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가 패는 봄날의 고독

-『사슴의 노래』, 노천명, 한림사, 단기 4292년

by 이지현

시집 속으로




왼쪽부터 시집의 앞 표지와 뒤 표지, 시인의 유고 시집이자 제4시집



소장 『사슴의 노래』는 단기 4292년 1월 10일 <한림사> 발행본으로, 노천명의 유고 시집이자 제4시집이다. 시집에 실린 시는 총 42편이다.

이 시집의 특이점은 김광섭의 서문에도 있듯이, 노천명이 직접 시집 제목을 지었고, 뒤에 달린 1편 이외는 생존 시에 차례를 다 짜 놓았다. 유고시를 발견한 사람은 노천명의 조카인 최용정으로 서고를 뒤지다가 노천명의 글씨체로 된 두 뭉치의 시와 수필 노트를 발견해서 시집에 넣는다. 목차 앞에 이희승(李熙昇)의 추도시, 김광섭(金珖燮)의 서문, 모윤숙(毛允淑)의 ‘사슴의 노래를 모으면서’라는 애도글, 마지막에는 조카인 최용정의 글이 붙는다.


시인 스스로 목차를 작성했다는 점에서 어느 쪽으로든 노천명의 작의가 다분히 섞였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이 친일 문제에 얽히고, 해방 후 ‘문학가동맹’ 가입과 부역 등으로 인해 20년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과 관련이 있을까.

김광섭 서문에서 '고독을 벗어나려는 숙명은 사슴이었다.'라고 하거나, 모윤숙이 '날 때부터 외로운 여자'라고 하듯이 노천명은 고독했다. 그 고독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는 일은 시인을 조금이라도 아는 방법일 것이다.



보리를 노래하며



노천명에게 보리는 고독을 심화시키는 소재다.

시 <봄의 서곡>에서 '보리는 그 윤나는 머리를 풀어헤쳤습니다. / 꺼어먼 살구나무에 곧/올연한 분홍 베일이 씌어질까 봅니다. '라고 하거나, 시 <5월의 노래>에서 '보리는 그 윤기 나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 숲 사이 철쭉이 이제 가슴을 열었다.'라고 할 때, 보리는 시인에게는 열린 세상을 나타내는 소재다. 두 편의 시에서 만물이 시작되는 봄과 여성적 이미지로 나타낸 보리로 외부 세계는 눈부시다. 그리고 시인은 봄을 선망한다.


보리는 한 겨울의 얼음을 견디고 봄에 푸르게 자란다. 주몽이 박해를 피해 떠났을 때 생모 유화가 비둘기 목에 보리씨를 보냈다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가난과 배고픔의 상징으로도 쓰인 보리는 구휼 작물이었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민중과 가까운 작물인 '보리'가 피는 봄의 계절을 노천명이 긍정적으로 볼 때,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여 타고난 은둔형 고독자로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노천명은 황국 위문 사절단에 끼고, 1943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입사해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한다. 첫 시집을 내고 경성 호텔에서 당대의 주요 문인들을 초대해 호화로운 출판 기념식도 치렀다. 조선일보사에 입사해서 월간「女性」 지의 편집까지 맡고, 극예술연구회도 가입하여 배우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눈부신 봄날과 푸른 보리밭에 대한 선망은 개별적인 시선에서 민중과 연결이 되면서 확장된다.

시 <저버릴 수 없어>에서


오늘도

보리밭 널린 들판을 달리다

착한 사나이가 논을 갈고

지어미가 낮밥을 이고 나온 논뜰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이 땅을 저버릴 수 없어'


라고 하며 보리가 일렁이는 들판에 대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시 <6월의 목가牧歌>에서도 '산양도 사뭇 푸른 계절/질동이를 앞에 논 아주마니는 아이들에게 / 파아란 가랑잎에다 무릇을 싸서 주고' 있는 자연은 아름답다. 무릇은 우리나라 각처의 야산에서 나는 식물로. 어린잎은 먹고, 뿌리는 구충제로 쓰이는 구황식물이다. 이처럼 시인의 는에 보이는 외부의 자연은 아름답고 찬란하다.


그러나 곧 시 <6월의 언덕>에 이르면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 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라고 하며 마음은 수렴된다. 고독은 그에 비례해서 커지기 시작한다. 마치 파라솔을 착착 접듯이 그렇게 고독속으로 숨어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리밭이 있는 곳은 눈부시게 활짝 열린 세계였지만, 화자의 마음은 '파라솔'처럼 접을 수밖에 없다. 그 파라솔은 또 시 <해변>에서는


비취 파라솔들이

독버섯 모양 곱게 널린 사장에

젊은 정열들이

해당화처럼 무더기 무더기 피었다.


