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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수첩 Mar 02. 2016

피하고 싶은 문학은
나의 운명이었다

'감수성의 혁명' <무진기행>김승옥 작가와의 만남1

애초에 그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순천, 그리고 순천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순천과 인연이 있는 작가와 인물들에게 직접 그들의 작품과 순천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 시작은 바로 김승옥 작가다. 제1회 이상문학상, 제10회 동인문학상 수상. 감각적인 문체와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글쓰기로 그는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와 함께 60년대 문학계를 풍미했다.    


그가 나를 만나줄까. 당신을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글을 써서 막상 보내려고 하니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띈다. 너무 감정에 호소하는 것 같았고 군더더기 표현도 많아 보였다. 그날 밤새 글을 고쳐서 아침에 다시 봤는데도 엉망이다. 결국 이메일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온 그의 답장. 내가 혹시 잘 못 본 건 아니겠지.

    

‘좋아요’  

  

그를 만나기로 한 날 아침. 거울 속에 나는 결혼식 때나 입고 다닐만한 검은 정장 차림으로 어색하게 서있었다. 재킷을 다시 옷장 속에 넣고, 많지 않은 옷 중에서도 한참 이것저것 고르다 결국에는 평소에 자주 입는 니트를 꺼내 입고 약속 장소인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로에서 만난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은 희끗한 머리카락, 어두운 색 외투에 모자를 썼지만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김승옥 작가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옅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평소 자주 다닌다는 카페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면서 그에게 물었다. 

   

“이 곳이 선생님이 다녔던 서울대학교 문리대 자리였죠?”    


그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서 뭔가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그제야 그가 2003년 찾아온 뇌졸중으로 인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빈 수첩은 어느새 1960년대 서울대학교 문리대 캠퍼스의 건물들로 하나씩 채워졌다. 당시 도서관의 위치와 건물들의 모양이 꼼꼼하게 그려졌음은 물론이다.   

  

이른 시간이라 단골 카페는 문을 닫았고 근처에 있는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1년 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궁금한 점이 많았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의 이런저런 기능을 물어왔다. 컴퓨터로 원고 작업을 하고 휴대전화로 사진도 자주 찍는다고 했다.    


예전에 참여했던 드라마에 ‘해태’라는 순천 출신 인물이 나오는데, ‘순천엔 소설 <무진기행>의 순천고 9회 김승옥도 있다’라는 대사를 쓴 적이 있다고 하니, ‘허허’ 웃는다. 그리고 나 또한 순천 출신으로 그의 고등학교 후배라고 덧붙였더니,

    

‘52회 - 9회’ 

    

라고 종이에 쓰며 또 ‘허허’ 웃는다. 두 번째 웃음은 앞의 웃음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43년 터울이 있는 까마득한 후배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에 묘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동시는 물론, 콩트와 수필 쓰기에 소질을 보였던 소년 김승옥은 월간 ‘소년세계’와 학교 교지에 글을 싣는다. 순천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맡으며 문학의 밤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김승옥 작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지어줬다는 ‘김학길’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서점 풍경>을 발표한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김승옥 작가를 비롯해 최인호, 황석영, 이청준 등이 청소년 시절에 쓴 글 모음집인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를 내보이며 <서점 풍경>이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그는 반가운 얼굴로 표지에 실린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더니, 맨 처음에 실린 자신의 소설을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천의 김아무개 사진사가 찍어줬다는 표지 사진을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았다. 그리고서는 소설 제목을 가리키며 멋쩍은 듯,  

  

“처음! 처음!”   


미소를 지으며 연신 대답했다. 열아홉에 썼던 글을 일흔이 넘는 지금에서 마주하니 반갑기도 쑥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나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는 대답으로 노트 한 장을 빼곡하게 채운다. 연도를 먼저 적고 이후에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나갔는데, 몇몇 사건은 그 날짜까지 기억할 만큼 자세했다. 안경을 고쳐 쓰고 써 내려가는 펜의 움직임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알지 못할 긴장감까지 느껴졌다.

