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부. 5G 빛과 그림자
2020년 4월, 대한민국 교육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인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선포되었을 때, 세간의 시선은 모니터 속 아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러나 그 화면을 지탱하는 실핏줄인 '네트워크'의 등 뒤에서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통신사 사이의 처절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여의도 국회 과방위 회의장에서는 기술적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정치적 당위성만을 앞세운 서슬 퍼런 호통이 이어졌고, 통신사들은 망 중립성이라는 대원칙을 잠시 접어둔 채 '데이터 제로레이팅'이라는 독배를 마셔야만 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의 기습은 대한민국의 일상을 송두리째 마비시켰다. 학교 문이 굳게 닫히고 학습 공백이 길어지자 정부는 온라인 개학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적 구현보다 경제적 현실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가구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의 디지털 환경이 천차만별이었고, 이는 곧 교육의 불평등으로 직결될 위기였다. 고화질 영상 강의는 막대한 데이터 소모를 수반했기에, 무제한 요금제를 쓰지 못하는 저소득층 가구에게 온라인 수업은 곧 통신비 폭탄을 의미했다. 사회 전반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통신망은 상업적 서비스를 넘어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강요받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해결책이 특정 교육 사이트 접속 시 데이터를 차감하지 않는 '제로레이팅'이었으나, 그 도입 과정은 정치적 압박과 산업적 우려가 뒤섞인 폭풍의 연속이었다.
제로레이팅의 기술적 핵심은 통신사가 특정 트래픽을 선별해 과금 엔진에서 제외하는 화이트리스트 작업이다. 하지만 이는 통신망이 모든 콘텐츠를 차별 없이 대우해야 한다는 '망 중립성'의 근간을 흔드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통신사들은 폭증하는 트래픽 관리 비용과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며 난색을 표했으나, 당시 국회 과방위 현장의 분위기는 기술적 논리보다 '정치적 호통'이 압도하고 있었다.
당시 국회 회의록에는 기술적 메커니즘을 완전히 무시한 발언들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부 의원들은 데이터라는 것이 결국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한한 자원인 것처럼 묘사하며, "아이들 공부시키는 데 들어가는 데이터를 왜 통신사가 아까워하느냐"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특히 "5G는 대용량이라면서 왜 교육용 트래픽을 따로 계산하느냐"는 호통은 인프라 유지비, 백본망 부하, 전력비라는 물리적 비용 구조를 완전히 간과한 발언이었다. 통신사가 국가로부터 주파수를 할당받았으니 위기 시에는 당연히 무상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식의 압박은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질식시켰다.
결국 국회의 서슬 퍼런 압력과 '국민 정서'라는 거대한 명분 앞에 통신사들은 백기를 들었다. 2020년 말까지 전국의 초·중·고 학생 540만 명에게 교육 데이터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한 결단은, 기업의 자발적 헌신이라기보다 정치적 강요에 의한 독배에 가까웠다.
이 강제된 선의는 대한민국 일상과 산업에 묘한 파장을 남겼다. 학생들은 데이터 소진의 공포 없이 태블릿을 켜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는 곧 대한민국 에듀테크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종이 교과서 대신 동영상이 교육의 주류가 되었으며, 아이들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학습에 빠르게 적응했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에서는 뼈아픈 부작용이 뒤따랐다. 공공 교육 사이트에만 적용된 제로레이팅은 민간 교육 업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역차별의 장벽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통신은 위기 시에 언제든 무료여야 한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수천억 원 규모의 잠재적 수익을 포기한 것은 물론, 향후 글로벌 CP(콘텐츠 사업자)들과의 망 이용료 협상에서 데이터의 가치를 정당하게 주장하기 어려운 논리적 허점을 스스로 남기게 되었다. 온라인 개학은 교육의 결손을 막아냈으나, 통신사의 비즈니스 모델에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셈이다.
이 사건은 훗날 5G 특화망이나 공공 와이파이 확대 등 국가 주도의 통신 정책이 강화되는 명분을 제공했으며, 동시에 5G 품질 논란과 28GHz 주파수 반납 사태라는 폭풍을 앞두고 통신사들이 겪어야 했던 마지막 '강요된 헌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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