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Mar 22. 2020

사이드 프로젝트는 재밌어서 합니다

돈을 벌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쉽)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대외활동

남들과는 다른 탤런트를 키워주고 싶으셨던 엄마의 소신 덕분에 힙합과 걸스힙합을 지도자 과정까지 밟은 초등학생이 있었다. 물론 누구나 배우는 피아노와 미술도 배웠지만 그녀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6학년 때는 다양한 축제에 춤추러 다니느라 학교에 공문을 내고 합법적 결석까지 하며 지냈다. 중학교 때는 걸스카우트를 한 번도 쉬지 않고 하며 수많은 캠핑을 다녔으며, 사춘기 때는 도서관에서 도서부를 하며 이겨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내 얘기 같지 않아서 제삼자처럼 적었지만, 내 얘기다. 지금이야 조용하고 소극적으로 지내고 있지만 참 시끌벅적하게 보냈던 때가 있었다. 이때의 활동들은 내 선택이라기보다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것이 8할이니 살짝 전조만 적어두고 넘어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반장을 하게 되면서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내게 '반장'은 참 특별했는데 이때의 경험 덕분에 어둡고 음침한 중학교 샐리의 시절에서 벗어나 활발함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장으로서 내가 한 일은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거나 친구들의 이동수업을 챙기는 정도였지만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타이틀 외에 '공부와 연관된 것들까지 하는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에 설레었던 것 같다.


반장을 하면서 용기를 얻은 나는 급기야 일부 학생 대상으로 문학반을 만들어 경기도 교육청에 지원 요청서까지 보내게 된다. 입학사정관제라는 제도가 2-3년 내로 생긴다는 소문을 듣고 나를 가르치시던 국어 선생님과 합작한 결과였는데 운이 좋게 경기도 표창장을 받게 되면서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문학반은 현대문학을 함께 읽으며 그 글이 쓰인 곳으로 문학기행을 떠나기도 하고, 각자의 독후감으로 가벼운 책을 만드는 교내 동아리였다.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각종 문학제에도 나가보았고 현역 시인 분과 함께 시낭송을 했던 밤도 있었다. 또 여름방학엔 열댓 명의 친구들이 쓴 글로 파워포인트에서 그림을 그리고 한글 97로 편집을 해 엮어낸 '송아리'라는 책도 만들었다.


대부분은 국어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기회였지만 나는 그렇게 문학반 활동을 하며 공부와 비슷한 영역에서 뭔가 해낸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며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즐거움을 몸소 배웠다. 물론 문학반을 하며 대학생이 되기도 전에 '조별 모임 잔혹사'를 먼저 겪어버렸지만 말이다.



이 구역의 헤르미온느는 나야

1학년 1학기, 첫 연애가 끝나고 진정한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학과 생활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이제 내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욕심을 꽤 많이 부렸다. 

대학교 1학년 
봄 - 단과대 축제 출연을 위한 행사 준비
여름 - 40일간의 유럽 배낭여행 
가을 - 해커스 멘토링
겨울 - 교내 영어캠프
내내 - 시 쓰기 소모임
대학교 2학년
봄 - 작년에 했던 단과대 축제 행사 준비, OT 준비
여름 - 연길 해외봉사, MT 준비
겨울 - 상상마케팅 스쿨, MT 준비
내내 - 대학교 홍보대사, 학과 학생회 행사부장
대학교 3학년 
봄여름 - 한 학기 동안 타 학교 학점교류
겨울 - 학내 상담부
내내 - 뒤늦은 경영학 복수전공으로 인해 24학점 수강
대학교 4학년 
여름 - 온라인 침구 사이트 대외활동
가을 - 홍보/기자 취업반, 전공 논문 작성과 복수전공 졸업시험
내내 - 타 지역에서 했던 백화점 대외활동 멘토/멘티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많이 부렸다. 생각나는 것들만 적었는데 한 번도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 사이에 공모전 도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학에는 다른 활동을 한다고 매 학기를 24학점으로 채워 듣고 다녔기에 공강 시간도 제대로 못 누려봤다. 그러다 보니 아쉽게도 대학교 때 친구와 술 마시며 놀았던 기억보다 뭔가 대외활동 자기소개서를 쓰고 고속버스에서 졸며 지냈던 기억이 더 많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그때는 대외활동이 많지도 않았을 때라 서울에 가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활동이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꽤 간절하게 도전했다.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다행히 많은 활동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대부분 최상으로 노력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노력했던 건 어차피 다닐 학교, 내가 제일 학교를 사랑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했던 학교 홍보대사 지원이었다.


