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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May 30. 2023

(31) 유선망 2위 파워콤 어디로…하나로-데이콤

9부. 3G 시대 개막

2000년 6월 29일. 정보통신부의 깜짝 발표에 통신 시장에 뒤집어졌다.1) 파워콤에 대한 동일인 지분 10% 제한규정을 철폐하기로 한 것. 단순히 공기업 자회사의 민영화를 염두에 둔 조치이기는 하나 파장은 상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워콤은 유무선 통합 3대 통신 기업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요충지였다.


MSN메신저로 전화하는 모습 [사진=LG데이콤]


파워콤은 한국전력 자회사다. 본래 한국전력이 가진 통신사업군이었으나 2000년 1월 정부 공기업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자회사로 분리됐다. 한전이 보유한 광통신망과 케이블 TV전송망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파워콤의 유선망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만 봐도 파워콤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LG텔레콤을 비롯해 SK텔레콤, 한솔엠닷컴, 신세기통신, 데이콤, 하나로통신, 두루넷, 드림라인, 온세통신 등 한국통신과 한국통신프리텔을 제외한 대부분의 통신기업들이 파워콤의 주요 고객사였다. 


공기업으로 출발한 한국통신이 최다 유선망을 보유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국 곳곳의 전력을 제공한 한국전력도 그와 유사한 통신망을 갖춰 놓고 있었다. 


즉, 정보통신업계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매물인 셈이다. 한국통신에 이은 2위 유선통신망사업자였기에, 파워콤의 향방은 통신업계에서 중요한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전력은 7월 24일 민영화 일환으로 파워콤 지분 20%에 대한 국내법인 대상 입찰을 실시했다.2) 한전의 목표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적어내는 곳을 우선 낙찰자로 정했다. 목표가에 미치지 못하면 입찰은 무산된다.


입찰결과 SK텔레콤과 포항제철이 상한선인 5%를 각각 확보했다.3) LG와 삼성, 두루넷 등은 경쟁입찰에 참여하지 않고 눈치싸움만 이어갔다.


이후 한전은 9월 전체 지분의 30%를 매각하고자 했으나 정부부처 간 이견이 발생하면서 막혔다.4) 정보통신부와 기획예산처, 산업자원부가 입찰 자격제한을 결정하지 못했다. 당초 통신망이용업체나 국내외통신업체 또는 컨소시엄에 넘기자 했으나 정보통신부가 기간통신사업자에게 넘기자 해 이견이 발생했다. 정보통신부의 주장대로 라면 한국통신을 제외한 SK텔레콤과 LG텔레콤이 유력시된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포항제철은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실제 포철은 단독 입찰이 아닌 컨소시엄 구성을 고려하면서 이 같은 불확실성을 넘어서겠다는 전략을 짰다. 다만, 결과적으로 입찰을 유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자연스럽게 경쟁 양상은 SK와 LG로 좁혀졌다. 하지만 LG가 파워콤 인수전을 포기하는 대신 IMT-2000 선정에 집중하고, LG전자를 분사 상장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부터, 파워콤은 SK쪽으로 기울었다. 


포철과 LG가 포기하다시피 했다고 하더라도 SK 역시 마냥 반길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무엇보다 파워콤의 주식이 너무나 높았다. 즉, 막대한 현금이 투입돼야 했다. SK는 인수를 통해 직접 경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포철과 LG, SK 등 유력 후보들이 정부의 추측과는 달리 모두가 등을 돌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상황이 반전된 때는 IMT-2000 사업자 선정 발표 때다. 파워콤의 필요성이 두드러진 시점이다. 비동기 IMT-2000 사업권을 따낸 SK텔레콤의 경우 함께 선정된 한국통신을 견제해야 했기에 유선망 보강이 절실했다. 또 한편으로 선정에 실패한 LG텔레콤 역시 통신 3강 구도 형성을 위해 파워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필요충분요건이 분명하기는 했으나 SK와 LG는 별 다른 움직임없이 눈치전만 벌였다. SK텔레콤은 파워콤 지분 5%만으로 충분하며, 이미 유선협력업체가 있기 때문에 무리한 인수전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손사래 쳤다. LG그룹은 IMT-2000 선정 실패로 인한 패닉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1차전 - 하나로 ‘부상’ SK·LG ‘불참’

