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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ow Jul 28. 2018

[여행기록] 치앙마이 한 달 살기 DAY 04

180724 화. 치앙마이

오늘 한 일 : 쿠킹 클래스, The North Gate co-op 라이브펍, Wat Lok Moli 사원



1.
망할 오늘은 심지어 6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한국 시간으로 치면 어제 3시에 자고 8시에 깬 셈인데, 참 고국의 리듬 그대로다. 습관이란 무섭죠. 생각처럼 안되요.

2.
오늘의 메인 일정은 쿠킹 클래스다.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귀찮아(사실은 미리 안해서) 트립풀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곳 중 무슨 고든 램지도 왔다 갔다는 곳이 있었는데 타 페 게이트에서 픽업이 된다고 하여, 내 숙소까지 픽업을 올 수 있다는 Basil cookery class로 골랐다.

프랑스 커플 2명, 캘리포니아 엄빠딸 3명, 한국맘 화영 누님과 7살짜리 이삭이 더하기 나까지 모두 픽업을 마치고 밍무앙 시장에서 식재료 설명으로 클래스 시작.

운전을 해서 우릴 데려온 선생님은(이름을 잊어버렸다 ㅠ) 몹시 freindly but not too much한 젊은 남자였는데, 영어가 유창하고도 편안하여 눈치를 좀 가동해서 대강 알아먹을 수 있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린커리와 레드커리의 차이라거나 쌤쌤 벗 디퍼런트인 고추나 생강들, 소스 등등에 대하여 즐겁게 설명해 주었다. 이따 나눠줄 쿡북에 다 있으니 다 외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험처럼 안심되는 말과 함께. 난 필기라도 해야하는 줄 알았는데.





6개의 카테고리마다 각 3개씩의 음식이 있었고 그 중 하나씩, 총 6개의 요리를 해 보는 코스. 팟타이를 시작으로 신 맛이 나는 치킨스프, 쏨땀, 그린 커리, 새우볶음, 망고 스티키라이스까지. 요리하고 먹으며 쉬고 요리하고 먹으며 쉬고 요리하고. 오후에는 뭔가 지쳤다. 화영 누님은 나만 힘든 줄 알았다며 이상하게 한 것 없이 힘들지 않냐고 했다. 동감. 하지만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클래스는 참 즐거웠다. 내가 기대했던 뭔가 전문적인 강습이라기보다는 여행자를 위한 체험에 좀 더 가까운 것은 아쉽지만 원래 이런 프로그램이 다 그런 것이니. 나중에는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 밥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일용할 양식까지 벌어왔으니 참으로 보람차군.





3.
화영 누님과 이삭이는 여수에서 둘이 왔다고 한다. 차에서 둘이 이야기할 때부터 애시당간에 절라돈거슬 알아브렀지. 아니 그럼 혼자 계속 애를 보아야하는 것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귀국이 일주일 남은 누님은 속사포처럼 하소연을 쏟아냈다. 힐링을 그리며 왔는데 결국 애를 보지 않을 수 없으니, 꿈꾸던 혼자만의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고, 되려 힘들어서 운 적도 있다고. 같은 콘도의 많은 한국인 가족들도 똑같은 하소연을 하더랜다. 육아를 이역만리로 옮겨온 꼴이니 오히려 더 힘들어서 중도 포기대 많다고. 측은하여 이삭이도 챙겨 주고 쉬는 시간에 그렇게 먹고 싶다던 커피도 마시러 가고 자기 사진 제대래 한 장 못 찍었다는 누님을 위해 사진도 찍어주고 했다. 나에게 닥칠 예고편일까 이것은. 육아의 책임이란 이렇게 엄중하고 희생은 무겁구나.

그래도 이삭이는 귀엽게 버르장머리 없는 꼬맹이었다. 예전 같으면 '애다!'라고 어떻게 말 붙일 줄도 모르고 떼라도 쓰면 질색을 했을텐데. 뻔뻔하게 괴이한 목소리를 내며 말을 걸고 장난을 치다니. 사촌조카들과 사랑에 빠진 뒤로는 나도 변하긴 변했다 싶은 것이 정말 실감이 난다. 애들 좋아지면 나이 먹은 것이라던데.

