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3G 시대 개막
“IMT-2000 서비스 시기를 연기할 수 있다.”1)
2001년 1월 3일. 신년간담회장에 등장한 이상철 한국통신 사장의 이같은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IMT-2000은 2002년 5월 한일 월드컵에 맞춰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이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통신의 주장은 비동기식 국산장비 개발이 늦은 상황에서 서둘러 상용화에 나선다면 노키아와 에릭슨 등 외국 장비업체에게 국내 시장이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비스 도입 시점에 지원 단말과 서비스가 제때 보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따랐다.
일각에서는 기존 서비스가 진행 중인 CDMA 기술의 다음 단계인 CDMA2000-1x 으로의 진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IMT-2000이 크게 급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산장비 개발에 시간이 필요했던 삼성전자도 세간의 연기 주장에 장단을 맞췄다.2)
하지만 SK텔레콤은 이같은 주장에 즉각 반박했다. 표문수 SK텔레콤 사장은 1월 8일 취임간담회를 통해 IMT-2000 상용화 연기는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3) 오히려 국내 장비업체의 개발을 재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동기식 개발을 서둘러 추진했던 LG정보통신도 SK텔레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교통정리에 나서야 했던 정부는 손을 놨다. 비동기식 IMT-2000 상용화 시기를 조율하기보다는 민간 자율에 맡겼다.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에 정책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사업자 선정 심사에서 2002년 5월 상용화 가능성이 핵심 역할을 했는데,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우선, SK텔레콤은 3월 5일 서울 서린동 SK그룹 사옥에서 ‘SK IMT’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4) SK IMT-2000 사업추진단을 이끌었던 강용수 상무를 대표로 선임했다. 초기자본금 3천억 원, 직원 50명으로 출발한 SK IMT는 SK텔레콤을 최대 주주로 포철과 신세기통신, 파워콤 등 676개 사가 함께 했다.
한국통신은 3월 16일 서울 우면동 한국통신 연구개발본부 대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KT아이컴’을 공식 출범시켰다.5) 설립자본금 5천억 원으로 시작해 단시간 내 총 250명의 직원을 선발하기로 했다. 조영주 KT IMT법인설립추진위원장이 초대 대표를 맡았다.
한국통신프리텔은 이후 5월 2일 신라호텔에서 한통엠닷컴(한솔PCS)과 합병하면서 새로운 사명인 ‘KTF’로 거듭났다.
업계 바람과 달리 전반적인 IMT-2000 항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순탄치 않았다.
네트워크 장비와 단말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동기식 진영에서는 기존 CDMA(IS-95A/B)에서 한 단계 진화한 IS-95C를, 비동기식은 유럽의 GSM을 발전시킨 GPRS에 주목했다. 이를 두고 통신업계에서는 3G에 미치지 못하는 2.5G라 불렀다.
우리나라는 동기식 CDMA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IS-95C에 집중했다. IS-95C의 또 다른 기술명은 ‘CDMA2000 1x’다. 사실 이 기술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가 3세대(IMT-2000)로 규정한 5개 기술표준에 해당됐다. 기존보다 무려 2~10배가량 빠른 최고 144kbps 속도를 낼 수 있어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보낼 만큼의 데이터를 소화할 수 있다.
즉, 3세대라 불러도 무방하나 그 속도나 기술발전상 IMT-2000의 문턱에 있다고 해 편의상 2.5G라 불렀고 정식 IMT-2000에서는 제외했다. 국내서도 이기술을 ‘IMT-2000과 유사한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이론상 엄밀하게 말하면 ITU 기술표준에 해당하는 3G가 맞다 -
CDMA2000 1x는 SK텔레콤이 2000년 9월 1일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10월 1일 서울과 인천 지역에서 상용화했다. 10월 2일에는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이 서울 관악구 봉천동 보라매 사옥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PDA를 통한 동영상 시연과 데이터 속도 시연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국통신프리텔도 10월 2일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같은 달 말 상용화했다. LG텔레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상용 서비스를 개시했다.
하지만 정확히 이를 상용화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네트워크 망을 갖췄으나 실제 쓸 수 있는 단말이 전무했다. 가입자가 없으니 빈수레만 요란했다. 단말은 기약없는 시기를 지나 12월이 되서야 보급이 시작됐다. 삼성전자가 CDMA2000 1x를 지원하는 ‘SCH-X100’을, LG전자는 싸이언 ‘사이버-iX1’ 판매에 나섰다. 모두 퀄컴 MSM5000 칩을 내장한 단말이다.