2004년 하나로텔레콤, 국산 휴대인터넷 기술 종합 시연 모습 [사진=하나로텔레콤]

2001년 2월. 정보통신부는 대통령께 통해 국내 통신산업을 3개 그룹으로 개편하겠다는 계획안을 보고했다. 유무선정보통신통합 3강을 구성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계획에는 유무선 통합이 완성된 한국통신과 SK통신그룹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은 한자리는 기존 2개 그룹에 해당되지 않는 통신 관련기업들을 규합하기로 했다. 유력한 중심축은 포항제철과 LG텔레콤이었다. 당시 포철에 좀 더 기운 형국이기는 했으나, 인수 참여는 모두 소극적이었다.5) 


연내 파워콤 매각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산자부는 5월 29일 정보통신부, 기획예산처, 한국전력 등과 만남을 갖고 기존 기간통신사업자뿐만 아니라 비통신사업자 또는 외국기업에게도 인수의 길을 열어줬다.6) 또한 정보통신부는 연내 민영화 허가조건을 완화해 산자부, 기획예산처와 함께 매각 시기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국전력은 6월 29일 파워콤 전략적 지분 30%에 대한 매각 일정을 발표했다.7) 8월 10일까지 투자의향서를 받고 9월 말 매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포철과 SK텔레콤, LG텔레콤 등 잠정인수자들을 위한 설명회도 개최했다.


그 사이 SK텔레콤이 사실상 유선망사업에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8) 하나로통신 지분 6.12%를 전량 매각하는 한편, 수익 중 심의 재편을 통해 무선 서비스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유선망에 대한 최소한의 전략적 관계를 가져가기 위해 파워콤 지분 5%는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SK텔레콤이 유선망 사업에서 한국통신,  하나로통신과 경쟁하기보다는 포털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자연스럽게 파워콤 입찰은 물 건너갔다. 


합의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정통부와 산자부는 힘겨루기는 계속됐다. 정보통신부는 유무선종합통신 3강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하나로통신과 LG텔레콤, 파워콤 등이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에 기간통신사업자에게 파워콤을 넘겨야 한다는 초심을 유지한 셈이다. 산자부는 이와 관련 없이 한전이 누구에게나 파워콤 매각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부처간 힘겨루기가 계속되자 불편한 쪽은 당사자인 파워콤이었다. 무엇보다 인수대상자가 하나로통신으로 모아지는 분위기였다. 파워콤 내부적으로 하나로통신의 인수 의향만으로도 기업가치가 훼손된다며 맹비난했다. 


정통부가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파워콤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서사현 파워콤 사장은 7월 20일 간담회를 통해 하나로통신과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못 박은 뒤, 오히려 파워콤에 통신 소매업을 허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9) 파워콤은 LG텔레콤과 두루넷, SK텔레콤 등을 대상으로 한 유선망도매제공사업자였기에 그들과 동일한 고객 대상 초고속인터넷사업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도였다. 소매업이 가능하다면 기업가치는 더 오를 수 있다는 게 파워콤의 설명이었다.


파워콤의 속내와 달리 하나로통신은 파워콤 인수에 진심을 다했다. 우선, 7월 초고속인터넷 4위 사업자인 드림라인인수 합의를 발표했다. SK텔레콤으로부터 유선사업을 양도받는 한편, 두루넷과 LG에 컨소시엄 참여를 요청했다. - 하나로통신의 드림라인 인수는 2001년 11월 13일 1대 주주인 제일제당 지분 28.97%와 당시 이재현 제일제당 부회장 지분 3.21%를 인수하면서 마무리됐다.10) - 드림라인에 이어 파워콤까지 가세한다면 하나로통신의 위용은 더 높아질게 당연했다. 


시간은 흘러 8월 10일. 파워콤의 새 주인 찾기가 본격화됐다. 파워콤 지분 30%에 대한 입찰의향서를 제출한 곳은 하나로통신과 두루넷, 외국계 투자금융회사 등 총 5~6곳으로 알려졌다. 예상대로 SK텔레콤은 불참했다. LG텔레콤 역시 발을 뺐다. 한전 측은 9월 1차 입찰 결과를 통보하기로 했다.


