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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목 Mar 21. 2023

존중을 표현하는 소통 법칙_ 대화의비율

그 선배가 모쏠인 이유

대학교 시절, 기숙사 같은 방이었던 모태쏠로 K선배가 설레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평소 관심 있던 후배와 저녁 데이트가 성사되었다며, 전날 내내 호들갑 떨던 바로 그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그의 한껏 들뜬 표정을 본 나와 동기들은 “우와! 잘 됐나 보다!” 라며 “형! 오늘 어땠어요?”라고 물었다.

 

K선배는 “오늘 느낌 완전 좋아! 최고였어! 분위기도 진짜 좋았고, 잘 된 것 같아! 무엇보다 대화가 진짜 잘 통하더라고.”라며 어지간한 개선장군보다 더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같은 방을 쓰는 동안 이렇게 행복한 표정은 처음 봤다.

 

평소 숫기도, ‘센스'도 없어서 기숙사 안의 대화에도 잘 참여하지 못했던 K선배였기에, 우리는 정말 놀랐다. 성공적인 데이트라니! 성공적인 대화라니!


K선배의 간절한 기도를 정말 들어주셨나 싶기도 했고, 두 사람이 진짜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신앙심마저 고양되던 우리들은 데이트 상대와 함께 방을 쓰는 여자 동기에게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쪽 반응은 어때?”


그런데 웬 걸, 돌아온 메시지는 “말도 마."였다.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는 아주 작은 공간을 거리에 두고 있었는데, 역시 천국과 지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자 기숙사에서는 완전 침울한 분위기로 위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트한 당사자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역사 상 최악의 데이트였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학교는 시내까지 30분가량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다.

심지어 배차간격도 30~50분 정도로 엄청 길었기 때문에 미리 줄을 서지 않으면 최소 콩나물시루 입석, 자칫하면 다음 버스를 타야 했다.


둘은 30분 정도 일찍 만나 버스를 기다리며 대화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버스 타고 시내로 나가는 내내, K선배 혼자서만, 자신은 관심도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엄청 흥분해서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갔다는 것이다.


괜히 미안해졌다. 평소 기숙사에서는 그 주제가 나오면 나를 비롯한 남자 후배들이 잘 받아주지 않다 보니 대화의 욕구가 많이 쌓였었나 보다.


여후배가 예의 상 친 맞장구에 더 신이 나버린 선배의 입은 마치 'LA다저스 시절이 어땠나요?'에 대한 질문을 받은 박찬호 선수처럼 완전히 풀려버렸고, 그렇게 도망칠 곳도 없던 그녀는 최소 1년 치 인내력을 모두 소진하고 처량하게 기숙사로 돌아온 것이다.


모쏠이었던 K선배만 이런 상황을 겪게 될까? 그렇지는 않다.

대화는 주고받는 게 기본인데, 대부분 “주는” 것에만 집중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상황, 하게 되는 실수인 것이다.


사실 데이트 상대였던 여후배도 자기표현을 좀 더 해 줄 필요가 있었다. 관심 없는 주제에 맞장구치는 것도 좋지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주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암묵적으로 대화의 주도권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때론 나이나 경력일 수 있고, 적극성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다.


학교 선배이자 데이트 신청자로서 K선배가 더 사려 깊게 경청하며 대화 비율을 조절했다면 둘의 만남은 동상이몽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1.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한다. 듣는 걸 선호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도 때로는 말하고 싶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Q. 최근 기억나는 대화를 떠올려보고, 얼마나 말하고, 들었는지 점유 비율을 생각해 보자.

말하기 : 듣기 비율(8:2, 6:4 등)

말하기 비율이 높았던 경우, 만족스러웠나?

듣기 비율이 높았던 경우는 어떠했나?


2. 말하는 비율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주제의 쏠림이다. 관심 없는 이야기 주제가 중심이 되는 자리를 선호하기는 어렵다.


Q. 최근의 대화에서 나누었던 주제들을 떠올려 보자.

누가 꺼낸 주제가 많았나? 그 비율은?


자신이 꺼내고 주도한 주제에 대해 상대는 어떻게 반응했나?

 

나는 상대방이 꺼내고 주도한 주제가 어떻게 느껴졌나?

관심이 갔던 주제와 그렇지 않았던 주제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3. 대화 내용에 몰입하면서도 상대의 표정이나 반응을 살펴야 한다. 자신의 말하는 속도나 톤, 에너지를 스스로 체크해 볼 수 있다면 적절한 비율 조절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Q. 상대의 자세, 표정, 목소리의 크기, 속도, 톤, 동작은 어땠나?

나의 자세와 표정, 목소리의 크기와 톤, 속도는? 제스처는?

떠오르지 않는, 의식하지 못한 구간은 왜 그랬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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