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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ctus Mar 20. 2020

제목 없음

코로나 격리 D-1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요 며칠 밤잠을 설쳤다. 꺼도 꺼도 꺼지지 않는 알람에 괜한 신경질을 내며 눈을 뜨던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느꼈다. 노예 근성인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은, 참으로 변덕스러운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지니고 있던 삶의 이유였다. 면접에서 제시한 아이디어가 실제로 해당 회사의 서비스에 반영이 되었을 때, 내가 만든 상품이 누군가의 집에 놓여 편안함을 더해줬을 때 느꼈던 그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갑분 코로나라니! 생각치도 못하게 휴가를 갖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그냥 집에서 놀게 되었다. 더이상 시간에 쫓겨 일어나지 않아도 되자, 나는 엄청난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거대한 코로나 태풍으로 내가 쌓아온 삶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는 생각에 한동안은 침대에서 눈만 꿈뻑거렸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깨달았다.
그동안 부실공사 해왔던 게
이렇게 탄로나버린 거구나.


 내 스스로는 자각을 하고 있었겠지. 튼튼하게 쌓아지지 않고 있음을 알면서, 귀찮음과 게으름에 여러 핑계를 대며 2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사실을. 어떤 이에겐 높고 멋진 벽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 걸 지켜보는 나는 항상 불안했었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새로이가 미성년자에 술을 판 최승권에게 묻던 장면이 떠오른다. “너 정말 몰랐어?” 분명 고등학생인 조이서가 민증을 위조해 속이려 했다. 하지만 최승권은 알았다. 다만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못 본 척. 모르는 척. 나랑 똑같네. 초라하네.




 아주 깊은 늪에 빠졌던 지난 한 달이 지나고, 내일 나는 상해로 다시 떠난다. 초라함 때문에 힘들었지만, 반대로 그 덕분에 희망과 열정이 다시 샘솟고 있다. 열심히 살아보자고.


 너무 떨린다.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로 공항과 검역소에서 10시간 이상 보낼 내일이 무섭고 두려운 것도 있지만, 반대로 다시 내 공간에 돌아가 지금까지의 나를 다시 돌아보고,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해나갈 하루하루가 기대되어 떨린다.


 내일. 코로나 격리 D-day. 언젠가 코로나, 너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다시, 항상 긍정적이고 삶을 사랑하던 나를 찾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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