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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브 Dec 06. 2021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학적인 명령과 통제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가 존재했을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위협이 눈앞에서 핏빛으로 그려지고, 극심한 영양결핍과 수면부족으로 인한 기아와 고통 속에서 강제노역이 무자비하게 자행되었던 세계가 있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생지옥, 그곳의 이름은 아우슈비츠 나치의 강제 수용소.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통해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경험한 참혹했던 3년 간의 날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성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실제로 아우슈비츠에서는 피가 마르는 굶주림 속에서도 병자를 위해 빵 한 조각을 남겨두는 성자와 같은 이들이 있었다. 반면 인간의 폭력성이 극단으로 치우쳐져 마침내 인간의 얼굴을 한 짐승으로 변해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카포라는 지배 권력이 주어지자 감시병보다 잔인해졌다. 그러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인간을 성자와 짐승으로 구분 짓고 있지는 않다. 그의 글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승리의 역사에 대한 한 증인의 수기로 볼 수 있다.


혹자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아닌가. 이때 상황이라는 것은 세상이 인간에게만 내린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와 그것에 따른 시련을 의미한다. 만약 인간이 동물적인 본능대로만 행동한다면 삶의 의미와 시련은 있을 수 없다.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던가. 프랭클은 자유의지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하게 짓밟혀지는 강제수용소라는 시련에 맞서 견뎌낼 수 있었다. 그는 발에 종기가 터진 채로 진행된 행진 가운데, 모진 감시병의 채찍질 속에서, 절친한 동료의 죽음을 맞이하는 등의 상상 이상의 고통 속에서도 자유의지를 통해 자신만의 사유를 이어나갔다. 그는 “비극 속에서도 낙관적이었고 현실적”이었다. 반면 어떤 이들은 너무나 긍정적이어서 또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스스로 운명을 재촉하기도 한다. 한 긍정적인 수감자는 꿈속에서의 계시를 믿고 3월 30일이 되면 전쟁이 끝나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 해맑게 믿었다. 그러나 3월 30일이 되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자 그는 3월 31일, 안타깝게도 정신착란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비관적인 수감자는 삶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외부환경에 귀를 닫고 자기만의 세계 또는 공허에 빠져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소문의 가면이 무엇이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했다. 프랭클은 발진티푸스가 아우슈비츠를 휩쓸었을 때 유대인 정신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의술을 펼쳤다. 또한 허황된 소문에 흔들려 감정이 격앙된 동료들에게 당시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그는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물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매진한 것이다.


해방을 맞은 포로들에게 삶이 던지는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악몽 이후에 다가오는 구토감과 같은 후유증의 짐을 지고 사회 속에서 자신을 재정립해야 했다. 아우슈비츠라는 실재했던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심연으로 몸을 던진 자도 있었다. 어쩌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평생에 걸쳐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삶이 계속되는 한 물음과 시련은 끊임없이 던져지는 것이 아닐까? 알베르 카뮈의 글을 생각한다.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이 통째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혼은 일생에 걸쳐서 이승에서 창조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다는 것은 그 길고도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출산의 과정에 불과하다. 우리 자신과 고통에 의해 창조된 영혼이 드디어 준비되면 바야흐로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작가수첩 2』, 1949년) 인생길은 무심히 놓여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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