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그럽지 않다. 다른사람에게 관대함을 스스로에게 배려를 주지 못한다. 움츠러 지키기에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고 만다.
최근 회사를 새롭게 옮겼다.
여기는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다.
비교적 긴 직장생활을 해왔기에 젊은 동료들도 섞여 있고, 그들의 성장 또한 보인다.
응원해야지. 그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가끔씩 짜증이 밀려온다.
회사 안에 이미 얽힌 업무의 끈은 잡아 쟁일 수 없고 새롭게 엮어낸 일은 어느 새 누군가의 몫으로 넘어간다.
마음이 급해진다. 손을 놓고 있기에는 위급한 일.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위험에 처한다.
위험, 혹시 내 피해의식은 아닐까.
타인이 내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은 온당한가? 나를 약자로 정의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타인의 선의를 의심하고, 스스로를 연민하고, 뒤쳐짐을 타인에게 돌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는 생각에 멈칫한다. 문득, 메모해둔 기록이 떠오른다. 내 안에 피해의식이 있음을 기록한 그 말.
나는 어서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이만한 위험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담대하게 다른 사람이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작은것도 증명하려 하고 서투름에 쫓기고 만다. 원숙해진 이들처럼 느긋하게 하나씩, 하지만 확실하게 쌓아가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누군가의 보탬으로 역할을 옮겨가는 자세도 아직 가꾸지 못했다.
스스로에게는 너그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 왔다.
퇴근 길 지하철에서 곱씹어보는 나는 어제의 나와 같다. 너그러워지기에는 하루 사이 쌓아둔 것이 없다. 이타적으로 변한다 해도 내 원숙함은 게으름으로, 보탬은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될 것이다. 그저 한 켠에서 작은 일을 하는 것이 내 몫을 해내는 일일 것이다.
타인에게 부족했던 너그러움은 이제 개인의 질타로 이어진다.
오후 내내 사무실에서, 퇴근 후 거실에서 머릿 속 자신을 몰아붙인다. 막다른 끝, 공간 속에서 나에 닿는다. 존재감을 확인한다. 이제 실격한 인물로의 서사를 입혀 주인공으로 걸어둔다. 또 반복되었음을 깨달으며 화는 가라앉아 사라진다.
다시 현실을 마주한다.
짜증과 일그럼짐의 일련의 과정 뒤 평온이 찾아온다. 이제는 타인의 의도와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오해는 걷어두고 지금의 일만 마주한다. 시간으로는 10분여의 과정. 피해의식을 넘고, 자기연민을 걷어내는 연습으로 두 굴곡에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그 시간이 길다.
여전히 너그럽지 않다.
변한것은 없다. 세상도, 사람도, 관계도 놓여졌던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다. 섣부른 배려에 잃고 뭉개어질 위험은 같다. 그 사이 적당한 너그러움의 정도를 가늠하고 주고 받을 것을 생각해본다. 스스로에게 게으름이 너그러움과 같음을 일러주는 중이다.
어서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타인과 나를 담담히 배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