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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강맨 Nov 04. 2023

그녀가 잠을 못 자는 이유 03

책임감에 대하여

프로그램 제작자에게 있어 제1의 목표는 당연히 ‘시청률’이다. 그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 하지만, 시청률을 기준으로 프로그램 광고나 PPL 여부 등이 결정되고 이는 회사의 수익으로 연결되기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내 작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요즘에는 SMR 수치나 OTT 내 화제성, 유튜브 프로그램의 경우 조회수 등으로 결과를 측정하기도 한다. 여기서의 결론은 너무나 ‘정성적인’ 콘텐츠를 만들었음에도 시청률과 같은 숫자 지표로 ‘정량적인’ 성적이 나온다는 것!


마음껏 프로그램에 애정을 담았다면 그다음은 차가운 현실이다. 짜릿한 성적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지엄한 그 결과에 PD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가장 대중적이고 클래식한 척도인 ‘시청률’을 기준으로 볼 때, PD가 견뎌야 하는 ‘책임감’의 시간은 하룻밤이다. (물론 시시각각 다른 이슈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닐슨 홀딩스 한국 지사에서 방송국마다 시청률 수치를 매일 제공한다. 보통 7시 반쯤 결과가 메일로 날아 오지만 닐슨코리아에서 제작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빠를 때는 오전 6시 30분 정도에 시청률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본방이 나간 후 시청률이 나올 때까지의 밤 시간을 제작자는 어떻게 버티는가! 두둥.


이 밤이 지나면~~~

1. 낭만파: 팀원 전부가 같이 모여 맥주 한 잔을 하며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함께 울고, 웃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행복해한다. 본방을 사수한 뒤 대다수는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시청률이 나오는 아침까지 밤을 새우는 소수도 있다. 메인 PD의 경우는 결과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크기에 1회가 방송될 때 이런 ‘밤샘’을 선택한다. 술로 초조한 마음을 붙들어 매는 것이다.


2. 각개전투 (혹은 효율성 파): 각자의 집에 돌아가 따로 본방 사수를 하고, 본방이 끝나면 카톡으로 서로 고생했다며 위로한다. 각자의 집에서 취침한 뒤, 아침이 되면 시청률을 확인한다. 주니어 PD의 경우 ‘꿀잠’에 문제가 없지만 메인 PD의 경우 시청률 걱정에 잠을 뒤척일 수 있다. 자신 없는 회차일 경우 더더욱 심하다.


나의 경우에는 아직 큰 프로그램을 이끌어본 적은 없지만, 나름 이끄는 사람의 위치에서 프로그램을 바라본 적이 있다. 결과가 나오는 아침까지 꼬박 시청자 댓글 등을 확인하고 주변인들의 반응을 듣느라 편안한 밤을 보내본 적이 없다. 부끄럽지만 불안감이 너무 커서 가족을 정신 사납게 한 적도 많다. 게다가 요즘에는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출연자 리스크는 없을지, 내용에 대한 비판은 없을지 걱정해야 한다. 시청률 말고도 시대의 감성과 함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뜨겁게 노력하고 쿨하게 잊을 수 있다면


한 기업에서 프로젝트를 한다고 그 결과가 바로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평가는 받겠지만 대형 포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은 본방이 나간 각종 포털에 시청률 결과가 나온다. 때로 이 결과가 연예면 기사의 주제가 된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오면, 연예인에게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부끄럽게도 그 혹은 그녀의 걱정 어린 소리를 들어야 한다. 또한 성과를 계속해서 내지 못했을 때 고용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있다. (이건 정말 무섭다) 참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옥죄여 오는 ‘성과’에 대한 부담감이다.


신입 시절, 나는 편집을 하지 않는 메인 PD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메인은 편집을 하지 않는다. 물론, 하는 프로도 있다) 본인이 프로그램을 제일 잘 알고 기획도 가장 잘 이해하면서 왜 편집이나 만듦새 부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차가 올라가니 보인다. 메인이 되면 도저히 제정신이기 힘들다. 내부 상사들에게는 잘 보여야 하고, 연예인들의 소원수리도 챙겨야 하고, 팀원들의 갈등이나 불만도 조정해야 하고, 제작비 조달이나 홍보 문제 등을 모~두 케어하다 보면 멘탈이 나간다. 여기에 시청률 압박까지 더해지면 솔직히… 말짱하게 일하기 힘들다! 결국, 이런 압박을 견뎌내면서도 옳은 길을 제시하라고 편집에서 거리를 두게 해주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메인 PD를 맡는다는 건 단순히 기획과 연출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든든한 ‘멘탈’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게 안 되면 필자처럼 불면증이 온다든가 단시간 내에 엄청난 체중 loss가 일어날 것이다. 쓰다 보니 한 번 더 실감하는 띵언 of 띵언.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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