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거름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솨니 Jul 03. 2022

쉬는데 마음 편할 리가 없잖아요.

 며칠 간의 장마가 지나고 태풍 오기 전 이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강한 해가 든다. 오랜만에 걷다가 자주 찾는 집 앞 공원 평상에 앉아있었다.


“아이고~ 현우야 멀리 가면 안돼. 할미가 보이는데서만 타야지. 아이고! 현지야 넘어질라~ 반바지 입어서 상처 나면 안된다잉! 어이! 일로와! 오빠 따라가면 안돼! 내리막길은 아직 넌 못가! 이제 와서 좀 쉬어라. 아가! 잔디에 개미 많다! 너 물린다! 에에! 그거 더러운거여!”


 조용히 멍하니 앉아있던 내 귓전을 울려 때린다. 옆에 앉은 할머니는 앞 공터에서 킥보드를 타며 쌩쌩 돌아다니는 두 손녀 손자를 계속 번갈아 눈으로 좇으며 소리치신다. 그녀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가뜩이나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장마까지 와버리니 날씨까지 맞춰줬다. 중간 멈춤 해놓았던 포토샵 일러스트 온라인 강의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학원을 비교하며 알아본다. 일정과 내용이 겹치지만 않으면 SNS 협찬이나 광고 제안을 다 받고 있어 제품별로 콘셉트를 고민한다. 다음 주까지 15장의 편집본 사진과 원고를 보내야 하고… 그럼 휴식 시간에는 뭘 하며 보낼까.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서 동네를 걸을 때면 [거름 일기] 시리즈에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고민하며 메모장을 끄적인다. 예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데일 카네기 자기 관리론>과 <최선의 고통> 두 권을 리디 셀렉트에 저장해놓고 번갈아 보고 있다. 한동안 사놓고 하지 않았던 ‘닌텐도 슈퍼마리오 오디세이’는 자기 전에만 조금씩 해야지 싶어 텔레비전에 연결해 준비해놓았다.







“요즘 불안하구나~?”



 하루는 퇴근하고  남편에게 오늘 보냈던 일정을 조잘조잘 말했더니 남편이 피식 웃으며 묻는다. “아니~?” 놀랄 만큼 자동응답기처럼 대답이 바로 나왔다. 고작 이제     됐는데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얼마나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하고 용기 내서 얻은 소중한 자유인데 마음의 짐을 짊고서 허투루 보낼  없지. 보란 듯이  지내야 하는데….



 그래. 사실 막막하다. 겁도 난다. 걱정이 한번 이어지면 끝도 없다. 남편과 심지어 얼마 전 함께 여행 다녀온 엄마도 넌지시 물어본 걸 보니 진작 가까운 사람들은 눈치챘는데 나만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다른 일을 준비하는데 언제까지 해도 되는 거지? 이대로 하면 뭐든 되기는 하겠지? 새로운 시도도 그렇다고 기가 막힌 재충전도 아닌 애매하게 소중한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남들 월요병에 괴로워하며 출근하는데 그 사이를 한량처럼 커피 한 잔 들고 걸어 다니며 글 쓰는 이 순간 속. 남들 경력 쌓고 있을 시간에 계속 뒤처지고 있는 만 30세 여성. (두둥!) 이대로 괜찮은가.


아침에 남편 출근을 배웅하고 텅 빈 집에서 쉴 새 없이 일정을 이어가는 건 이 감정을 파리처럼 쫓기에 바빴던 행동이었던 것이다.







 재수나 휴학기간 없이 대학 입학과 졸업, 그리고 바로 취직과 결혼까지   없이 도장 깨듯이 해왔는데 지금 이렇게 가족원 말고는 소속  없이 있어본  이번이 처음이다. 짝짓기 눈치게임에 다들 끼리끼리 모여  안고 있는데  사이에 나만 혼자 멀뚱멀뚱 서있는 기분이다. (? 그럼  탈락인가?!) 생각해보면 7 동안 직장인일 때도 휴일이면 “오늘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싫겠다!” 외치고나서 막상 누워있는 내내 초조해 일어나 뭐라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자유 시간을 한아름 떡하니 받았느니 그냥 편안할리가.



그래, 불안하지 않을 리가 있나.



 문득 이 감정의 존재를 인정해버리니 오히려 조금 편해진다. 등산 갈 때 바리바리 챙긴 무거운 짐이 아닌, 목을 축일 최소한의 물과 등산 스틱 간식 정도는 배낭에 챙겨 갈 필요가 있다. 지금 나에게 불안감이 그런 게 아닐까. 이번 퇴사는 곧 인생의 퇴직이 아니다. 아직 난 젊고 다른 일을 다시 시작해보기 위해 멈춰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이 감정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료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 정도 짐이야 충분히 짊고 갈 수 있다. 불안하니까 오늘을 해야 할 일과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로 더 꽉 채워 보낼 수 있게 움직일 수 있다. 앞으로도 더 ‘잘’ 불안해보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도 알아두기.


매거진의 이전글 근무 중, 그 당시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