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19 : 누빈다, 사원들 사이들.
여행 중에 쓰고 있습니다. 두서도 없고 인터넷이 느려 사진도 없지만, 일단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소한 감상과 개인적인 생각을 위주로 하고, 여행 정보는 간략하게라도 나중에 따로 정리해볼까 하네요.
오늘도 귀신같이 5시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뜬 김에 이바이크를 빌려 일출을 보러 쉐산도에나 가볼까 싶다가 몸도 찌뿌드드해서 그냥 말기로 한다. 다시 잠도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날이 밝아서 새벽 산책이나 나갔다 들어왔다.
조식을 먹고 있으니 지금 쓰는 방에 오늘은 예약이 있다며 도미토리로 옮겨달라고 한다. 빨래가 덜 말랐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루 호사 누린 것이 어디인가. 도미로 방을 옮기니 한 명은 쓰러져 자고 있고, 한국 아저씨 한 분이 앉아 계신다. 동포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지.
어제 예약해 둔 뽀빠산 가는 쉐어 차량을 기다리면서 아저씨와 한참 이야기했다. 말투로 보아 경상도 분이 분명한 아저씨는 오늘 만달레이로 돌아가신다고 한다. 안타깝다. 저녁에 술 한 잔 같이 했으면 좋았을텐데. 나의 소주는 언제 깔 수 있을까.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니시는 것 같다. 비수기의 값싼 표를 노려 제주도 가느니 라오스 방비엥에 가서 자주 놀다 오신다고. 이렇게 혼자 여행다닐 수 있는 아저씨가 부럽다. 어떻게 사모님이 보내주는 것일까? 나중에 써먹고 싶어 비결을 묻고 싶었지만, 행여나 복잡한 사연이 있으실까 물어보진 않았다.
뽀빠산 투어 가는 차에는 이미 서양인 다섯과 동양인 둘이 앉아 있었다. 기사 아저씨가 앉으라는 대로 맨 뒷자리 양인들 옆에 앉았는데, 뭔가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 말을 걸기가 뻘쭘하다. 일단 졸리니 한 숨 자고 봐야지. 반수면 상태로 졸다가 차가 멈춰 깨어보니 어제 뉴바간 올 때 택시 아저씨가 이야기 해 준 설탕 공장인 듯 하다. 김병만처럼 나무에 올라 뭔가 열매를 따고, 소가 뭔가를 갈고, 뭔가를 끓여서 설탕 과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구경하고 시식도 할 수 있었다. 먹어보니 달달하고 깨나 땅콩 같은 것을 넣어 고소한 것이 가지고 다니면서 먹기 딱 좋을 것 같았지만, 행여 이가 아플까 무서워 참기로 했다. 안 좋은건 맥주 하나로도 이미 충분.
구경하는 틈을 타 옆자리 남녀에게 다가가 슬쩍 인사를 했다. 이자벨라와 로렌스.(듣고 십 분 뒤에 메모해뒀는데, 사실 그 때 이미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로렌스가 맞나?) 스위스 사람들이라고 한다. 외국인들과 몇 번 이야기를 했더니, 무슨 주제가 대화를 이어나가기 편한지 조금 알 것 같다.
아 나는 너희 나라에 가 봤어/안 가봤어/가 보고 싶어. 바간엔 얼마나 있었니? 미얀마에는? 전체 일정이 얼마나 되니? 여기 오기 전에 다른 나라에도 갔었니? 여기 다음에 다른 나라에 갈 거니? 아 나는 그 나라에 가 봤어/안 가봤어/가 보고 싶어. 뭐 이런 것들.
하지만 내 밑천이 아직 그런 것들 뿐이라 이후부터는 주로 양인들이 묻고 내가 답한 뒤 추가 질문을 하는 형식이다. 이 둘은 한국에 대해선 아는 바가 많지 않은지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인구는 얼마니. 서울엔 몇 명이 사니. 헐 미쳤다 스위스 전체 인구가 그보다 적어. 한국도 춥니? 거기서 스키는 탈 수 있니? 한국이 스위스보다 큰가? 등등. 한국에 있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 뽀빠산에 도착. 미얀마 민간 신앙의 중요한 성지라는데, 입구는 각종 가게들이 즐비한 그야말로 도떼기 시장이다. 어제까지도 여길 올까말까 고민했던, 추천 혹은 비추인 뽀빠산. 그래도 만달레이 힐에 걸어올라가지 못한 한을 풀고 싶어 오기로 했다. 과연 바간 탐험의 반나절과 바꿀 가치가 있는 곳일까.
