC-12)는 700MHz 대역을 2015년부터 이동통신용으로 공식 분배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아랍 등 유선망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들의 요구가 반영된 결정이었고, 이는 결국 국제 표준을 LTE 중심으로 조정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국내 통신계는 이를 근거로 700MHz 전체를 통신용으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반면 방송계는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통해 배출되는 자원을 정부가 오히려 통신사에 넘기려 한다며 ‘국민 시청권 수호’라는 명분을 더 강하게 내세웠다.


그러나 정작 중재가 필요한 시점에 방통위는 혼란스러웠다. 최시중 위원장의 사퇴 이후 수장이 공석인 기간이 길어지면서 정책 조율의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뒤늦게 2012년 3월 9일 이계철 위원장이 취임해 잡음을 정리하는 듯 보였지만, 양 진영의 팽팽한 의견 차이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날로그TV 종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012년 11월 22일, 방통위와 한국전파진흥협회가 700MHz 이용정책 토론회를 열었지만, 방송계는 공식적으로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미 무선 마이크 회수와 대역 청정화가 이뤄졌고, 국제 LTE 로드맵에 발맞추기 위해서도 남은 대역은 결국 통신용으로 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주요국 디지털 디바이든 대역 정책 동향’ 보고서는 이 흐름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다수의 해외 주요국이 700MHz를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규모의 경제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한국도 국제 조화를 따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었다. 사실상 글로벌 표준체제 하에서 방송계가 주장한 ‘차세대 방송 기반’ 논리는 설득력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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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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