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날다 Mar 05. 2024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순환이라는 세계

<오키쿠와 세계>

왜 흑백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는지(‘촬영했는지’가 아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확실하게 보여준다. 똥으로 가득 찬 재래식 변소가 클로즈업되고 누군가의 손이 국자 모양의 기구를 이용해 똥을 푸고 지게통에 옮겨 담는다.

‘저것은 똥이 아니다. 그저 똥을 흉내 낸 소품일 뿐이다’라며 꾹 참아보지만 묵직한 똥을 휘젓고 푼 똥을 쏟아부을 때 나는 질척거림의 소리는 경험을 소환하고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객석에 앉은 내게도 똥이 틜 것 같아 몸을 움츠릴 정도였으니 그 적나라한 실감을 만들어낸 음향 감독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영화는 19세기 일본 에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야스케와 츄지 그리고 오키쿠의 이야기다. 야스케와 츄지는 각 집에서 똥을 사들여 농가에 퇴비로 되팔아 먹고 산다. 그 시절 똥은 돈을 주고 사고파는 상품이었다. 쓸모를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똥을 혐오하듯, 똥으로 먹고사는 야스케와 츄지를 멸시한다.


어느 날 오키쿠의 사무라이 아버지가 결투를 벌이다 죽고 오키쿠도 목에 큰 상처를 입는다.  아버지를 잃고 세상과 소통할 목소리마저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서 일까? 오다가다 얼굴을 익히고 알게 모르게 호감을 갖게 된 츄지와 그의 동료 야스케를 이해하며 위로하고 싶어 한다. 부잣집 문지기로부터 매질을 당한 야스케에게 다가가 몸에 묻은 똥을 닦아주려 하고 일이 고되 살이 빠진 츄지를 위해 주먹밥을 만든다. 그러나 야스케는 심한 말로 오키쿠의 선의를 거절하고 츄지를 위해 정성껏 만든 주먹밥은 달리던 수레와 부딪혀 길바닥에 떨구고 만다.      


슬픈 마음을 부여잡고 츄지의 집까지 찾아간 오키쿠. 게다를 신은 맨발이 차디찬 겨울바람에 파랗게 얼어버리지만 움직일 생각이 없다. 마침내 만난 두 사람. 그러나 한 사람은 말을 못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한다. 서로 통할 방법이 없다.

츄지는 주먹으로 땅을 내려치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가슴을 친다. 있는 힘껏 내려쳐도 꺼지지 않는 단단한 땅도, 온 힘을 다해 추켜올려도 그 끝에 닿을 수 없는 높은 하늘도 오키쿠를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보다 는 못하다는 듯.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눈이 소복하게 쌓일 때까지, 츄지의 소리 없는 절규는 계속되고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끌어안는다. 똥 냄새가 가실리 없고 추위를 피할 수도 없지만 이렇게 향긋하고 이렇게 따뜻할 수가! 미소가 번지고, 방울방울 눈물이 샘솟는 순간이다.      


영화 초반 오키쿠의 사무라이 아버지는 츄지에게 “자네, ‘세계’라는 말을 아나?” 라며 선문답 같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영화는 말미에 스님의 말을 통해 “세계는 한쪽에서 출발해 결국 다른 쪽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오키쿠와 츄지는 알쏭달쏭한 가르침에 알 듯 모를 듯 갸우뚱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스님의 가르침 이전에 삶과 사랑으로 ‘세계’의 본질에 도달했다.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순환에 성심을 다하고,  말하지 못하고 읽고 쓰지 못하지만 진심으로 주고받는 소통의 순간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똥과 함께 살아가는 볼품없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가 거대하고 복잡하고 어려움으로 가득한 실체 없는 나의 '세계'에 균열을 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