올라갔다가 주차장으로 집결하는 데에 한 시간 반을 준다. 그렇게 높거나 하지는 않은가 보다. 사진에서 본 대로 입구부터 원숭이들 천지. 사람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뭘 먹고 있는 애 옆을 걸어가면서 팔을 휘두르니 키야악 소리를 내며 이빨을 드러낸다. 참내 안 뺏어먹을 거거든.
올라가는 길이 더럽기 짝이 없다는 후기들을 몇 개 봤었는데, 생각보다는 깨끗하다. 중간중간 직원들이 청소를 계속 하고 있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게단을 닦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청소를 하면서 관광객들에게 깨끗하게 닦고 있는데 도네이션을 해 줄 수 있느냐고 계속 묻는다. 아 저런 것이로구나. 그래도 그냥 달라고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나? 부디 저것이 선업으로 쌓이시길.
중간중간 나타나는 원숭이들과 바깥 전망을 구경하며 올라가는데 뭔가 축축한 것을 밟았다. 본능적으로 이것은 원숭이의 오줌인가 싶었는데, 안그래도 뒤의 서양 아저씨가 자신의 가이드에게 이게 원숭이 오줌이냐고 묻는다. 가이드는 그렇다고 대답해 준다. 윽. 목소리만 들렸지만 서양 아저씨는 세상에 이런 그로스한 것이 있나 싶은 목소리로 뭐라고 했고, 가이드가 그래도 그걸 밟는 건 굿 럭이야라고 했다. 아저씨는 그럴리 없어 이건 배드 럭이야 라고 대꾸했다. 밟아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건데, 기분은 정말 별로다. 그래도 병신년 원숭이 해에 원숭이 오줌을 밟았으니. 가이드 말을 믿어봐야지.
천천히 쉬엄쉬엄 올라갔는데도 금방 정상이 나온다. 벌써 정상? 이게 다야? 싶을 만큼. 뽀빠산을 비추한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알겠다. 높은 곳이라 전망이 트여있긴 하지만 글쎄,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 바람은 시원해서 좋았지만. 어제 웨더스 스푼에서 만난 부의 친구 안토니아와 마주쳐 다시 이야기를 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스위스 여자애에게 여기 어떠냐고 물어보니, 자긴 뭔가가 좀 더 있길 기대했다고 한다. So do I 다.
다시 내려오니 마냥 기다리기도, 점심을 사먹기도 애매하게 25분 정도가 남았다. 아침에 토스트 몇 쪽 먹고 12시가 되니 상당히 배가 고픈데. 간식거리가 있나 찾아보다가 뭔가를 튀겨서 파는 것이 있길래 낼름 한 봉지 샀다. 하나는 두부인데 하나는 죽순인가? 하지만 난 신발을 튀겨줘도 맛있게 먹을 사람이니 뭐든 튀겨놓으니 맛있다. 차는 많고 나는 우리 차를 못 찾겠어서 그늘에서 간식이나 먹으며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고 있다가 도둑질을 당했다. 아까부터 내 손에 들린 것을 주시하며 내가 안 볼때마다 슬금슬금 다가오고,
내가 쳐다보면 고개를 돌려 아닌 척 눈을 피하는 것이
영락없이 날 노리는 꼴. 그게 우스워 뒤돌았다 쳐다봤다 하는 장난을 치다가 잠시 다른 방향 사진을 찍으려 방심한 사이에, 아주 전광석화처럼 비닐 봉지를 찢어 그 안에 있는 내 소중한 간식을 앗아갔다. 고노 원숭이 새끼가. 아주 날래기가 비호같고, 비닐 봉지를 잡아당기는 힘이 세서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깜짝 놀랐다. 팝콘처럼 사방팔방 날아가는 나의 튀김들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놈의 원숭이는 양팔에 한씩도 모자라 주댕이에까지 하나를 더 물고 맛있게도 먹는다. 그래 훔친 것이니 더 맛있겠지. 살면서 당한 첫 번째 소매치기를 원숭이에게 당하다니. 병신년 원숭이해에 원숭이 오줌을 밟고 원숭이에게 도둑질을 당한 것은 병신 같은 일인지, 내 뒤에 있던 가이드 말처럼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인 것인지. 그래도 재미있는 사건이긴 하다. 도둑놈 원숭이라니.
숙소에 돌아오니 2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다. 차가 30분 늦게 와서 9시 반쯤 출발한건데,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왔다. 마지막 바간 탐험을 즐길 여유가 있어 다행이다. 생각보다 개털 없었던 뽀빠산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어제 웨더 스푼에서 본 햄버거가 눈에 아른거려 오늘 점심은 미얀마식을 포기하고 햄버거를 먹어보기로 했다. 냥우까지 가기엔 뭔가 시간이 아까우니 일단 무작정 뉴바간을 돌아보기로.
