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oming Oct 21. 2020

oo를 죽이는 채식주의자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이놈의 새끼! 나쁜 놈의 새끼!"
"내가 너 죽일 거야! 죽여버릴 거야!!"


탕!


탕!



 살의에 가득 차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밤새 잠을 설쳤더니 눈꺼풀이 묵직하고 머리도 띵하다. 이게 다 지금 내 손바닥에 짓눌려있는 한 마리 모기 때문이다.


 지난밤에 모기 두 마리를 연신 잡고 오늘 밤은 숙면할 수 있겠군, 속단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주도면밀하게 몸을 숨겼던 나머지 한 녀석이 새벽부터 작전을 개시했나 보다.


 어슴푸레한 새벽, 귓가에 잉잉거리는 소리 때문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른손 중지 손가락이 모기의 공격을 받아 팅팅 부어있었다. 우이 씨...


 필요한 만큼 수혈을 받았으면 저도 적당히 들어가서 잘 것이지 왜 남의 귓가에 와서 잉잉대며 승전보까지 울리냐는 말이다. 누워서 파닥파닥 대며 귓가의 모기를 향해 손짓을 몇 번 해봤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머리맡 스탠드 불을 켜고 우두커니 앉았다. 모기가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이곳저곳을 노려보기에 나선다. 휙휙 둘러보다가 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모기로 착각해 지레 놀라기도 했다.


어젯밤의 접전지

 그런데 신통하게도 막상 찾으려면 절대 안 나타는 것이 이 종족의 특징이다. 잡을 때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싶어서 단념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있자니 숨이 답답하고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모기가 아직 나돌아 다니는데 극세사 수면잠옷을 꺼내 입은 내가 섣불렀지... 이 나약한 중생아! 난데없이 내 탓도 해본다.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불을 켜고 앉아 노려보다를 반복하며 열댓 번 힘차게 헛박수를 쳐댄 덕에 손바닥만 얼얼하다. (조금 건강해졌으려나?) 하지만 포기하고 풀썩 자리에 누우면 금세 또 어딘가에서 나타나서 귓가에 풍악을 울려대니 신기할 따름이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먼발치에서 들리는 모기 소리가 진짜인지 환청인지 이제 헷갈릴 지경이니... 정말 울고 싶다.


 그렇게 나를 약 올린 끝에 오늘 아침 모기는 짜증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던 나에 의해 처참히 운명했다. 납작해진 모기를 보는 순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가 이내 이런 생각이 든다.



채식주의자가...
모기를 이렇게 신나게 죽여도 되나?



 얼마 전 책에서 본 '모기는 잡으세요?'라는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채식주의자들끼리의 대화였다. 그중 한 분은 채식주의자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 때 그것이 나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모기장을 치는 등 직접적으로 죽이는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숭고한 마음가짐이다. 그 구절을 읽을 때는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도 우아하고 싶다. 내 생명존중 사상에 예외가 없었으면 한다. 예외는 언제나 허점이 되고 논쟁을 부르기도 하니까. 하지만 현실은 실전. 모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단 말이지... 


 채식주의자라거나 채식 생활을 지향한다고 해서 나의 행복 조건을 침해받으면서 모든 것을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채식주의자를 향해 득도를 했다거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굉장히 보편적이지 않은 부류의 사람으로 여기는 인식을 마주치곤 한다. 그러나 채식주의자에 대한 과도한 환상도 독이 된다. 채식을 하는 사람도 대체로 맛있는 음식을 좋아해서 맛있는 채식 식당 정보를 교류하고 내가 허용하는 식재료로 더 맛깔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찾는다. 멋 부리기를 좋아해서 다양한 비건 패션 브랜드나 비건 제품을 소비하고 소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처럼 모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 짜증이 치밀어 쌍욕을 날리는 사람도 존재한다.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선과 욕망을 가진다는 뜻이다. (설마 모기한테 나만 그런가?) 다만 저마다의 행복 기준이 다르기에 용인할 수 있는 범위의 기준도 저마다 다르다. '채식 생활이라면 반드시 이래야 해'라는 법률이나 규칙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내 채식 생활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꼭 이래야만 해'라는 식으로 단언한 문장들이 있을까 봐. 그랬다면 그것은 아직 부족한 글솜씨 때문일 것이다. 다른 존재를 위해 나를 다스리려는 모든 노력들은 어떤 것이든, 그것이 아주 사소할 지라도 귀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늘 배우면서 나를 조금 더 벼리고 싶어 한다.




 어쨌거나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우악스럽게 모기를 죽이겠다고 창문과 벽을 쾅쾅 치며 덤비던 내 모습은 좀 창피하게 느껴진다. 우아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니까. 향을 피우든지 모기약을 사오든지 서로 덜 비참해질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 눈 옆머리에 쓰윽 비친 그림자가 왠지 모기인 것 같다는 직감이 든다. 벌써부터 신경이 곤두서는데 오늘 밤은 무사히, 우아하게 잘 수 있을까? 어쩌면 내 채식 생활의 명칭을 '모스키토-페스코-베지테리언'으로 명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전 13화 방송작가가 먹방을 그만 두자 생긴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