4.
화영 누님에게서 와로롯 시장이 옷가지와 원단이 싸다는 팁을 전수 받고 처음으로 그랩을 이용해 와로롯으로 이동, 하였으나 5시가 넘은 시간엔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근처에 도서관이 있길래 전시나 볼까 했다가 거기도 문을 닫고, 좌표로 표시해 둔 샌드위치 가게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뭐가 잘 안 풀리네.

오늘의 마지막 목표인 라이브펍 The North gate co-op 근처로 가서 저녁을 먹기 위해 기웃거리다가 비싸고 좋은 것이 먹고 싶은 기분이 들어 눈에 보이는 타이 레스토랑 Baan Landai에 들어갔다.




쿠킹 클래스 선생님이 이걸 안 먹으면 태국 북부에 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카오쏘이는 레드 커리와 코코넛 밀크에 면과 튀긴 에그 누들이 올라간 음식이라고 한다.

여기는 너무 고급 버전인 것 같은데.
한 입 떠 먹어보니 달달한 코코넛 밀크 맛이 먼자 미끈하게 들어오다가 풍부한 레드커리 맛이 이어지고 kick한 매운 맛이 마무리. 맛있는데 이거?



코코넛 밀크의 단 맛이 입에 물려갈 때쯤 치킨윙이 나타났다. 면 하나만 먹기 심심하여 시킨 것인데, 한 입 베어물자마자 바삭하게 구워진 닭껍질에서 와삭하는 소리가. 간장 소스 비슷한 것에 가볍게 절여 있었는데 이게 또 살코기가 부드럽게 넘어가게 해 주는 것 같다. 맛있는데? 물론 굽네치킨만은 못하지만 그것이 떠오를 만큼 괜찮은 맛이다.

5.
The North gate co-op



라이브 펍인데 화요일엔 정해진 사람 말고 프리 연주를 한다며 꼭 가보라고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곳. 저 기타를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아주 건건드러지는 것이 귀 뒤쪽이 간질간질하다. 금새 외국인들이 줄지어 들어와서 붐비기 시작한다. 차 지나는 소리, 기분 좋은 음악, 사람들이 좋은 기분으로 이야기하는 소리. 혼자보다는 둘이 오면 더 좋을 곳이겠다. 문득 이 음악을 들으며 무엇에 대해서든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내 사람들이 잠시 생각났다. 날씨가 여전히 가마솥이라는데 잘들 있는지요.





하지만 아직 본격 연주의 시작이 아닌건지 한 곡하고 들어가버렸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재즈도 그것대로 몹시 좋았지만, 허리도 아프고 혼자 와서 심심해지기 시작했고 동포들이 너무 많아져 음악보다 모국어가 더 귀에 꼽혀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분위기 본 것으로 만족하고 귀가하기로 한다. 무리하기 싫은 것이 이번 치앙마이의 모토라고, 방금 정했으므로. 다음 주에 또 오지 뭐.

6.
오래된 성벽의 해자를 따라 싸목싸목 집으로 걸어가는데 불 켜진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사원에 들어가 본 적이 없구나.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Wat Lok Moli 라는 이름이다. 몇 걸음 지나쳤다가 어쩐지 사람 없는 밤의 사원에 들어가 보고 싶은 기분이 들어 지나친 걸음을 되짚어 갔다.

사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대로의 자동차 소리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장벽으로 막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격리된 것 같은 기분이라니. 과연, 정신이 감각을 지배하는 것일까. 유신론자이지만 무종교인인 나이지만 부처 앞에 서 있으려니 다 비우라, 욕심 부리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것만 같다. 나는 무얼 바라고 여기에 왔을까.

최종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출근은 해야하고 나는 담임이므로 뭔 정신으로 바득바득  애들을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낸 뒤에, 오기 비슷한 마음으로 부득부득 제주도에 갔다. 그렇게 혼자 올레길을 걸으면서 다 괜찮아진 것 같다고 허세를 부린 적이 있지. 하지만 그것이 다 겉멋든 소리이고 새빨간 그짓이었다는 것이 몇 주도 안되어 드러났다. 원망하고 질투하고 버둥대고. 지금 이 기분도 얼마 안 가 그렇게 되겠지만, 이렇게 또 얼마를 지낼 수 있겠지. 바라지 말자. 바라지 말고 지금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살다 보면 뭐. 뭐든 어떻게 되겠지.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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