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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oming Nov 06. 2020

대만의 길거리 만두를 먹고 나는 울었다

채식을 시작하고 앓았던 병?

 2017년 10월, 타이베이 중심부의 어느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알아주는 길치로 손꼽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달랐다. 조금 전 막 낯선 도시에 도착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발걸음이 거침없었다. 내가 의지한 것은 손에 꼭 쥔 휴대폰의 구글맵과 그녀의 한 마디였다.


 "언니, 그 집 만두 끝내줘요. 꼭 먹어봐요 꼭!"


  부끄럽게도 대만에 도착하기 무섭게 내가 온 힘을 다해 향한 곳은 타이베이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어느 허름한 채식 만두집이었다. 대만에서 유학 생활 중인 친구(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채식주의자)의 추천을 받은 곳인데, 그녀의 추천 식당들을 다녀온 팔로워들은 모두가 극찬해 마지않는 후기를 올렸다. 이 만두집도 맛있는 만두를 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만두가 먹고 싶었다.


 채식을 시작하고 7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대로 만두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유명한 만두 맛집들은 새우만두 건 부추만두 건 기본으로 고기가 베이스로 들어갔고, 마트에 가서 반갑게 집어 든 야채 만두에도 '속았지?'라고 말하는 양 고기가 잔뜩 채워져 있었다. 채식 뷔페에 갔다가 만두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먹은 적도 있는데 별로 맛이 없었다. '채식 만두는 다 이런가?'라는 생각으로 시무룩해하며 만두를 향한 마음을 단념해왔다.

(* 이때까지의 나는 요리도 하지 않고 맛있는 채식에 대한 정성도 부족했다. 그저 주어진 식단 안에서 먹을 건 먹고, 안 먹을 건 안 먹는 식이었기 때문에 채식 맛집을 열심히 검색해보거나 채식 제품을 주문해볼 생각을 못했다. 만렙 단계의 게으른 채식주의자였음을 미리 고백해둔다.)


 만두를 못 먹게 됐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든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맛있는 만두를 다시 먹을 수 있다는 기대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었다. 덥고 습한 날씨도, 정신없는 인파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언어와 꼬부랑 간판 글씨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되뇌며 걸었다.

 '만두를 먹을 수 있다. 오늘 나는 끝내주는 만두를 먹을 수 있다아아!!!'


 그렇게 채식 만두집에 도착했다. '채식(素食)'이라는 표시가 큼직하고 강렬했기 때문에 잘 도착한 게 맞는지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두 진열대에는 갓 나온 따끈한 만두들이 종류별로 놓여있었고, 그 와중에 두 분이 번갈아가며 열심히 만두를 만들고 있었다. 이러한 공기의 흐름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가게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영어를 가끔 섞어가며 대만어로 각각 무슨 만두라고 설명을 해주셨지만 캐비지(양배추) 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에잇, 고민할 거 뭐 있어.' 손가락으로 차례차례 가리키며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이라고 주문을 해서 종류별로 만두를 하나씩 샀다.


 조금 경건하게(?) 먹고 싶은 마음에 그 자리에서 바로 먹지 않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탁 트인 공원 안에는 객석처럼 여러 개의 벤치가 나란히 놓인 공간이 있었고, 적당한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림자 사이를 오가는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어 따뜻한 것을 먹어도 딱 좋은 온도를 유지해주었다. '하늘이 돕고 있어...나의 만두 영접을...!' 만두들이 담긴 봉지 속에서 가장 먼저 집어 든 것은 만두피가 찐빵처럼 살짝 폭신한 왕만두였다.


 요리조리 살펴보며 기념사진도 한 장 남겼다. 이제 드디어 만두를 맛보는구나! 감격에 찬 채로 와앙,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하고 쫀득하고 고소하고 짭짤한 것들이 입 안에서 마구 진동을 일으켰다. 곧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는 문장이 어색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 문장 안에 '너무'를 다섯 번이나 쓰고 있을 만큼 너무너무 맛있는 만두였다. '으음~!' 하면서 두 발을 동동 구르고 말았다. 내가 늘 그리워했던 바로 그 맛이었다.

한 개에 오백 원 정도 밖에 하지 않았던 감동 보따리

 왜 이렇게까지 감격스러운 걸까? 내가 고기의 맛을 그리워했던 걸까? 하지만 지금 이 만두 안에는 고기가 없는데...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채식을 시작하고 나는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고향으로부터 먼 곳에 오래 머물게 된 사람들이 향수병을 앓는 이유는 강력하게 이어졌던 것들과의 연결이 느슨해지는데서 오는 허전함과 고립감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입맛이 좋고, 특히 고기 요리를 좋아했던 나는 엄마가 해주는 등갈비찜, 불고기, 돼지고기 김치찌개 같은 것들의 향연 속에서 행복하게 자랐다. 다 익지도 않은 고기를 홀랑 집어먹는 바람에 종종 등짝에 불이 나기도 했지만 잘 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흐뭇한 표정으로 내 밥 위에 살을 발라 얹어주곤 했다. 장을 보고 돌아온 엄마의 짐 꾸러미 속에 슬그머니 껴있는 내 최애 왕만두는,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하나의 증표였다. 아빠와 동생들이 쿵짝이 맞아서 치킨을 시키면 '살찌려고 그러냐'라고 핀잔주면서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행복하게 웃으며 먹었던 기억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내 '먹는 행복'의 이면에 어떤 폭력과 희생이 깃들어있는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채식을 결심했다. 25년 남짓 나를 길러왔던 음식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던 행복한 순간들과도 안녕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내 젓가락은 좋아해 마지않던 음식을 눈 앞에 두고 밑반찬 위주로 겉돌았고, 가족들이 치킨을 먹을 때는 자리를 피하거나 혼자 다른 과자를 먹었다. 시장에 다녀온 엄마의 짐 꾸러미 속에 더 이상 왕만두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졌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 안에도 나름의 애틋함과 행복은 있었다. 다만 내가 예전에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던 모양과 더 이상 똑같아질 수 없다는 데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채식주의자의 향수병에는 다양한 대처법이 있다. 대만에서 끝내주는 채식 만두를 먹고서 용기(?)를 얻은 나는 한국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채식 만두를 찾아 나섰다. 조금만 손가락품을 팔아보니 고기 없이도 맛있는 채식 만두가 도처에 존재했다. 진선푸드에서 만드는 야채 손만두와 김치 손만두는 맛본 이래로 늘 냉동실에 상비 중이고, 익산의 한 채식 식당에서 눈이 동그래질 정도의 채식 만두도 먹어보았다. 그 식당에 가족과 친구들을 데려가서 맛 보여주며 채식 음식도 이렇게 맛있는 게 많다는 것을 좀 으스대 보기도 했다.


 채식 만두를 언제든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의 '만두 나라 향수병'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식품업계의 개발도 더 활발해졌기 때문에, 그리운 음식이 있는 채식주의자라면 이런 식으로 대체 식품이나 식당을 찾아서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요리를 할 줄 안다면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예전에 먹었던 음식이 먹고 싶어서 너무 힘들다면 그 음식을 먹고 나서, 다시 채식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마음의 원동력을 충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못 먹으니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을 곧잘 받곤 한다. 그런데 고기를 먹냐 아니냐의 단순한 차원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는 것 같다. 가장 휘청이는 순간은 내가 선택한 신념과 그리움의 무게 사이에서 분투할 때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순간들을 때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딛어내면서 '고기 없는 나라'라는 타국에서의 삶을 꿋꿋하게 걸어나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까지도 안녕해야 내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내 행복의 새로운 모양에 차츰 익숙해져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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