초기 어려운 시기를 지나 CDMA2000 1x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때는 2001년 5월부터다. SK텔레콤과 KTF(전 한국통신프리텔), LG텔레콤이 전국 주요 도시를 기점으로 서비스 반경을 넓혔다. 6월에는 SK텔레콤이 전국 23 개시에서 단말기를 통한 멀티미디어 상용 서비스를 개시했다.
특히,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 합병조건인 점유율 50% 달성이 끝나는 6월 이,후 통신 3사가 오랜만에 경쟁체제를 완성하면서 CDMA2000 1x가 보다 활성화됐다.
CDMA2000 1x 도입으로 데이터 속도가 144Kbps로 늘자 단말과 서비스 측면에서 보다 진일보했다. 우선 단말기 컬러 디스플레이 시대를 맞이했다. 더 이상 흑백 화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영상통화 시대가 열렸다. 간단한 콘텐츠 정도는 열어볼 수 있게 되면서 만화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메시지도 애니메이션이 도입되는 등 다채로워졌다. 실제 긴 호흡의 영화나 드라마까지는 아니었으나 뮤직비디오나 뉴스 등을 열어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노래방 기능도 더해졌다.
CDMA 노하우를 갖추고 CDMA2000 1x까지 세계 최초 상용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중국의 CDMA 구축 계획에 따라 수출길도 열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중국 장비 공급에 나서는 한편,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업자들은 방한한 중국 관계자들을 만나 망구축부터 운영/까지 전반을 전수해 줬다. 자연스럽게 국격 역시 높아졌다. 차이나텔레콤과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등이 삼성전자, LG전자뿐만 아니라 국내 CDMA 장비사들과 연달아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5월 말에는 삼성전자로부터 영상전용 휴대폰도 출시됐다.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된 SCH-X200은 동영상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주문형 영상(VOD)을 원활하게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6)
비동기식 IMT-2000인 WCDMA 지연이 계속되자, 이통사들은 성숙단계로 향한 CDMA2000 1x에 더욱 집중했다. 전국망 구축까지 진행된 상태로 망 고도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차기 기술표준은 ‘CDMA2000 1x EV-DO’다. 전자가 3G의 문턱에 왔다면 EV-DO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식 3G 기술표준으로 평가받았다.
CDMA2000 1x EV-DO는 퀄컴이 독자 개발한 HDR(High Data Rate)을 말한다. EV-DO(Evolution-Data only)란 말 그대로 데이터만을 취급하는 기술을 말한다. 최대 속도 2.4Mbps를 낼 수 있다. 바야흐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킬로(K) 시대에서 메가(M) 시대로의 진입이다.
이통사들은 월드컵 시기에 맞춰 상용화할 예정인 WCDMA 대신 EV-DO를 선택했다. KTF와 SK텔레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SK텔레콤은 2001년 3월 장비업체들을 대상으로 예비제안요청서(RFI)를 요청하는 한편, KTF는 한발 더 빨리 정식으로 제안요청서(RFP)를 내기도 했다.
KTF는 이 분야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기술 역량이나 전개 속도는 KTF가 한발 더 앞섰다. SK텔레콤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2002년 5월 상용화를 발표한 KTF보다 앞서야 한다는 목표로 배수진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EV-DO는 ITU로부터 당당히 3세대 기술표준으로 인정받은 바 있기에 다른 의미로 IMT-2000의 최초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KTF는 11월 7일 누구보다 빨리 EV-DO 상용 시스템에 대한 시험평가를 실시했다.7) 경기도 일산 KTF 시험센터와 인근 8개 기지국사를 통해 다양한 장비들을 테스트했다. 이를 통해 2002년 1월 최종 장비사를 채택하겠다는 전략이었다.
SK텔레콤도 맞섰다. 11월 17일부터 서울과 과천, 안양 일부지역을 대상으로 EV-DO 시범서비스를 전개했다.8) KTF는 SK텔레콤의 도발에 정면 대응했다. 40여 개 시험기지국 수준이 시범서비스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 사업자 모두 내년 2월 말 수도권 지역을 우선으로 네트워크 구성을 마치고 3월부터 정식 서비스에 돌입할 것이라 선언했다.
