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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르바 Jun 29. 2016

독립선언문 #6. 바퀴벌레

1988 자취생활기록지

집에 바퀴벌레가 등장했다. 


집에서 바퀴벌레가 나타날 수 있다는 상상은 해본적이 없었다. 내 방은 완벽하다고 자부하던 공간이었다. 바퀴가 등장하기 전까지. 바퀴의 등장으로 집은 공포로 가득해졌다. 바퀴벌레로 인한 긴장감이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순간은 퇴근 후 불꺼진 방안에 들어설 때다. 불을 킬 때 내 시야를 피해 도망가거나, 혹은 미처 도망가지 못한 녀석이 내 눈에 뜨인다는 생각을 하면 불안감이 마구 솟구친다. 


어젯밤 한 놈이 나타나 내 방 화장실 문 앞 바닥에 멈춰서있었다. 며칠만이다. 미처 나의 눈길을 피하지 못해 도망가지 못한 듯 했다. 제법 덩치가 있는 놈이었다. "너 정도면 꽤 좋은 생존본능을 지녀왔을텐데 오늘은 무슨 일로 방심했느냐"라고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조심스럽게 신발장에 넣어놓은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꺼냈다. 눈에 뜨인 이상 그냥 순순히 보내줄 수는 없었다. 다른 바퀴들에게도 내가 이곳 주인이라고 전달할 확실한 경고가 필요했다. 근래 만난 몇놈의 바퀴 덕분인지 처음에는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안했었던 게 이제는 한 대 쥐어박는 일까지는 익숙하다.  


양손에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나란히 든 채로 한 발 한 발 천천히 다가갔다. 그놈은 나의 움직임을 느꼈는 지 움직이려던 일을 다시 멈추고 가만히 서있었다. 죽은 척을 하려던건지 아니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했는 지는 모르겠다.  어쨌는 나는 빗자루 스윙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으니 그만하면 된 거였다. 빡하고 한 대 후려쳤다. 녀석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어찌나 질긴 놈들인지 한 대 맞아서 즉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미 전투가 불가능해져버린 놈이기에 자비를 베풀었다. 다시 짓이긴 모습을 보기도 싫거니와 단순히 내 영역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내쳐진 그들에게도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바둥거리는 놈을 쓰레받이의 고이 쓸어담아 변기에 넣었다.


보통은 바로 물을 내리곤 했는데, 어제는 문득 물에서 얼마나 살아있을 수 있나?하는 궁금증이 생겨 잠시 두었다. 한 5분을 그렇게 보았다. 그리고선 혀를 내두르며 물을 내렸다. 결론은 5시간 그대로 두었어도 살았을 것이다. 오히려 점점 더 원기를 회복하는 것 같아 놀라기까지 했다. 그놈도 "놀랐지 새끼야?"라면서 먼저 보냈던 놈들과 무용담을 펼치며 너스레를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퀴는 방사능에서도 살아남는 생존력을 지녔다. 백악기에도 살았다는 생물이다. 적응력으로 따지면 인간이 비할바가 아니다. 게다가 얼마나 똑똑한가. 시대에 맞게 진화할 결과로 고생 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 개고생하여 마련한 집에 입주하면 된다. 인간들이 천적이라할만한 애들도 다 내쫓아서 인간 눈치만 살살봐주면 이보다 더 좋은 시대도 없을거다. 그러니 고깟 바퀴메이트 몇 개 설치해두고 그들이 찾지 않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일 뿐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바퀴벌레 박멸했다는 글이 쏟아졌다. 민간요법으로 보이는 개인 비법부터 약물치료까지 다양하다.


나는 글을 통해 박멸할 방법을 살펴보고 있지만 한편으론 그들과의 공존도 고려중이다. 고려하게 된 가장 중헌 이유는 공포가 내가 만들어 낸 상상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질병을 옮겨다니는 해충이라는 얘기는 아직 내가 겪지 못한 부분이라 말할 수 없지만, 내가 느낀 공포만큼은 100%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상상이다. 바퀴벌레가 나를 향해 날아드는 상상, 혹여 내가 자는 동안 내 신체를 기어오르는 상상, 그리고 어릴 적에 보았던 영화 '미라'에서 바퀴처럼 보이는 생명체가 떼를 지어 악당을 공격하던 모습에서 받았던 충격 등 전부 미디어를 통해 얻은 기억이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 중 대부분은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야기로 인해 만들어진다. 미디어가 말하는 바퀴는 인간의 영역에 침범했기에 마녀사냥을 당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그래서인지 측은한 마음도 한편으론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바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나보다 강해보이는 자의 눈치를 봐야하고, 사회가 만들어 낸 구조속에서 기생하며 살아가야 한다. 등장만으로도 다른 생명체들에게 경계를 품게하는 것도 보면 바퀴와 다를 바 없다.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과 함께 지내온 바퀴가 죽은 후 장례식을 치뤄줬단다. 사람들이 함께 추모하며 기념선물이나 꽃을 올려두었고, 약 1주일 뒤 화염식으로 장례를 치러준 사진이 게제됐다. 나는 바퀴벌레에게 마저도 그런 유머와 여유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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