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지능력 활성화를 위한 자극공간확보
살면서 받는 자극에 수많은 짐이 생긴다. 정리할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이전에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짐들로 가득 차 있으면 감당이 안 된다. 가득 찬 잔에 물을 따르면 흘러넘치듯 반응이 조절되지 못하고 곧장 튀어나오게 된다.
대화할 때 금방 흥분하여 달려드는 사람이 비좁은 자극공간의 대표적 사례다. ‘발작 버튼’이 여러 개 있는 데다가 아주 쉽게 눌리는 사람, 소위 ‘잘 긁히는’ 사람. 누군가 일부러 도발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발작 버튼 위에 언제든 누를 수 있게 손을 올려둔 경우가 많다. 바로 내 이야기다. 과거의 나는 엄청나게 좁은 자극 공간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극공간이 협소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
나는 삶에서 온 큰 심리적 상처를 쉽게 극복했던 척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와 누나를 같은 질병으로 떠나보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상황은 괜찮을 리 없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살았다. 그것이 남은 가족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사건과 감정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버렸고, 나는 모르고 살았다.
그뿐 아니었다. 자극을 외면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힘든 일이나 속상한 일, 후회스러운 일들을 외면하면서 얼른 괜찮은 척을 하며 살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회복력이 뛰어나 보이도록, 튼튼해 보이도록 행동하고 살았다.
그게 별 일이 없을 때는 괜찮았다. 아무런 영향을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삶이 늘 무난하고 괜찮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겪고, 선호하지 않는 주제를 다뤄야 하는 상황,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괜찮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럴 때면 늘 괜찮지 않았다. 나의 좁은 자극 공간은 조금이라도 큰 자극이 오면 금방 넘쳐버렸고, 조절되지 못한 반응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황을 악화시켰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발끈하는 걸까? 성격이 나쁜 걸까?”라는 자책과 자기 비하만 늘어났고, 피해의식도 점점 더 커져갔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강의 때도 집중하지 않는 교육생에게 기분 상하여, 혼내듯 강의한 적도 있었다. 회사에서도 내 의견이 조금이라도 덜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화를 내 버렸다. 그렇게 내 평가를 스스로 망치고 있었다. 당시 내 마음은 큰 불만족, 불안함에 쌓여 있었다.
집에 가니 아내가 내 방 정리를 시작했다. 이사 후 내가 수년간 쌓아둔 짐들을 모조리 꺼내서 분류하고 덜어내는 어마어마한 작업이었다. 정작 나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아내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요.”
쳐다보기도 싫었던 물건들이 거실로 나왔다. 처음에는 이걸 어쩌나 했지만 아내가 버릴 물건들과 보관할 물건들을 하나하나 분류했고, 보관용 상자에 담아 이름까지 붙이니 금방 정리가 됐다. 버릴 짐도 많았는지, 꽉 차서 들어갈 생각도 못했던 방이 훤해졌다.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진 공간 덕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같은 방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수가 넓어진 것만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자극공간이 좁은 이유도 원래 좁은 게 아니라 정리하지 않아서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조금씩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떠올리기조차 싫은 경험이 뭔지를 정리해 보았다. 싫은 만큼 큰 영향을 주는, 정리해야 하는 짐이라는 것이니까.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고, 시도하기 조차 꺼려지고 두려웠다. 그렇지만 한 번 인식한 뒤부터 조금씩 용기가 났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용기를 내자!’라는 말로 스스로를 응원했다. 그래도 지금껏 잘 살아왔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미성숙하고 거친 나지만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이 났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리해 낼 책임감을 느꼈다.
그렇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짐들은 아팠다. 가장 크게 자리 잡았던 기억은 시도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등학교 5학년에 어머니를 위암으로 떠나보낸 나는 텅 빈 집이 싫어 밖으로만 나돌았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좀도둑질, 술, 담배 등을 가까이하던 내가 심한 범죄나 가출 등의 탈선으로 향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둘째 누나 덕분이었다. 천성이 따뜻했던 누나는 언제나 자기보다 나를 더 챙겼고, 덕분에 정서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무사히 견딜 수 있었다. 나는 누나에게 의지해서 어머니 없는 어린 시절을 이겨냈다.
그러던 누나가 암에 걸렸다. 결혼식을 앞두고 한 검사 결과 어머니와 같은 위암, 그것도 말기였다.