여행자들은 모두 사원으로 떠나 뉴바간의 오후는 한산하고 조용하다. 이 분위기도 나쁘지 않군. 냥우는 낮에도 현지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꽤 많았는데. 물가가 비싼 것은 흠이지만, 굳이 가방을 다시 싸 가서 숙소를 옮긴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싶다. 조금 돌아다녀보니 7 sisters 라는 상당히 크고 고급져 보이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서양식을 팔 것 같은 분위기라 들어가보니 비프 버거가 5500짯. 지금까지 먹던 것의 두세배는 되는 가격에 헉했지만, 오늘은 사치를 부리기로 결심했으니 그냥 주문했다. 무려 3000짯짜리 파파야 라씨도 함께.
결론적으로 그것은 뽀빠산에 다녀온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선택이었다. 햄버거 빵 위에 케찹을 뿌려준 것 부터 불길했는데, 고기도 뭐 빵에 비해 반쪽이고 그나마도 짰고 탔다. 감자 튀김은 먹을만 하더라만, 난 원래 웬만한 튀김은 다 먹는 사람이니까. 8500원이면 버거킹에서 고급진 버거 세트를 먹을 돈이 아닌가. 아 오늘은 뭔가 선택의 결과가 다 별로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먹을 것으로 사치를 부렸는데 그것도 아쉽다. 이제 바간 투어로 달랠 수 밖에. 반나절짜리 이바이크를 빌려 마지막 바간 탐험을 떠난다.
계획했던 사원의 절반 정도 밖에 못 가봤지만, 어차피 그걸 다 갈 시간도 없고 이젠 가봤자 아는 것이 없어 다 비슷하더라는 결론. 그러니 차라리 그늘에 앉아 시간을 보낼 만한 전망 좋은 사원을 찾아가 보자 싶다. 나의 베스트인 삐아타다에 갈까 하다가, 그래도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어 찾아둔 곳 중 명상하기 좋다는 타베익 마욱과 쉐산도 파야만 가보기로 했다.
3일째가 되니 이바이크도 훨씬 익숙하게 운전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세이프 드라이버이긴 하지만, 용감하게 추월도 하고 뒤에서 빵빵거리면 멈추지 않고 여유롭게 한쪽으로 비켜주니 내가 대견하다. 상으로 저녁에 나에게 맥주를 하사해야지, 오늘도.
타베익 욱지를 찾아가는데 쭉 뻗은 길 양쪽의 가로수가 아치처럼 서로 맞닿아 있어 묘하게 동화같은 샛길이 보인다. 슬쩍 보고 지나쳤다가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핸들을 돌려 들어가 보기로 한다. 구글맵으로 현재 위치를 찍어보니 Sinbyushin complex라고 나온다. 길 끝의 사원은 꽤 높고 크다. 올라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호스카가 한 대만 멈춰있는 것을 보니, 유명하진 않지만 영 볼 것 없는 곳도 아닌 것이 분명하다.
complex라는 것이 몇 개의 사원이 모여있다는 의미 같은데, 그 중 가장 큰 놈을 골라 들어가 본다. 몇 개 사원을 다녀보니 이제 올라가는 계단이 어디쯤 있는지 알겠다. 불상 옆으로 돌아 들어가니 보이는 시커먼 구멍. 막혀 있는 것 같지만 후레쉬를 비춰 보니 계단이다. 찾았다. 흙먼지가 가득한 몹시 좁고 낮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내가 도굴꾼 같기도 하고. 계단 끝에 넓지는 않은 2층 테라스가 나오는데 전망이 나쁘지 않다. 민난뚜 지역이 원체 여행자들이 많지 않은 곳이지만, 여기도 삐아타다 만큼이나 고즈넉한 것이 마음에 든다. 2층의 좁은 통로를 따라 다른 쪽으로 돌아보니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더욱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어 굳이 또 올라가 본다. 이건 뭐 라라 크로프트나 인디아나 존스라도 된 기분이군. 몹시 좁고 불편하고 위태롭지만 나 혼자 올라서 있는 기분이 좋다. 삐아타다보다는 덜 쾌적하긴 해도 그냥 내가 찾아냈다는 것 때문에 괜시리 여기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이드 북에도 후기에서도 본 적 없는데 그냥 지나가다가 이렇게 괜찮은 곳을 발견하다니. 이게 바간을 돌아다니는 참맛이 아닌가 싶다. 내 성질상 유명한 사원들만 골라다녔으면 사람에 지쳤을 것이고, 서너 번째 사원에서 다 그게그거군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바이크 하나로 지도를 보며 여기저기 헤매고 아무도 없는 사원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드는 느낌. 바간 같은 곳이 아니면 알기 힘든 기분 아닐까.
