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징검다리 휴일을 맞아 연차를 쓰고 긴 휴가를 가졌다. 구매목록에 있던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사서 읽게 되었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소설 속 주인공과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단순한 광경에 스며든 감정을 함께 느낀다.
내 일상에는 마음속의 따뜻함, 일상의 낯섦, 양심의 무게는 여러 순간에서 매일 나타난다. 금요일밤 퇴근 하는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늦은 밤 버스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소설에서는 펄롱이 느끼는 감각적, 감정적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타난다. 순간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연상되는 물건을 떠올리고, 공간을 능동적으로 채우는 빛을 본다.
- 잠시 멈춰서 생각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떠돌게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 사람들은 수녀원이 자아내는 모습이 그림 같다고, 마치 크리스마스카드 같다고 말했다.
- 트럭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에 마치 자기 자신을 만나러 가는듯한 기분이었다.
- 높은 창에서 흘러나온 빛이 닿은 자리에는 서리가 반짝였다.
- 방이 사방에서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죄책감을 느낀다.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도 너그러움으로 타인을 대하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사회적 기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음에 마음이 늘 무겁다.
그 무거움이 말로써만 머물기에 죄책감은 더욱 커진다. 작게나마 누군가에 도움은 준 날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에 든다.
소설 속의 펄롱은 동일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 펄롱은 불안한 걸음을 계속 옮겼다. .... 자기가 거절했던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받았던 친절을 기억하고 있다.
-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 극복한다.
-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굳게 믿었다.
결국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현실을 짊어맨 펄롱에게까지는 동질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펄롱처럼 일부러 조금 더 순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평생 매어야 할 고개를 지나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