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음식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by 이지현


삶 여행자의 음식



인간의 자유는 학습으로 생긴 인내심으로 억제되거나, 우리 주변을 에워싼 불가피한 현실에 의해서도 억압받는다. 카잔차키스는 이 책으로 알베르 카뮈와 노벨상을 경쟁해서 결국 못 받았지만 카뮈의 사색적인 주인공인 뫼르소에 비해, 조르바는 팔팔하게 살아있는 자유인이다. 그냥 주어진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다.


조르바는 이 소설의 서술자인 ‘나’를, ‘틀려먹은 펜대 운전사’로 취급하면서 펜대만 놀리는 사람에게는 지옥이 있다고 응수한다. 101인의 명사들이 추천한 이 책은, 그 명사들이 바로 조르바가 말한 펜대 운전사들 일지 모른다. 그러기에 조르바의 자유에 충실한 감정이 낯설면서도 수용하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서술자인 ‘나’는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 갈탄 광산을 운영하려고 한다. 이때 조르바가 나타나 자신을 요리사라고 소개하며 들어 보지도 못하고 생각해 보지도 못한 수프를 만들 줄 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산투르 연주도 잘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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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야말로 소박한 요리 중에서도 기본이다. 식사에서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수프를 잘 끓이는 요리사를 두는 것은 엄청난 보석을 갖는 것과 같다.’라는 모턴 샌드의 말을 굳이 들지 않아도, 수프는 위로 음식이다. 수프는 별다른 재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전날 남은 재료나, 야채 우린 물, 적은 비용으로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레스토랑의 어원조차 18세기 파리에서 처음 수프를 팔았던 곳이라고 한다.


조르바와 함께 있으면서 ‘나’는 매일 저녁 먹는 음식이 황량한 해변에 상륙한 뱃사람들이나 먹는 스튜였지만,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고 인간의 정신을 살찌우는 훌륭한 음식이었다고 느낀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라고 말하는 조르바의 숨통 트이는 삶의 방식은 솔직히 우리 모두를 향한 물음이다. 조르바는 ‘나’를 따라 크레타 섬으로 떠나면서 먼저 자신이 인간임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때 인간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나’에게 조르바는 바로 ‘자유’라고 답한다. 익살 속에서 정문일침으로 탁 찌르는 조르바의 말이 바로 인간의 조건을 집약한 것이 아닐까.


조르바와 삶의 여행을 시작하면서 ‘나’도 서서히 조르바의 자유로움과 현재에 충실한 감정에 점염되어 간다. 조르바는 ‘나’의 헛된 이성과 공허함을 시종 비아냥거린다. 이때 등장하는 돼지 불알 요리는 우리 모두가 ‘인간’ 임을 인정하는 골계의 정점이다. 조르바는 ‘나’에게 돼지 불알 요리를 만들어 먹이면서, 마을 수탉을 모조리 거세한 것으로 만든 수프를 먹은 왕의 이야기를 곁들인다. 한의학에서 돼지 불알은 분돈증(오늘날의 공황장애와 유사), 힘줄이 오그라드는 증상, 경기와 간질 등 놀람증에 좋다고 한다. 우리의 민속 약방문에는 배가 아플 때 먹으면 좋다고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식기를 음식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은 스테미너식이란 환상 때문이다. 불알이라고 하면 매우 속되게 들리지만, 우리말에 ‘불알친구’라고 할 때는 친근한 정서마저 있을 정도로 본능적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어릴 적엔 동네 어른들은 사내아이만 보면 ‘요놈 불알 좀 보자’ 고 말을 해서 여자아이인 나는 곁에서 그 말을 들을 때면 늘 무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불알에 대한 환상은 본능적인 모든 것과 맞닿아 있던 듯하다. 지금이야 그런 말 한마디조차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 몰리겠지만.


