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걸음
남편과 <범죄도시 2>를 보고 나서 나란히 집으로 걸어오는 길. 어린아이들이 만화 영화를 보고 따라 하듯 우리는 누아르 물을 보고 나서 찌르고(?) 때리는 장난을 치며 감상을 나눈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담담하게 나눈 이야기.
1/
“누가 퇴사하고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물으면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나는 웃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아. 특히 처음 본 사람들한테 말이야. 친절하고 싶지도 않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척 들어주는 것도 끔찍해. 서로 무례하지만 않게, 필요한 것만 얻게 딱 거기까지만 하고 싶은데 내 의사와 에너지에 상관없이 연기해야 하는 게 지옥 같았어.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되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서 그 사람들에게만 웃고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
2/
“오빠가 박애주의자였다면 싫었을 거야.”
<나의 해방 일지>에서 극 중 구자경이 말하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난 사람이 너무 싫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어’라고 하는데 그 말에 정말 공감했어. 이런 내가 어떻게 공항 서비스직에서 6년을 했는지 모르겠다니까. 이렇게 사람 안 좋아하고 붐비는 곳에 가면 예민해지는데, 반면에 늘 옆에서 남편이 ‘저 아기 예쁘다’ ‘저 사람들 행복해 보인다’ ‘너무 보기 좋다’ 이렇게 다 아름답게 바라보면 힘들 것 같아.
“…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3/
남편은 이 동네를 좋아하지 않는다. 휴일 전날 밤인 오늘 대형 나이트 앞 술 취한 사람들을 보면서 “어휴 씨 이 동네 빨리 떠야지.” 한다. 1년 반이 넘었지만 정을 좀체 주지 않는다. 반면 나는 완벽 적응해서 시간 날 때마다 동네 여기저기 다니며 새롭게 찾은 곳을 쫑알쫑알 알려주곤 한다. 남편과 밤 산책을 하다가 도대체 이런 샛길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감탄한다.
“가끔 우리 와이프는 왜 이런 동네에 벌써 자리 잡은 걸까 안쓰러울 때가 있어. 어차피 이 동네는 집 팔아서 더 깨끗한 신도시로 갈 발판밖에 안되는데 왜 저렇게 정을 붙이고, 집을 고치려 하고 할까. 고마우면서도 난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그래.”
“그러게 배짱이 커야 하는데. 난 늘 작은 것에 만족하는 소인배 스타일이라 늘 오빠한테 미안해. 그래야 오빠랑 으쌰 으쌰 하면서 욕심내야지 우리도 더 큰 걸 가질 수 있을 텐데.”
“미안할게 뭐 있어. 세상은 물질이나 부가 다 가 아니야. 그냥 … 가끔 마음이 좀 그럴 때가 있는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