2002년이 새 아침이 밝자마자 두 진영의 경쟁은 극에 달했다. SK텔레콤은 우선적으로 1월 28일 인천 지역을 앞세워 CDMA2000 1x EV-DO 상용화에 나섰다.9) KTF는 시범서비스 수준으로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10)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따내기 위함이었으나 돌이켜보면 급했다. 당시 제대로 된 단말이 있을 리 만무했다. PDA와 PCMCIA형 단말기를 적용한 노트북 PC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통상적인 단말인 휴대폰이 아니었다. 요금 서비스는 패킷당 2.5원으로 책정됐다. 망과 요금은 있으나 보편화된 단말이 없었던 셈이다.
무늬만 세계 최초였기는 하나 기록은 남았다. 일본 KDDI나 미국 스프린트보다는 약 1년을 앞선 성과였다. 우리나라 내부에서는 경쟁양상에 따른 지적이 있을 수는 있었으나 전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의 CDMA 역량을 과시할 수 있었다. 또한 동기, 비동기를 넘은 IMT-2000을 상용화한 국가로 남게 됐다.
급했기에 벌어진 해프닝도 있었다. SK텔레콤은 5월 2일 EV-DO 시연회를 개최했는데, 문제는 이 시연회에서 시스템 먹통으로 인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서버 문제로 네트워크에는 이상이 없다고 해명하기는 했으나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KTF도 동일한 사고가 있었다. 2001년 11월 EV-DO 시범서비스 시연회에서 비슷한 오작동 사례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서버 오류가 있다는 해명이 있었다. 이 같은 해프닝은 사업자뿐만 아니라 장비사 비난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시연 성공 유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날 선 공방을 벌였다.
EV-DO가 본격화된 때는 약속된 일정인 2002년 5월부터다. 5월 10일 KTF가 정식으로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한 EV-DO 상용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쟁이 심화됐다.11) SK텔레콤 역시 전국 26개 도시에서 EV-DO를 상용화했고 전국망을 완성하는 중이었다. 또한 6월 10일 삼성전자가 지원단말인 SCH-E100을 출시하면서 가입자가 점차 늘어갔다.12)
이에 앞서 5월 31일 드디어 2002 한일월드컵이 개막했다. 88 서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이동통신의 시작을 알렸다면, 월드컵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위엄을 전세계 60억 인구를 대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SK텔레콤은 당시 응원단이나 마찬가지인 붉은 악마를 후원해 ‘Be the Reds’ 슬로건을 앞세웠다. KTF는 명칭을 살려 ‘Korea Team Fighting(KTF)’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은 총 2천240여 대의 임대 단말기를 마련하는 한편, 국내외 VIP와 취재기자들을 위한 IT기술 시연장을 설치해 운영했다. 호텔 등의 숙박시설은 초고속인터넷이 지원됐다. 주요 해외 언론들도 우리나라의 EV-DO 기술력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통신망을 따라 포토메일이 오고 가는 한편 중계방송 역량도 과시했다.
영국 CNN과 파이낸셜타임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 포스트, 홍콩 파 이스턴 이코노믹, 일본 요미우리 신문, 독일 ZDF 등 앞다퉈 CDMA 종주국으로 한국을 추켜 세웠다.
SK텔레콤과 KTF는 지속적으로 CDMA2000 1x EV-DO 망구축 확산에 나섰다. KTF는 전용 멀티미디어 서비스 브랜드 ‘핌(Fimm)’을 론칭했고, SK텔레콤은 11월 25일 삼성전자 SCH-V300이 출시에 앞서 비슷한 브랜드인 ‘준(June)’을 출범시켰다.12)
한편, LG텔레콤은 비동기 IMT-2000 사업권을 따낸 후 EV-DO를 건너뛰고 보다 완성된 기술인 EV-DV로 점프하겠다고 선언했다. EV-DV(Evolution-Data and Voice)는 데이터만 전송하는 EV-DO와는 달리 음성과 데이터 모두를 패킷 방식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같은 이동통신 전개 내용 중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SK텔레콤과 KTF가 IMT-2000을 상용화했다는 말이 그렇다.
정부는 IMT-2000 사업자 공모를 추진해 SK텔레콤과 KTF에게 비동기식 IMT-2000 사업권을 부여했다. 비동기식 IMT-2000 사업권은 LG텔레콤으로 최종 확정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SK텔레콤은 비동기식이 아닌 동기식 IMT-2000 세계 최초 상용화 기업이 됐고, KTF는 완성된 동기식 IMT-2000 사업자로 기록됐다. LG텔레콤은 그 과정에서 비동기식 IMT-2000 상용화를 후일로 미뤘다.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는까. 분명 정부가 동기식과 비동기식 기술표준 경합으로 인해 고심 끝에 동기와 비동기 1곳, 동기 또는 비동기 1곳으로 총 3개 사업자를 선정하고 그에 따라 2개 사업자만 비동기로 결정되고 동기식은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쳐 극적으로 1곳을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술표준 상용화가 뒤엉킨 꼴이 됐다.