여기서 책이나 읽고 일기나 쓰면서 일몰을 봐볼까 싶다가,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좀 더 움직여보자 싶어 잠시 바람을 맞고 서 있다가 내려왔다. 안녕 발음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를 나의 사원. 비록 잠시 머물렀지만, 좋기는 삐아타다가 더 좋긴 하다만 너는 뭔가 내 것 같아 각별하구나.
타베익 마욱은 구글맵에 뜨기는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 표시는 없다. 술라마니 근처로 되어 있어 일단 거기까지 간 뒤 지나가는 미얀마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길을 가르쳐 주신다.
5시 되기도 전인데 과연 명성답게 호스카 관광버스 바이크들이 주차장에 이미 쫙 줄지어 서 있다. 다른 외국애들은 바간에서 한국사람 많아 봤다던데 다들 어디에 계셨나 했더니 모두 여기에 있네. 동포 뿐만이 아니라 온갖 자라 사람들이 계속 몰려든다. 계단은 가파르고 외벽에 앉아서 봐야하니 뭔가 위험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날 떠밀진 않겠지. 그래도 일찍 온 보람이 있는지 4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은 계속 올라오는데 여기서 다들 어찌 볼 셈인지.
사람이 많아 분위기는 불레디가 훨씬 좋지만 쉐산도가 유명한 것에는 이유가 있는지 풍경이 더 좋기는 좋다. 불레디에서보다 사원들이 더 가까이 보여서 그런가. 사람들은 아직도 올라오고 있다. 4층도 거의 만석이 되어가는데 어디까지 찰 셈이지.
사람들은 많지만 그래도 그 틈에 낑겨서 보지 않고 나만의 자리를 잡으니 여유가 있고 좋다. 하늘이 타오르는 장관인 일몰은 아니지만 오래된 사원 아래로 해가 저무는 정적인 풍경도 나름대로 느낌이 좋다. 바간에서 보는 마지막 일몰이라 생각하니 더 그럴지도. 나쁘지 않은 마지막이다.
괜히 햄버거를 먹어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점심을 말도안되게 먹어 저녁은 숙소에서 추천한 미얀마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근데 밖에서 보니 꽤 고급진 식당 같아 망설였지만 점심에 헛돈을 쓴 것이 억울해 비싸고 좋은 것을 먹어보기로 한다. Wheel이라는 식당인데 간판에 미얀마 홈메이드 음식을 판다고 써놨다. 알마나 홈메이드인지 맛 좀 볼까. 여기서 두세끼는 거뜬히 먹을 7000짯이라는 거금을 들여 세트 메뉴를 시켰더니, 커리 두 개와 밥과 볶음면과 이란 저런 반찬을 아주 정갈하게 내온다. 우리나라에서 7000원이면 김천 돈까스 정도 아닌가. 매너 좋은 스탭 아저씨와 하나같이 맛깔나는 음식 덕분에 점심 때 일곱 자매에게 쌓인 원한이 모두 풀렸다. 맛있는걸 넣어줬더니 기분이 좋아지는 이 단순함이란.
숙소엔 호주 청년 대나스가 돌아와 있다. 신중한 말투에 깊은 눈동자를 가진 대나스는 대학을 다녀보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오랜 여행을 떠나왔다는 18살이라고 한다. 18살니라니. 한국에선 고3 나이인데. 매사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대나스는 아마 호주에서도 괴짜 소리 듣는 애늙은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 말도 안되는 영어를 주의 깊게 듣고 독려해 준 덕에 말도 안되게 양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막연히, 양인들의 나라는 우리보다 선진적이고 좀 더 그럴싸할거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힘들게 입시 공부를 해야 하는 것도, 고령화 문제(내가 이걸 알아먹다니)도 비슷하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며 여행을 한 대나스는 신중현이 자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라는 박정희의 명을 거역해 감옥에 가고, 아름다운 강산에 대한 노래를 썼다는 걸 다른 한국 애한테 들었다고 한다. 나도 몰랐는데. 내일은 아름다운 강산을 들어봐야겠다.
오늘로 바간 일정이 끝이다. 터키에서와는 다르게 많은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그 중에는 마음이 잘 맞는 사람도 있었으며, 또 나 혼자 이바이크 하나로 마음껏 돌아다녀도 봤다. 언젠가 여기에 또 오게 되면 그 때는 나의 사원에서 종일 나와 시간을 보내보리라. 아쉽지만 이번에는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