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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늘 Aug 09. 2021

그냥 기존 출판사에서 일하면 되는 게 아닌가?

[출간 전 연재] 날마다 출판

불행인지 다행인지, 2007년 11월 입사한 이래 근무한 두 곳의 출판사가 모두 출판 매출 1~2위를 다투는 대형출판사였다. 어학 분야 편집자로 입사해 2년 7개월을 근무하고, 이직한 뒤에는 자기계발과 경제경영서를 10년 동안 만들었다. 드물게 인문 분야와 과학 분야 도서도 기획하고 편집했다. 어학 분야에서 일할 때는 제대로 된 어학 실력도 없으면서 ‘내가 초급자이니 초급자를 위한 책을 더 잘 만들 수 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뻔뻔하게 지껄이며 다녔다. 실제로 초급자여서 할 수 있었던 기획들이 먹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이런 책은 어떻게 만든 거냐고 다른 출판사의 베테랑 편집자께 문의전화를 받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당시 어학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밖에는 내릴 수가 없다. 토익시험 점수가 모든 취업과 입학의 응시조건이었고,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책으로 영어를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이직해서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를 만들던 시기도 마찬가지였다. 유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소리를 매년 시무식과 종무식에서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치솟았고, 재쇄를 못 찍는 책이 없다시피 했다. 최근까지도 내가 기획과 편집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목 좋은 자리에서 살 사람 줄 서 있을 때 가게 사장님이 나를 종업원으로 뽑았던 결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퇴사할 때, 다들 안 된다고 말렸다. 네가 필요하다고 가지 말라고도 얘기해줬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지만 나가기로 마음먹고 난 다음에는 나름 총대 쥔 사람처럼 마구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는데, 개중 하나는 이 회사는 열 권을 1만 부씩 파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한 권을 10만 부 파는 데 올인하고 있지 않으냐 하는 것이었다. 정성껏 만든 아홉 권이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시간 되면 재생용지가 되어도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며 무슨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선 것처럼 핏대를 세웠다. 뒤에서 구시렁댄 것도 아니고, 간담회에서 임원들을 앞에 두고 당당하게 말했다. 순진한 짓이었다. 혼자 하는 구멍가게지만 사장 감투를 쓰고 보니, 한 권을 10만 부 파는 방향이 결론적으로 직원 모두에게 효율적이다. 경영하는 사람에게도 파는 사람에게도, 한 권이 10만 부 팔려주는 것이 그 많은 직원 월급 주는 데 가장 안정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옳은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많은 직원의 월급을 주고 회식도 시키고 커피도 사 먹이고 임대료도 내고 각종 세금을 내려면, 그러고도 남은 돈으로 판권도 사 오고 인센티브도 주고 하려면, 목표를 세워 매출을 내고 그 매출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관리도 해야 한다. 지난달 돈이 없어서 못 준 월급을 다음 달에 두 번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매달 매출을 관리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매달 일정한 종수를 꾸준히 서점에 밀어내야 한다는 말에 불과하다. 전제조건은 잘 팔릴 좋은 원고가 꾸준히 입수되는 건데, 그럴 수는 없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종수를 맞추려고 급하게 만드는 책들이 생긴다. 편집회의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작 완료가 되어 마케팅회의를 하는 순간까지 이 책이 잘 팔리리라는 기대는 저자밖에 품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담당 편집자가 제발 잘 팔려야 할 텐데 애를 졸이고, 담당 마케터가 어느 정도의 포부를 갖느냐는 그야말로 회사가 결정한다. “책은 좀 팔리나요?” 아침마다 저자의 불안한 목소리를 들은 편집자가 민망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카드뉴스라도 만들라치면, 그게 채널에 걸릴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하다. 1년이면 250종이 나오는 회사에서, 편집자가 만든 엉성한 카드뉴스를 하루에도 몇 번씩 채널에 올려 독자들을 피곤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떤 책들은 그렇게, 애써 만든 표지를 독자 눈에 선보이지조차 못하고 창고에 쌓이게 된다. 제작처에서 출판사 창고로, 운이 좋으면 출판사 창고에서 서점 창고로 갔다가, 거기 쌓여 있는 비용조차 죄스러워지는 순간이 되면 다시 출판사 창고로 옮겨졌다가, 표지 뜯고 아무렇게나 뭉쳐 0.1톤 단위로 재생용지 시장에 팔려나간다. 아, 정말 듣기조차 괴로운 일이다. 그런 책들은 그야말로, POS기상에만 존재한다. POS기가 출현해 매출이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내지 않아도 될 책을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창고에서 창고로 옮기려고 책을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출판사 효율을 위해 지구의 비효율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부도덕한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창업을 하라고 권하는 것인가. 아니다. 처음엔 나도 내가 반기를 들고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창업을 하면 적은 종수를 의미 있게 만들어서 쓸데없이 죽는 나무가 없도록 하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것도 불가능하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것만큼이나 나무의 죽음을 염려하는 것도 부질없다. 흥청망청 내자는 말이 아니다. POD 출판 등의 대안도 아직 현실적인 대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는, 적은 종수의 책을 알맞게 팔겠다는 목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적확한 기획, 유려한 원고, 맞춤한 편집, 정확한 홍보 타깃, 서점의 확고한 의지, 독자의 욕망, 이어지는 입소문. 이 모든 과정에 연쇄해서 성공해야, 열 권 중 한 권 불티나게 팔리는 책이 된다. 하나만 어그러져도, 독자는 내 책을 만질 수 없다. 그러니 적은 책을 많이 팔리게 내겠다는 한 명 편집자의 다짐은 얼마나 무용한가? 


따라서 출판의 의미를 확률에 맡겨서는 안 된다. 잘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책을 만들었다가는 열 번에 아홉 번은 실패하게 되고 그 한 권조차도 내가 지향하는 책이 아니라면 ‘왜 독자는 늘 이런 책만 읽는가?’ 허망함에 빠질 수밖에 없다. 판매에 대한 압박감을 거두고, 한 권 터트려서 졸지에 건물 하나 올려보겠다는 말 같지 않은 욕망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출판을 할 것인가? 


모든 허황한 가능성을 걷어내고,
단 하나 확고한 의미 가치를 둔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
바로 책을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이다.
책을 만드는 일이 즐겁다면, 모든 책이 의미 있을 수 있다. 

개중 열 번에 한 번꼴로 잘되는 책이 나온다. 그 책을 판 돈으로 다른 아홉 권을 만드는 즐거움을 누린다. 이게 허무함에 빠지지 않고 만들고 파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확실하게 가치 있다고 믿는 책을 내야 한다. 대형출판사에서 이걸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려고, 내 출판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당신의 머릿속에는 한 개 의문이 떠오른다. 혼자 출판사를 차려서, 먹고 살 수가 있나? 글쎄,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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