게다가 정부가 사업권을 준 비동기식 IMT-2000 상용화는 연기됐다.
즉,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용어들이 난무하면서 고객 혼란이 가중됐다. 한층 더 뜨겁게 타오른 이통사의 마케팅 경쟁은 이 같은 어려움을 부채질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잘못된 예측과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민간 자율에 맡기며 뒷짐 진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졌다. 게다가 비동기 사업자의 동기 전환에 대한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논란을 키우기까지 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상황은 기술표준 동향과 시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면서 발생한 사례다. 이동통신 기술표준을 정립하는 ITU의 경우 3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IMT-2000’으로 명명했다. 3G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표준은 '복수'로 설정됐다. 이 '복수'가 혼란을 야기했다.
당시 ITU에 기술표준 제안은 유럽식 3GPP와 미국식 3GPP2가 대표적이다. 이 표준화기구들에는 각국의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사, 장비사들이 포함돼 있다. 각각의 이익에 맞춰 표준을 옹립하거나 등한시한다. 즉, 제안된 기술표준 후보는 ITU가 일정에 맞춰 이를 확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CDMA2000 1x’로 알려진 IS-95C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3G 문턱에 위치했다고 해서 2.5G로 불렸다. 다만, 이 기술은 2000년 5월 ITU가 CDMA2000 1x로 명칭을 확정하면서 3G 기술표준으로 인정했다. 즉, ITU 기준으로 이 기술은 3G로 구분된다.
진화단계인 ‘CDMA2000 1x EV-DO’에 대해 ITU는 2000년 11월 동기식 IMT-2000으로 인정했다. 이 역시 3G 기술표준에 포함된 것. 간단하게 말하면 ‘그때는 아닌데, 지금은 맞다’ 상황이다. 시점 상으로 차이가 발생하기는 하나 개발 단계에서 또는 망 구축 상황에서는 IMT-2000으로 인정받지 않은 기술표준이 이후 상용화 직전 또는 상용화 후 IMT-2000으로 확정된 셈이다.
이러한 동향을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케팅 용어와 혼용하면서 고객 혼란이 가중된 것. 또한 정부가 이에 대해 별다른 해명이나 교통정리를 하지 않아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1) 유봉석 기자, <[인터뷰] 이상철 한국통신 신임사장>, 매일경제, 2001. 1. 3.
2 김태한 홍석민 기자, <[기업] IMT-2000서비스 연기되면...통신업자 "그저 고마울뿐">, 동아일보, 2001. 1. 7.
3) 류현성 기자, <표문수 SKT 사장 "IMT-2000서비스 조속 실시해야>, 연합뉴스, 2001. 1. 8.
4) <IMT-2000 그 도전과 성공>, [MOBILE STORY SINCE 1984], SK텔레콤, 2004.12.16, p.263
5) 김광현 기자, <한통 IMT-2000법인 'KT아이컴' 출범>, 한국경제, 2001. 3.16.
6) 유봉석 기자, <SK텔레콤, 영상휴대폰 상용서비스>, 매일경제, 2001. 5.31.
7) 윤봉섭 기자, <초고속 무선인터넷 내년 5월 상용서비스>, 국민일보, 2001.11. 7.
8) 정재호 기자, <SKT·KTF 3세대 기술 “우리가 세계최고”>, 국민일보, 2001.11.19.
9) 서양원 김진환 기자, <SK텔레콤, cdma2000 1xEV-DO 서비스 개시>, 매일경제, 2002. 1.27.
10) 김태한 기자, <[정보통신]‘동기식 IMT2000’ 업계 논란>, 동아일보, 2002. 2. 5.
11) 이성주 기자, <휴대폰 EV-DO시대 개막>, 파이낸셜뉴스, 2002. 5. 9.
12) <삼성전자, CDMA2000 1x EV-DO용 휴대폰 출시>, 아이뉴스24, 2002. 6.10.
13) 강희종 기자, <EV-DO서비스 기반 새 브랜드.. SKT, "준" 마케팅 본격화>, 디지털타임스, 2002.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