2차전 - 자동 유찰로 마감


한전의 발표에 앞서 8월 25일 정보통신부가 정보통신정책심의회를 개최하면서 파워콤 인수에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다.11)


파워콤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쟁역량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사업영역 확대다. 이에 따라 파워콤은 회선임대뿐만 아니라 한국통신, 하나로통신, 두루넷, 드림라인과 마찬가지로 통신소매업, 즉 소비자 대상 인터넷사업(B2C)을 영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정보통신정책심의회는 부가통신사업자와 별정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회선임대를 허용하면서도 통신소매업 제공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의하자는 유보적인 결론을 내렸다. 


한전 측과 산자부는 업무영역을 확대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의 미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정통부는 통신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섣불리 소매업에 길을 열어줘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9월 7일. 결국 한국전력은 파워콤 민영화 일정 연기를 공식화했다.12) 입찰 참여의향서를 제출한 기업들에게도 입찰 일정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두루넷 등은 입찰재개를 촉구하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10월 29일. 정보통신부는 다시 한번 정보통신정책심의회를 열어 파워콤의 역무조정에 대한 안건을 심의했다. 13) 기존과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으나, 민영화에 따라 파워콤 지분의 51% 이상이 민간에 매각되면 통신소매업을 허용하겠다는 조건이 달렸다. 산자부와 합의를 이룬 셈이다.


이에 따라 입찰 절차가 재개됐다. 초반 지연되기는 했으나 실사도 순조롭게 마쳤다.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다툼이 있기는 했으나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이 막판 합의에 이르면서 신한맥쿼리금융자문 등과 함께 3사 단일 컨소시엄이 구성됐다. 이에 따라 하나로-두루넷 컨소시엄과 미국 뉴브리지캐피탈, 호주 연기금 CDP 등 3개 사업자로 축약됐다.


2002년 2월 21일 드디어 파워콤 지분매각 입찰이 실시됐다. 입찰가격과 사업계획, 자금조달 계획 등을 종합 평가해 28일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3월 말에는 최종계약까지 완료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당초 3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하나로-두루넷 연합만 단독 입찰에 응했다. 절차상 1곳만 입찰하게 되면 자동 유찰된다. 타 컨소시엄의 경우 한전이 제시한 매각가격이 맞지 않아 발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시 민영화의 꿈은 뒤로 미뤄졌다.14)


3차전 - 데이콤 참전


파워콤 유찰과 관계없이 하나로통신과 두루넷 합병은 점차 가시화됐다. 두루넷 최대 주주로 소프트뱅크가 올라서면서 협상 창구도 단일화됐다. 하나로통신은 이미 초고속인터넷 5위 사업자 드림라인을 인수했다. 3위 사업자인 두루넷과 합병되면 1위 사업자인 KT에 맞서 2강 체제 구축이 가능하다. 게다가 파워콤까지 합세한다면 유무선종합통신사업자 3강에도 진입한다.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기업은 LG그룹이다. 당시 LG그룹은 동기식 IMT-2000 사업을 하나로통신과 함께  따낸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하나로통신이 파워콤을 인수한다면 3강 자리에서 밀릴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데이콤의 파워콤 인수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데이콤을 통한 파워콤 인수가 추후 LG텔레콤 합병으로 이어진다면 LG그룹이 종합통신사 3강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복안이었다. 게다가 파워콤의 최대 고객이 다름 아닌 LG텔레콤이었기에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3월 29일 한국전력은 3차 입찰공고를 내고 다시 매각 작업에 돌입했다.15) 4월 11일 입찰의향서 제출일이 밝자 또 다시 변수가 발생했다. 합병을 추진 중이었던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이 잠시 결별을 선언하고 각자 의향서를 제출했다. 함께 했던 신한맥쿼리투자금융도 마찬가지다. 마치 지난 유찰을 반면교사 삼은 모습이었다. 입찰의향서를 낸 3개사는 사실상 2차 선정 때 냈던 컨소시엄이 각각으로 분산된 형태였다. 신흥 강자인 데이콤은 막판까지 신중했다. 


마감일인 4월 17일. 장막 뒤에 숨었던 데이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16) 이날 캐나다 연기금 CDP와 소프트뱅크아시아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파워콤 입찰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LG계열인 데이콤은 단숨에 가장 강력한 낙찰 후보자로 떠올랐다.