라고 하며 자신이 합류할 수 없는 대열을 독버섯으로 본다. 이제 고독은 스스로 불러들이면서 심화된다. 독버섯에는 다가갈 수가 없다. 스스로 방어벽을 쌓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어쩌면 한 겨울을 이기고 피는 보리를 보면서 노천명도 스스로 독하게 견디고 이겨내면서 봄날의 푸른 보리처럼 생생해지리라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때는 보리를 밟으러 가는 일이 학교 연례행사였다. 보리밭을 밟으면 그 돋아 올락말락한 보리순이 다치거나 죽을까 봐 조심했는데 선생님은 꽉꽉 밟으라고 했다. 그런데 봄이면 보리는 그렇게 밟히고도 파랗게 싹이 올랐다. 남쪽의 겨울보리는 그렇게 한 겨울을 언 땅에서 나고 봄이면 푸른 물결로 일렁였다. 그처럼 보리는 독하게 자라는 곡식이었다.

그렇지만 추운 겨울을 이긴 보리가 푸르게 피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갈 수 없을 때는 오히려 보리는 외로움과 고독을 심화시킨다. 자존심 강한 노천명은 외부 공간에 눈을 돌리면서도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는다.



레몬을 구하는 시간



열린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자기애가 강했던 노천명은 고독을 동지처럼 받아들인다.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시 <캐피탈 웨이>에서 '삿삿이 드러 내놓는 / 대낮은 고발자 / 눌러보고 싸주어 아름답게만 보아주는 / 밤은 연인'이라고 한다. 세상에 발가벗긴 채 있는 낮의 시간은 천형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람쥐처럼 옹송거리고 밤을 굽던 소년도 안보이고' '시린 손을 불며 과자봉지를 부치는 반장아저씨를 위해서/기침도 삼키고 나는 근신하여 들어서야 한다.'라고 말한다.


군밤장수 소년과 반장이면서 봉지를 붙여야 생존하는 아저씨는 그동안 노천명이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과는 다소 다른 보통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마저 신경 쓰면서 조심스럽게 출입해야 한다고 말할 때, 더욱더 고독 속으로 숨어든다.

그럴 때 시 <독백獨白>에서 처럼 '시계 소리를 듣기에도 성가신 /해초와도 같이 후줄근 해진 영혼'을 느낀다.

이제는 완전히 마음을 닫고 자신만의 고독의 세계로 침잠한다. 최용정이 노천명을 '어질고 고고한 족속, 사슴'의 모습으로 묘사하듯이 시인 스스로도 '상장같이 처량한 나'는 아는 이들이 없는 곳에서 '사슴처럼 뛰어'다니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 뛰어다니고 싶은 곳은 바로 보리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보리처럼 겨울을 이겨내고 싶었을 것이다.

'사슴'이란 고고한 이미지로 자존감을 지키려 했던 노천명은 슬픈 역사를 살아간 한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시 <추풍에 부치는 노래>에서처럼 '남이야 뭐라던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라고 한 것이 노천명의 솔직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노천명은 재생불량성 빈혈로 길거리에서 쓰러져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했다가 경제적 사정으로 퇴원하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병상에서도 글을 쓰고 있었을 정도로 자존감이 높았다.

노천명의 마지막 시 <나에게 레몬을>에서 '할머니 내게 레몬을 좀 주시지/ 없음 향취 있는 아무거고/ 곧 질식하게 생겼오'라고 하면서 영욕으로 점철된 생을 마감한다.

조지훈은 이 시집에 이르러 노천명이 참회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노천명은 죽기 전에 천주교에 귀의해서 세례를 받는다. 레몬은 부활절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사망 직전에야 노천명은 자신이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비로소 새로운 부활을 꿈꾸었을까.

노천명의 삶은 한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적 굴곡을 겪었다. 얼음의 시간을 이기고 피는 봄날 보리의 세계를 동경했지만 오히려 그곳으로 갈 수 없을 때, 차가운 현실에서 보리처럼 독한 고독을 껴안는다.

한 시대를 어떻게 뚫고 지나와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싶을 때는 바로 노천명의 시집을 읽는 때다.





노천명의 만년의 모습 사진과 시인의 묘비와 묘소 사진. 베로니카라는 세례명이 묘비에 새겨져 있다




시집의 목차



노천명의 조카 최용정 발문, 모윤숙의 '사슴의 노래를 모으며'란 회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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