서른 초였던 둘째 누나는 항암치료를 선택했고, 열심히 치료를 위해 힘썼다. 하지만 항암치료는 실패했다. 방사선과 종양이 그녀의 생명을 갉아먹는 동안 나는 그렇게 사랑했던 누나와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말할 에너지조차 아껴주고 싶다는 핑계로, 작은 기운조차 회복을 위해서 쓰이길 바란다는 핑계로 나는 누나를 자주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병세가 악화되었고, 어느새 그녀는 많이 약해져서 간단한 대화조차 쉽지 않은 상태가 됐다.
짓누르는 통증을 모르핀으로 견디며 그녀는 언어를 잃어 갔다. 내가 건네는 말들이 그녀에게 전해지는지 알 수 조차 없었다.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했지만 너무 많이 늦었다.
그렇게 누나를 보냈다.
그 기억을 되새기니 후회가 심장을 짓눌렀다. 미뤄뒀던 순간의 감정들이 그대로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특히 후회가 됐다.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난 왜 그랬을까. 자책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괜히 시작한 일이라는 후회가 드는 순간, 내가 너무 과거에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인 자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해적 사고의 이름은 반추였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를 바탕으로 Who와 Why에 집착한 것이다.
나는 반추를 멈추기로 했다. 내 첫 의도처럼 정리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성찰하기로 했다. 성찰은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 교훈과 개선점을 발견하고 미래로 연결하는 것이다. 긍정적 재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What, How에 집중하기로 했다.
누나의 일로 바뀐 내 모습에 집중했다.
언제든 무슨 일이 누구에게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순간에 더 집중하며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다. 그 이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더 솔직히, 자주 표현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훌륭한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아들에게도 사랑을 늘 표현하는 아빠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누나와의 시간으로 깨달은 것을 알리기 위해 강의라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덕에 형제 같은 소중한 동료들도 만나게 되었다.
완전한 재해석이 이뤄지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 잦은 반복적 노력이 필요했지만 처음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이를 기점으로 다른 수많은 짐들도 정리하고 비워내기 시작했다. 조금씩이었지만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도 몇몇 자극들은 순간적인 반응이 되기도 하지만 분명히 달라졌다. 이전의 나보다 훨씬 더 성숙해진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 단서를 찾아서 선정하라 : 실패경험.
떠올리기도 싫은 경험이 있는가? 속상했던 대화가 있는가? 떠올리기 싫고 속상하다는 것이 정리해야 할 짐이라는 걸 말해준다. 꺼려지는 일을 찾아 도전하자.
2. 마음의 준비 :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서 책임감을 갖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모든 정리는 제대로 마주할 때 시작할 수 있다. 미뤄놓은 이유는 과거에서 겪은 상처나 아픔이 현재도 영향을 미칠 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리하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는 없다. 지나간 일을 진짜로 지나 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번은 마주할 필요가 있다. 과거가 아닌 지금의 나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스스로를 믿고 응원하자. 버텨냈고,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반드시 책임감을 가지고 정리해야 한다.
3.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 반추
우울증의 대표적인 사고가 반추(umination)다. 반추는 과거 몰입이다. 선택에 대한 후회가 주를 이루는 것이 반추다. 반추를 하면 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깊어지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다시 떠올라서 괴롭기만 하다. 반추는 Who와 Why에 집착한다. 지나간 일일 뿐이다. 후회하지 말자.
4. 필요한 자세 : 성찰
성찰은 미래 지향적이다. 과거의 사건과 그로 인한 감정 모두 긍정적 재해석을 위해 사용한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끼친 긍정적인 효과를 발견하고, 미래에 활용할 수 있는 교훈을 찾는 것이다. 성찰은 What, How에 집중한다.
* 성찰하면 자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다. 후회의 원인을 알게 되면서 자기 이해가 깊어진다. 현재에 끼친 긍정적 효과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가고, 교훈의 방향을 통해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를 구체화할 수 있다.
Tip: 상담가가 되어 자신을 상담해 주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타자화’는 과거의 사건, 경험, 감정이 현재에 끼친 긍정적 효과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충분한 공간 확보를 위해 소개한 ‘1. 실패 경험 떠올리기, 2. 직시하고 인정하기, 3. 재해석하기’의 과정을 통한다면 어지간한 자극이 발생해도 순간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여유 있게 대처하는 성공 경험이 쌓이는 것이 대화의 내공, 힘이 되어 스스로를 지켜주게 된다. 그러니 부디, 용기를 내어 과거의 아픈 실패를 마주하고, 해석해 내길 바란다. 고통을 고통으로 두지 말고 스스로를 위한 약으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