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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Sep 23. 2024

[불안의 씨앗] 낮과 밤의 발아


개인의 불안에 대해 생각하며 낮과 밤의 불안이 다름을 깨달았다.


 낮의 불안은 유능, 정체, 안정이다.


 우리는 유능해야 한다고 배웠다. 유능은 조직의 합류, 입지, 그리고 효용성이 가능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안정을 획득한다. 직장,노후,자산이 나름의 고충이 있으나 서서히 형태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정체는 허락되지 않는다. 유능은 시간에 깎여나가기에 잠시 날카로웠을 뿐이다. 함께 일했던 유능한 동료들은 멀리서도 성장하며 압박을 전한다.


그리고 이 고난을 버텨낸 끝에는 유능한 CEO, 경영자가 있다.  유능하지 못한 스스로에 평일 낮의 불안이 찾아온다. 하지만 내 기준에는 성공한 경영자가 있을 뿐이다. 스스로를 대입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밤의 불안은 의미, 표현, 고립이다.


주말의 밤, 또다른 불안이 밀려온다. 일상이 의미 없는 것들로 채워질까 두렵다. 조금 나은 사회가 아닌 나만을 위해 살아갈까 두렵다. 그러함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순응 할까 두렵다.


이 두려움을 걷어낸 이들의 한쪽에는 작가가 있다. 그것은 직업보다는 삶의 태도다. 살아가는 내내 날것의 내면과 사회속의 의미를 찾아 언어화, 시각화, 공간화 하는 활동을 채울 수 있다. 현실의 고민마저 작품의 재료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불안의 윤곽이 보인다.

타인의 욕망이라면 불안의 씨앗에서 솎아낼 계획이다.


살펴보니 낮과 밤의 불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체'와 '시간' 그리고 '시야'다.


정체는 오늘의 시간속에서 새로운 것을 익혔는지 묻는다.

시간은 가능한 것의 가짓수를 제한한다.

정체와 시간의 역설적 관계에서 불안은 자라난다.


걸음의 멈춤은 나쁜것이라고 한다.

시간의 남용은 나쁜것이라고 힌다.


버텨낸 불안위에 들어올린 발뒤꿈치 만큼 높아진 '시야'를 획득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야'는 과거의 성과를 가볍게 내동댕이 친다.

과거를 칭찬하기에는 그 노력이 너무 작은 일이었음을 전한다.


 요즘 많은 매체는 무한한 굴레속의 불안을 포기할것을 제안한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의 삶을 살라고 한다. 정체와 시간의 압박을 내려놓고 온전한 삶을 살펴보라 한다.


그렇게 멈춰서면 다른 방향으로 시야는 차츰 넓어진다.

그제서야 옆에서 바라본 현실이 보인다. 빈틈없이 결합된 격자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에도 불안을 피해 숨쉴 공간은 없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불안을 마주하는 자세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담아내고 표현하고 남겨내는 과정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무한한 굴레를 온전히 그려내면, 삶의 불안은 의미를 낳는다. 첫번째 밤의 불안이 소거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매일 반복한다는 것은 순응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두번째 밤의 불안이 소거된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어제의 차분함 뒤로 새로운 불안이 시야에 들어온다.


반갑게 맞이하고 비켜서 담아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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