   

빼곡히 적은 노트를 자세히 보면, ‘1945년’ 뒤에 ‘8.15 해방’, ‘1948년’에 뒤에는 ‘여순사건 10월’이라고 적혀있다. 뿐만 아니라 ‘6.25 전쟁’과 ‘4.19 혁명’ 등 본인이 직접 겪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함께 표시해 놓았다. 그렇다. 김승옥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동시에 그 시대를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대로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1960년 4월 19일, 당시 대학 1학년생이었던 김승옥은 그 뜨거웠던 현장의 한가운데 섰다. 그에게 4.19 혁명은 처절한 경험을 통해 인생을 바꾼 그 자체였다. 그래서 김승옥은 그 날을 ‘정직한 이들의 날’이라고 불렀고 자연스럽게 글쓰기의 원천이 되었다.

   

반대로 5.18은 그의 글쓰기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1980년, 동아일보에 장편 소설 <먼지의 방> 연재를 시작했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군부대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소설 내용이 군 검열에서 몇 줄씩 잘려 나갔음은 물론이고, 젊은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더 이상 할 수 없어 연재 15회 만에 소설을 중단해 버린다.   

  

1960년 스무 살이 되던 해, 김승옥 작가는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한다. 그가 <생명연습>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환상수첩>, <건> 등을 발표한 시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로 ‘산문시대’가 있었다. ‘산문시대’는 1962년 6월, 김승옥, 김현, 최하림에 의해서 창간호가 나왔고, 1964년 9월까지 3년에 걸쳐 5호를 내고 없어진 문학 동인지다.  

   

김승옥은 산문집을 통해 ‘산문시대가 결과적으로 거기에 참가했던 우리 몇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뜻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산문시대의 이야기를 하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승옥, 서정인, 이청준, 김치수 등 많은 문인들을 배출한 ‘산문시대’는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다.   


 

'문학과 지성' 창사 1주년 기념식 모임 (왼쪽에서 세번째 김승옥, 네번째 최인호) / 중앙포토


카페 창밖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대학로가 예전과 많이 바뀌었죠? 사람은 많아지고, 건물은 높아지지 않았나요?”    


그는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는 듯 얼른 테이블 위에 있던 휴지를 집어 들어 그리기를 시작했다. 아까 지나왔던 마로니에 공원 옆에 커다란 공터를 그리고 ‘축구’라고 쓴 다음 동그라미 속에 넣었다. 높은 건물과 많은 사람들로 빽빽한 이곳이 예전에는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놀았던 넓은 운동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는 ‘냇물’이라고 표시했다.    


“지금은 술을 잘 안 드시지만, 학생 때는 많이 드셨죠?”

“허허허!”   

 

환한 얼굴로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냇물을 손가락으로 여러 번 가리키며 옛날 생각이 난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더 말을 잇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산문시대’를 비롯해서 수많은 청춘들이 냇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고민과 걱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문학과 삶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했던 스물두 살의 청년 김승옥은 <생명연습>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전한다.    

 

“몹시 기뻤다. 그리고 몹시 불안했다. 어쩐지 자꾸 피하고만 싶었던 문학이란 놈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어쩐지 운명을 만난 느낌이었고 그러기에 뿌리치고 싶으면서도, 막막했던 나의 미래가 그 안개를 살짝 열고 비교적 뚜렷이 보이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에는 어떤 안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책 (<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 / 본문 일부)   

 

기쁘기도, 불안하기도 했으며, 어쩐지 자꾸만 피하고 싶었지만 문학은 그에게 ‘운명’이었다.   


* [순천, 그리고 순천사람들 1] ‘감수성의 혁명’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와의 만남2에서 계속됩니다. 그에게 직접 듣는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에 대한 작품 설명과 순천문학관 생활, 앞으로의 계획 등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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