난 말발이 없는 편이라 입시 요강을 고등학생들에게 알려주는 입시홍보는 지원도 못했고, 오히려 학교 투어와 외부 행사를 할 수 있는 대학 홍보에 지원을 하였는데 후자는 외모를 많이 보는 터라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한겨울에 몇십 개나 되는 단과대 (지방에 있는 학교라 무려 4개의 동이 합쳐져 있다)를 돌며 사진을 찍고 홍보물을 하나하나 오려 면접에 들어갔다. 학교 사진을 찍는 데에만 3일이 걸렸다. 홍보처에서 그런 정성을 잘 봐주셔서 면접을 잘 통과할 수 있었다. 나중에 홍보대사가 되고 나서 계장님께서 손으로 만들었던 학교 파일을 외부 분들께 자랑하시는 걸 보며 '어떤 일을 하려면 이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다.


그렇게 수많은 노력 끝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지만 이 기간 동안 나는 몸을 엄청나게 혹사했다. 아주 바쁠 때는 저녁 6시까지 수업을 듣고 서울로 와서 스터디를 한 뒤 10시 차를 타고 다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과제를 했고, 다음 날 아침 9시 수업에 들어가는 스케줄을 소화했다. 정말 타고난 체력이 없었다면 길 어딘가에서 쓰러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새삼스럽게 건강하고 튼튼한 갖게 해 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활을 보내며 '사이드 프로젝트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초년생의 사이드 프로젝트

내게 사이드 프로젝트의 의미는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이었다. 즐겁게 하려면 '마음이 편한 시간'이 있어야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2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회사에 가고 일을 하고 부족한 부분을 복기하고 또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집중했다. 사이드 프로젝트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마케팅 관련 세미나나 작은 모임에 나가게 되었을 때 상대적으로 위축감이 너무 크게 들어 자기소개 외에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오기 일쑤였다. 


2년 차가 되었을 때부터 조금씩 회사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누구입니다'라고 조금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아주 조금 솟아날 때였다. 가장 먼저 그동안 눈 여겨봐왔던 업계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에 갔다. 굿닥의 멋진 캠페인을 무수히 만들어낸 분의 세미나에도 가보고, 카드 뉴스를 정말 잘 만드시는 분의 강연도 들어보고, 서비스를 가장 좋아하는 강력한 팬덤을 만든 분의 세션도 갔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보다는 '아 세상에 너무 멋진 사람이 많구나, 나는 어떡하지'로 귀결이 되어 늘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멋진 사람들을 직접 봤을 땐 더 멋졌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온 사람들마저도 멋져서 그 멋짐에 내가 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 동료 (라고 쓰고 막냉이들이라고 부른다)들과 작당모의하는 것을 즐겼다. 앞서 말했듯 내가 이 업계에서 저명한 사람도 아니고 많은 인사이트를 담고 있는 사람도 아닌지라 내가 누구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되고, 혹여 실수하더라도 문제없을 정도로 친밀한 사람들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더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소소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했다. 거의 20편에 육박한 글을 쓸 수 있도록 꾸준히 진행했던 주 1회 글쓰기 #이번 주의 작업일지, 회사 다니는 재미를 위한 구구 마니또, 크리스마스에도 야근할 우리를 위한 몰래 산타, 일상의 일부를 브이로그 형태로 기록하는 #실 로그 등 '스스로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 번씩은 시도해봤다. 정말 만사가 귀찮은 날에도 그런 재미난 프로젝트를 떠올리며 매일을 보냈다.



마케팅 스터디로 정점을 찍다

4년 전 추석쯤, 팔로우하고 싶던 분이 마케팅 케이스를 나누는 스터디를 진행하신다고 하여 격주 주말마다 마케팅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던 이유가 '즐거움'이었다면, 이번에는 즐거움보다 '배움'이 컸다. 갈 때마다 4-50여 명의 업계 사람들을 만나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현업에서 업무를 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었다. 여전히 그런 스터디에 나갈 자신은 없었지만, 스터디에서 추구하는 5대 강령 중 2가지 덕분에 꾸준히 참여할 수 있었다.