업계는 LG그룹의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SK텔레콤과 KT에 대적하기에는 열세에 놓여 있던 게 사실이었다. 부동의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유무선을 고루 갖춘 최대 인프라 보유자 KT, KTF를 고려한다면, LG그룹은 이동통신 3위인 LG텔레콤과 시외, 국제전화 사업자 데이콤 이외에는 마땅히 맞수라 부를 게 없었다. 파워콤마저 뺏긴다면 통신사업에서 퇴출될 수 있었다. 반대로 파워콤을 인수하게 되면 유선사업자인 데이콤과의 시너지뿐만 아니라 무선 LG텔레콤과의 융합으로 유무선에서 기반을 닦을 수 있게 된다.


마침내 6월 21일 파워콤 3차 지분매각 입찰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하나로와 두루넷, 데이콤이 참여했다. 두루넷의 경우 전략적 입찰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로통신과 데이콤의 2파전 양상을 보였다.


마치 마지막인듯 불타오른 인수전은 허망하게 종결됐다. 이번에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한국전력은 7월 5일 파워콤 지분 매각을 위한 입찰 결과 '유찰'됐음을 공식 발표했다.17) 표면적으로는 가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파워콤 자체가 인수대상이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는 떨어졌다. 그에 비해 한전이 바라는 매각가격이 있었고, 시장이 원하는 가격이 있었기에 서로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전은 입찰기업이 인수 후에도 한시적으로 적자 리스크를 감내하는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 이유와 달리 내면적 이유로 한전과 산자부, 정통부의 갈등이 작용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전은 매각을 결정한 2000년 파워콤의 주가를 계산해 매각을 바랐지만, 산자부는 공기업 민영화에 따른 성과를 얻어야 했기 때문에 접근하는 관점이 달랐다. 정통부도 통신산업 구조조정이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에 분산되기보다는 하나로통신과 LG그룹이 그랜드 컨소시엄을 결성해 종합통신사 3강의 한 축이 되기를 바랐다. 서로가 바라보는 목표가 달라 합의안을 도출하기 쉽지 않았다.



1) 김재영 기자, <[뉴스] 정통부 "파워콤 허가조건 변경 수용">, 머니투데이, 2000. 6.29.

2) 손영옥 기자, <파워콤 지분 인수경쟁 ‘본격점화’>, 국민일보, 2000. 7.24.

3) 조영행 기자, <SK.포철, 파워콤 지분 5% 확보>, 매일경제, 2000. 7.25.

4) 인교준 기자, <정부 부처간 이견으로 `파워콤' 매각 표류>, 연합뉴스, 2000. 9.14.

5) 유봉석 기자, <정통부, 통신산업 재편 방향>, 매일경제, 2001. 2.19.

6) 정재호 기자, <파워콤 매각 연기…매각시기 추후 결정>, 국민일보, 2001. 5.29.

7) 최상현 기자, <[거래소] 파워콤 매각 8월10일까지 접수>, 머니투데이, 2001. 6.29.

8) 이은아 기자, <SK텔레콤, 하나로통신 지분매각 추진>, 매일경제, 2001. 7. 3.

9) 정종태 기자, <"파워콤, 하나로와 합병 반대" .. 서사현 사장 공식화>, 한국경제, 2001. 7.20.

10) 장규호 기자, <하나로,드림라인 인수>, 한국경제, 2001.11.13.

11) 김광현 기자, <'파워콤 사업 확대' 갈등증폭>, 한국경제, 2001. 8.26.

12) 정종태 기자, <한국전력, 파워콤 민영화일정 공식 연기> 한국경제, 2001. 9. 7.

13) 오지인 기자, <파워콤 역무확대 전략지분 매각 이후(1보)>, 머니투데이, 2001.10.29.

14) 최용성 기자, <파워콤 지분매각 유찰...민영화 불투명>, 매일경제, 2002. 2.21.

15) <한전, 파워콤 재입찰 공고-다음달 11일 투자의향서 마감>, 아이뉴스24, 2002. 3.29.

16) <[1보] 데이콤, 파워콤 입찰에 전격 참여>, 아이뉴스24, 2002. 4.17.

17) <파워콤 유찰, 배경과 향후 전망>, 아이뉴스24, 200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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