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같은 롱패딩을 챙겨 입었지만 새벽바람은 여전히 찼다. 한 손은 주머니에 넣어 온기를 챙길 수 있었지만 다른 한 손은 찬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목욕통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잠 없는 할머니처럼 시린 공기를 가르며 걸어서 목욕탕에 가게 된 것은 차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뜨끈한 목욕탕에서 일주일 묵은 때와 피로를 씻어내는 일은 단 한 주도 빼먹고 싶지 않은 최고 사랑하는 루틴이다. 여행을 계획할 때도 숙소에 사우나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욕탕 상태부터 점검할 정도다.
이번 주도 평소와 다름없이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000 온천센터로 갈 예정이었는데 예상치 않게 차가 고장 나 버린 것이다. 목욕 도구를 가방에 챙겨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럴 일인가 싶어 동네 목욕탕으로 발길을 잡았다.
15~16년 전까지 다녔던 곳이다. 건물 지하라는 점도 싫고 시설이 작고 낡아 남편이 가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나는 걸어서 가기 좋고 작아서 오히려 따뜻하다며 계속 다니기를 고집했다. 얼마간 서로 다른 목욕탕을 다니다 결국 남편 따라 대형 온천센터로 옮기게 된 사연이다.
‘혹시 문 닫은 건 아닐까?’ 가는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폐업은 아니었지만 세월은 많은 것을 생경하게 만들었다. 뜬금없는 입장권 판매용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었고(아마도 코로나 영향이 아닌가 싶다) 탈의실 옷장은 아래쪽 칸을 거의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낡아 있었다. 목욕탕 내부도 기억 속 그곳보다 작고 좁았다. 서른 평이나 될까? 중앙에 배치된 두 개의 탕은 사람 5~6명이면 가득 찰 정도고 거울 달린 개인 좌석도 20여 개 남짓뿐. 이렇게 좁은 곳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복닥이며 때를 씻어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붐비지는 않았지만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부분 정기권을 끊고 이용하는 이른바 달(月) 목욕 회원들인 것 같았다. 언니, 동생 하며 서로를 부르는 끈끈한 호칭에서 ‘볼 것 다 보아서 숨길 것 없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조직의 구심력이 클수록 배타성도 따라 비례하지 않던가! 갑자기 등장한 낯선 인물은 호기심 어린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바로 나! 살짝 기분이 싸해지려는 찰나, 시야에 들어온 한 사람 때문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이제 막 세신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작업공간을 청소하고 있는, 내가 아는 바로 그녀다.
그때 나는 많이 아팠다. 육체가 아팠지만 실은 정신이 아팠을 거라 생각한다. 신혼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생활이 쉽지 않았고 결혼과 동시에 임신, 출산, 이직 등 순식간에 많은 일을 겪으며 적응하지 못했다. 되돌아가지 못하니 끌려가고는 있었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정체성을 부인하고 싶었다. 자연히 집이 편하지 않았다. 퇴근 후 편히 쉴 수 있어야 하는데 내 집이 내 집이 아닌 듯 불안했다. 결혼 초기에는 친정에서 몇 시간씩 내리 잠을 자며 쉬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마저도 어색했다. 친정도 더 이상은 내 집이 아니었다.
나에게 목욕탕은 잠시 잠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안식처였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듯 옷을 훌훌 벗고 따뜻한 탕 안에 몸도 마음도 내려놓는 순간,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좁아터진 목욕탕은 언제나 북적였고 어설프고 주뼛거리기 일쑤였던 나는 앉을자리를 잘 잡지 못했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어찌할 바 몰라 목욕탕 언저리에서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여기 자리 났다” “정원이 엄마 이리 와라!”며 언제나 챙겨주던 그녀였다.
그녀가 목욕탕에 처음 온 날을 기억한다. 세신사로 처음 일을 하게 되었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했고 스스로 돈을 벌게 되어 너무나 뿌듯하고 기쁘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은 유난한 탁성으로 “오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쉼 없이 외쳤다. 그녀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며 일하는 기쁨을 아는 그녀에게 좋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당시 그녀는 탕 입구에서 5천 원을 받고 등 세신만 했는데 결코 경험 많은 솜씨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느껴지는 정성스러운 손길에 황송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전신 세신은 경력이 오래된 선임자가 있었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당시에는 원래 친절한 사람이니 내게만 살갑게 대했을 리 없다며 그저 짧은 감사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되돌이켜 생각해 보니 세신이라는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초심자로서 초짜처럼 어설펐던 나에게 동병상련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낡게 변해버린 목욕탕과 달리 그녀의 모습은 그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별도 작업장을 가진 전신 세신사가 되었지만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명랑하고 성실한 그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리면서 대놓고 보지는 못하고 소리로, 기척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인사를 해야 하나? 알아보지 못하면 머쓱할 텐데. 설마 기억할까?’ 복잡한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출구로 나섰다.
그 순간, “오랜만이네요”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하나도 안 변했다며 이제는 대학생이 된 딸의 안부까지 묻는다. 흰 머리카락이 솟고, 주름이 늘고, 온 관절이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나이가 되었지만 목욕탕을 지켜온 그녀 덕분에 그 긴 세월이 무색해졌다.
어느새 목욕탕 밖은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