 

모임의 목표는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은 무엇보다 참여자들이 재밌어야 합니다.
나이나 경험을 존중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권리나 의무도 없습니다.

마케터 외에도 상품 개발자, 기획자, it 개발자, 대표, 홍보 담당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고, 실제 내 업무에도 여러 번 적용하여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이야깃거리도 풍성해 최신 트렌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 수 있었다. 배우기 위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스터디에 많이 빠져들 수 있었고 그러던 중 운영진 분의 권유로 운영진이 되어 함께 운영하게 되며 오프라인 모임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도 해볼 수 있었다. 정말 직장인의 사이드 프로젝트로는 최고의 커리어(?)를 달리고 있었다.


스터디 운영진으로서 한참 바삐 지내던 2년 전 여름, 마케팅 스터디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운영진 두 분과 함께 부동산을 부리나케 돌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합정역 근처에 공간이 마련되었는데 그때부터 공간을 채울 콘텐츠가 필요해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해보고 싶은 일은 무궁무진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마케팅 트렌드 스터디'를 시작했다. 월에 1회씩, 매번 다른 주제로 '내가 직접 발제문을 준비해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의 스터디였다. 주제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고, 그 주제에 맞는 배경지식을 찾고 정리하고 발표 준비를 하는데에 1달이 꼬박 소요되었다. 나는 그 스터디를 9회 차까지 운영하며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는 결국 탈진해버렸다.


기존의 마케팅 스터디를 운영하면서, 공간도 운영을 하고, 내 스터디까지 운영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인 일이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으면 또 모르겠지만 나는 평일에 새벽 2시까지 야근을 하는 '한창때의 판교인'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 쓰다 못해 잠을 줄여가며 하루를 보냈다. 심지어 재미도 배움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건 결코 '괜찮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공간 운영도, 마케팅 스터디도, 마케팅 트렌드 스터디로 조심스럽게 뒤로 밀어둔 다음 크게 숨을 한 번 쉬어보니 내 어리석음이 보였다. '재미있겠다'는 생각 하나로 발동한 욕심 덕분에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마음 한 구석 가장 무거운 보석인 합정에 있는 우리의 공간이 궁금하다면 '마케터의 5길'을 클릭하시길.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한 시즌에 3개 이상은 금물

사람들을 만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잠시 쉬며 혼자 하는 프로젝트들을 조용하게 진행했다. 지금의 내 업무에 도움이 될 GA 스터디를 4주간 수강했고, 쉬는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취미를 만들고자 보지 않았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해 드디어 드라마 덕후들과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또 아주 짧게는 매일 말로만 이야기하던 이모티콘이나 인스타툰을 그려보고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20개가 조금 안 되는 그림을 올리기도 했다. 어느 하나 대외적으로 성공이라 부르긴 어렵겠지만, '즐거움을 찾는다'는 내 입장에서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모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요즘은 세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 10주간 매주 일요일까지 글을 한 편씩 쓰는 글쓰기 프로젝트 

-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커머스 관련 책을 읽으며 커머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독서 프로젝트

- 수많은 이야기를 즐기면서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대화형 카드게임을 만드는 프로젝트


글쓰기 프로젝트는 다음 주가 마지막이라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작년에 공부했던 GA 스터디를 복기하고 GA 자격증을 취득해보려 한다. 10주간 들였던 글 쓰는 습관은 '매주 일요일까지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습관'으로 변경해 '일요일까지 GA 스터디하기'로 바꿔보려 한다. 독서 프로젝트는 4월이면 종료될 프로젝트였는데 아주 많이 밀리게 되어 6월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지난 마케팅 스터디보다 어려운 분들이 가득하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보려 한다. 카드게임 프로젝트는 한참 진행 중인데, 프로덕트를 만드는 경험을 얻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일단 해보고 싶다 생각했던 지난날들과 달리 '정말 내가 하고 싶은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가'를 차분히 고민하고 선택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조금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위해 동시에 3개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으려 월별로 다이어리에 정리를 하며 나를 통제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나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보고 결정한다. 그런 숨 고르기가 있어야 오랫동안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나는 또 '즐거움'의 늪에 빠질 테니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