제주도에서도 돼지 불알 죽이 향토음식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동네잔치나 동네 고사가 있을 때는 돼지를 잡는 일은 필수였다. 그런 날은 커다란 함지박에 핏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돼지의 부속물 속에 불알도 담겨 있었다. 둥그스름하고 길쭉한 형태가 매우 이질감을 주어서 들여다보면 동네 어른들은 애들이 보는 거 아니라면서 우리를 쫓아냈다. 그래도 고사상에 올라간 돼지머리는 늘 웃고 있었다. 인간의 식탐에 대한 냉소적 웃음이었던지도 모르지만 돼지의 희생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감정과 길고 질기게 끈을 대고 있었다.


수프 요리사의 자유



이 책은 먹는 것을 인간의 의미심장한 행위 중의 하나로 들고 있다. ‘나’는 그 해안에서 처음으로 먹는다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어떤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들어 주는 원료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 토로한다.


지적인 것에 우위를 두었던 ‘나’가 드디어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에 편승하는 순간이다. 또한 ‘행복이라는 건 포도주 한 잔, 밤 한 톨, 허름한 화덕과 바닷소리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인간의 행복에 대한 신뢰에도 마음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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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에게 해는 크레타 섬을 비롯해 400여 개의 섬으로 된 다도해로 고대 문명이 이루어진 지중해 지역으로 공기는 맑고 온난한 곳이다. 크레타 섬은 그리스 신화에도 인용된 미궁으로 유명한 크노소스 궁전이 있는 곳이다.


에게 해를 보면서 조르바는 ‘머릿속에서 김이 무럭무럭 날 정도로 닭고기와 필래프(쌀, 고기, 향료를 넣고 볶은 음식) 생각밖에 없다.’고 한다. 모든 건 때가 있으며, 우리 앞에 필래프가 있을 때는 필래프만 생각하고 내일 우리 앞에 갈탄 광산이 있을 때 갈탄을 생각하면 되며, 어정쩡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말한다.


그런 조르바를 보면서 ‘나’는 ‘내 인생은 낭비로구나. 걸레를 찾아내서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진짜 공부를 배울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내 감각들과 몸을 제대로 훈련시켜 인생을 즐기고 이해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는 생각하면서 조르바를 부러워한다. 지성을 찾으려는 ’나‘는 마침내 조르바야말로 진리를 발견한 사람이며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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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의 자유로운 사고를 보면서 우리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얽매여 사는지 생각해본다. 우리를 구속하는 울타리에서 비록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애초부터 자유로운 유목민이었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지금 비록 그 유전자의 꼬리가 희미해졌을지라도 우리를 속박하는 모든 것에서 한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것에 반란을 꿈꿔도 좋다. 그 반란이 푸른 바람처럼 유쾌하고 상쾌하다면.


힘들고 괴로운 일이 덮치고 또 덮칠 때, 어디든 빠져나갈 방향도 방법도 없다고 여기는 순간이 올 때,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 보자. 불행도 잠시 내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곰곰이 대면해보자. 거기서부터 희망의 실마리를 풀어나가 보면 털실로 짠 니트처럼 잘 풀리지 않을까. 크레타 섬의 미노소스 궁의 미로는 아리아드네가 던져놓은 털실 한 올로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 이제 우리의 엉킨 것들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할 수 없이 간단히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고, 친구를 만나는데 쓰자' 고, 헬렌 니어링은 <소박한 밥상>에서 말했다.


영화 속에서 앤서니 퀸 이 연기한 조르바는 갈탄 광산이 망한 순간에도 해변에서 타고 있는 양고기를 걱정한다. 해변가에서 춤을 추던 자유로운 조르바가 아직도 기억난다. 너무 멀리 우리를 벗어나 있는 것에 마음 주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 필요한 것들을 먼저 생각하자. 현재 가까이 와 있는 것들부터 다스리고 긴장해보고 헤쳐 나가 보면 내일의 일도 스르르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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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도 비로소 사랑한다고 깨닫게 된 버틀러가 떠나는 순간, 절망보다는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 하며 현재의 좌절을 넘어선다. 조르바도 내일 생각하자며 현재만 생각하자고 한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잘 보이는 현재의 삶을 먼저 재단해보면 어떤 옷을 짓게 될지 잘 떠오르지 않을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도 조르바처럼 자유로웠다. 그의 유명한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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